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황덕준 재미 언론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누구 말마따나 '호수의 달그림자를 좇는' 셈법에 도취해 영주권 장사에 나섰다. 국가 운영의 기준과 원칙을 돈벌이에 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인 만큼 영주권을 500만 달러(약 72억 4000만 원)에 팔겠다는 발상이 그리 놀랍지는 않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가진 각료회의 석상에서 그의 보스가 이른바 '골드카드' 판매계획을 밝히자 보충설명을 하면서 기존의 투자이민 비자를 폐지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35년 동안 시행해온 EB-5 프로그램을 골드카드로 대체하겠다는 얘기였다.
EB-5프로그램은 지역별로,투자 프로젝트별로 투자금이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90만~200만달러를 투자하면 영주권을 주는 제도다. 투자수익도 챙기며 2년간 임시 영주권을 받은 뒤 정식 영주권으로 전환되는 EB-5 투자이민은 수천만에서 수억 달러가 필요한 대형 개발사업의 자금원으로 활용돼 왔다.
경제성장으로 벼락부자가 많아진 중국에서 특히 미국의 EB-5프로그램은 한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투자수익이 나오지 않고 프로젝트가 중단돼 원금회수도 못하고 정식 영주권도 받지 못하는 피해사례가 적지 않았다.
러트닉 상무장관이 EB-5에 대해 "가짜·사기", "싼값에 영주권을 갖는 방법"이라고 비판한 배경이다. 그는 EB-5가 실제 투자를 촉진하기보다는 미국 영주권을 확보하는 편법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내며 "감독도 허술했고,시행도 잘 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트닉 장관이 EB-5 프로그램 폐지를 언급하자 "왜 우리가 (영주권을) 공짜로 나눠주느냐. 우리나라 적자라도 메꿔야지"라며 100만장의 골드카드를 판매하면 5조 달러, 1천만장을 팔면 50조 달러라는 산수를 해냈다.
미국 연방정부의 적자가 35조 달러라면서 골드카드 1천만 장을 팔면 만성적자를 단칼에 해결한다는 투로 "환상적인 일"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이 덧붙인 말이 거슬린다. "(골드카드는) 본질적으로 부유한 사람이나 훌륭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시민권을 받는 길이며, 부유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미국에 들어와 사는 데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라는 발언에 담긴 차별의식과 싸구려 상업주의의 뉘앙스가 그렇다.
돈 많고 재능 있는 사람들은 비싼 돈을 내고서라도 미국에서 살 것이라는 근거없는 기대감은 또 어떤가. 미국은 그럴 만큼 유토피아 같은 나라인가에 대한 의심은 추호도 없다. 100만 장, 1000만 장 판매를 어찌 그리 쉽게 말할 수 있는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 저잣거리 장사꾼조차 속셈으로도 하지 않을 계산을 하고 있으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EB-5 비자를 다뤄본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한인 이민변호사들은 시큰둥했다. 어차피 EB-5 프로그램 자체가 거의 운영되지 않은 상황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참이라는 것이다. 투자이민의 방식으로 그 효용성이 거의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 만큼 일거리가 사라지는 데 대한 걱정은 추호도 없다고 했다.
골드카드라는 500만 달러짜리 영주권 또한 신청자가 얼마나 있을 지 큰 기대감도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코멘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당선된) 작년 11월 5일 이후 누구나 미국에 오고 싶어한다"라는 말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미국 영주권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줄 착각하고 있다.
그 터무니 없는 현실인식을 다소나마 개선하는 방법을 제안해보고 싶다. 830만명으로 추산되는 미국의 불법 체류 이민자들에게 1인당 5000달러나 1만 달러를 내면 임시 체류허가를 내주고 일정 기간이 지나 정식 영주권을 주면 어떨까. 5000달러씩 받으면 415억 달러, 1만달러씩 받으면 830억 달러가 되니 그 또한 쏠쏠한 장사 아닌가.
불법체류자를 쫓고 추방하는 데 드는 온갖 사회적 부작용도 가라 앉히고 돈도 벌면서 '인간을 포용'하는 모양새를 갖추니 여러모로 시도해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500만달러라면 언감생심이지만 5000이나 1만 달러라면 고리대금을 얻어서라도 기회를 잡으려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미 확정돼 있는 수요자 830만명을 놓고 셈하는 게 현명하지 호수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하면 되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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