
2025년,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그간 '세계의 경찰' 역할을 자처하며 자유무역주의를 퍼뜨리던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이후 자국중심주의를 외치며 '관세 전쟁'을 선언했다. 북한은 러시아, 중국 손을 잡고 외교력을 확장하고 있다. 중동에선 여전히 전쟁의 불꽃이 타오른다. <더팩트>는 세 편에 걸쳐 역사 속 오늘 벌어졌던 사건을 통해 국제 정세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송호영 기자] 2025년 10월 3일로 독일은 통일 35주년을 맞았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된 상태다. 이재명 정부가 동·서독 관계를 본보기로 대북 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정책의 일관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서독 분단은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이 있다. 1945년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독일이 패망하자 미국·영국·프랑스·소비에트 연방은 영토를 네 지역으로 나눠 점령했다.
이후 공산주의와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자 1949년 5월 23일 미국·영국·프랑스의 점령지역에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수립됐고, 소련이 차지하고 있던 나머지 지역에는 1949년 10월 7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설립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국 관계는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 1961년에는 동독이 서독의 월경지(본토와 떨어져 타 국가 영토에 둘러싸인 지역)였던 서베를린을 고립시키기 위해 베를린 장벽을 설치하기도 했다.
경색됐던 양국 관계는 1972년 12월 21일 양국이 서로를 주권국으로 인정하는 '동서독 기본 조약'을 체결한 이후 변화하게 된다. 양국은 조약 체결 이후 상호 대표부 설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진행하게 됐고, 1973년에는 국제연합(UN·유엔)에도 동시 가입했다.
양국의 교류는 1989년 동독의 평화 혁명과 베를린 장벽 붕괴의 원동력이 됐다. 에리히 호네커 동독 서기장은 혁명 과정에서 축출됐고 사회주의 통일당은 1990년 3월 18일 다수 의석을 상실했다. 이후 같은 해 8월 31일 베를린에서 통일조약이 체결됐고, 10월 3일 자정을 기해 동독 정권이 해체되며 독일 통일이 이뤄졌다.
남북 관계도 독일과 유사하게 완화된 적이 있다. 남한과 북한은 1991년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상호 체제 인정, 내정 불간섭, 상호 비방·중상 중지, 상호 체제 전복 시도 중단 등의 내용을 담은 '남북 기본합의서'(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후 남북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 2018년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 공동선언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2023년 말 적대적 두 국가론을 선언하고 남한과의 대화를 중단했다.

이재명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시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엔드(END) 이니셔티브'를 제시하며 '적대적' 남북 관계가 아닌 '평화적' 남북 관계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END'(종결)는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정동영 장관도 취임 이전부터 독일의 사례를 언급해 왔다. 정 장관은 지난달 29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평화적 두 국가론'이 헌법과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데팍토(de Facto·사실상의) 국가와 데주레(de Jure·법적인) 국가 승인, 그건 공리공담(아무 소용이 없는 헛된 말)"이라며 "그렇게(평화적 두 국가론을) 해서 교류 협력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아울러 서독 마지막 총리이자 통일 독일 첫 총리를 지낸 중도보수 진영의 헬무트 콜은 이전 정부의 동방정책을 비판하면서도 교류 협력은 중단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학계 전문가들도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선 서독의 일관성 있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우리) 헌법의 정신은 평화통일이고, 보수 정권이 집권하더라도 원칙과 방향은 유지하며 속도와 폭만 조절해야하는데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렸다"고 지적했다. 양 석좌교수는 그러면서 "과거 동서독의 길을 갈 것인지, 단절과 갈등을 반복할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정일영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교수는 "대북 관계의 일관성이 유지되기 위해선 신사협정 성격인 '남북 기본합의서'의 조약성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법상 강제성이 없는 신사협정이 아닌, 구속력이 인정되는 조약이 돼야 남북 관계가 진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남북 기본합의서가 조약이 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난관이 있다. 우리 헌법 제3조와 제4조 및 관련 법령에 따르면 북한은 국가가 아닌 반국가단체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 남한과 북한이 휴전 중이라는 특수성을 인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남북 기본합의서가 조약이 되면 위헌이라는 주장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며 "(상대를) 사실상 국가로는 인정했지만, 완전한 국가로서는 인정하지는 않는다는 서독의 자세를 유지하는 방법론이 슬기로운 대안일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