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2기 한 달, 아메리칸 드림은 '흉몽'인가 [황덕준의 크로스오버]
  • 황덕준 재미 언론인
  • 입력: 2025.02.21 00:00 / 수정: 2025.02.21 00:00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두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한 달은 불안과 초조, 혼란의 시간이었다. 취임선서를 마치자마자 행정명령서에 긁은 그의 서명은 지진의 진동파를 닮았다./워싱턴=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두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한 달은 불안과 초조, 혼란의 시간이었다. 취임선서를 마치자마자 행정명령서에 긁은 그의 서명은 지진의 진동파를 닮았다./워싱턴=AP.뉴시스

[더팩트 | 황덕준 재미 언론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두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난 한 달은 불안과 초조, 혼란의 시간이었다. 취임선서를 마치자마자 행정명령서에 긁은 그의 서명은 지진의 진동파를 닮았다. 트럼프가 취임 후 28일 동안 결재한 행정명령 67개는 실제로 지진 못잖은 충격파를 일으키며 온 세계를 들쑤셨다.

보편관세를 내세운 대외무역에서의 미국 이익 우선주의와 파나마 운하, 그린란드, 가자지구 등을 미국 것으로 삼겠다는 영토확장 구호 등 국제관계를 뒤흔든 정책도 기가 막히지만 무엇보다 미국 내에서 벌써부터 소송과 항의 시위를 유발한 행정명령들은 특히 이민자의 일상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미국땅에서 출생하면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선천적 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을 철회한다는 명령은 메릴랜드, 워싱턴, 뉴햄프셔 등 3개주와 19개주의 위헌소송을 다룬 매사추세츠 연방지법 판사에 의해 집행이 정지됐다.

연방정부의 각 기관과 계약업체 등에 요구한 다양성·형평성·포용(Diversity·Equity·Inclusion:DEI) 지침을 해체하려는 여러 개의 행정명령도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1960년대 차별금지 입법 운동에서 유래한 DEI지침은 조직 내에서 발견될 수 있는 차별적인 정책이나 관행을 해결하고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조치 시행, 성별 임금 불평등 문제 해결, 소수민족 등 소외된 인구집단의 채용 관행 확대, 반차별 교육 개최 등이 DEI정책의 사례다.

DEI의 개념은 트럼프 뿐 아니라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그렉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 등 보수적인 정치인들이 앞장 서서 반대해왔다. 백악관은 트럼프의 DEI 중단 행정명령에 대한 보도 자료에서 "DEI는 편견에 찬 적대감을 조성하고 증폭시키며 대인 관계의 갈등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DEI가 '역차별'을 조장한다는 얘기다. 미국 주요 도시에서는 거의 날마다 트럼프 정부의 DEI프로그램 지원 중단에 대해 반대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서류미비자로 순화해서 불러온 불법이민자에 대한 관용없는 단속과 추방 명령이야말로 뼈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조치다. 이민세관단속국(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의 이니셜 약자가 하필 ICE다. 실제론 아이·씨·이로 발음 하지만 ICE는 불법 체류자는 물론 영주권과 합법적인 비자를 가진 이민자까지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불법 체류자가 많은 중남미계 이민자들은 대낮에 길거리 돌아다니기를 삼가고 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몸과 마음이 움츠러 들었다. 범죄 이력이 있거나 추방 대기 중인 불법체류자를 대상으로 단속한다고 하지만 마구잡이로 무차별적인 불심검문을 해 끌고가는 판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20~30년씩 영주권을 갖고 멀쩡하게 생활해온 한인들 가운데서는 한국 방문 등을 미루는 사람조차 있다. 돌아오는 공항에서 재수없이 입국심사요원에게 붙들려 쓸데없이 곤욕을 치를까 두렵다는 것이다.

중남미계 라티노들이 이용하는 식당들은 매상이 절반 이상 줄었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ICE 요원들이 가장 자유롭게 들이닥칠 수 있는 곳이 식당이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10개의 매장을 낼 정도로 성업하던 어느 멕시칸음식 체인점은 임대료 낼 돈을 걱정할 처지가 됐다면서 식당 몇개를 닫을 것이라고 LA타임스가 전했다. "밥 먹다가 끌려가고 싶지 않다"며 식당 출입하기가 겁난다는 한 중남미계 청년의 말이 인상적이다.

불법체류자의 다른 표현인 서류미비 이민자란 적법한 절차를 받지 않고 미국에 입국했거나, 관광비자 등 유효한 비이민 비자를 갖고 합법적으로 미국에 들어섰지만 해당 비자가 만료됐는데도 그대로 머무르고 있는 개인을 말한다.

뉴욕의 국제 이민 싱크탱크인 이민연구센터에 따르면 미국에서 일하는 불법체류 노동자는 830만명으로 전체 노동인구의 5.2%로 추산된다. 비영리단체인 미국이민위원회(American Immigration Council)는 2022년 기준 서류미비 이민자의 납세액이 연방세,지방세 포함 총 756억달러라는 통계를 내놓았다.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육아, 노인 돌봄, 건설 및 농장,식당,판매 같은 일자리를 얻어 대개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현금을 받고 생계를 이어간다. 아시아계 서류미비 이민자들은 이민커뮤니티가 여러 세대에 걸쳐 기반을 다진 저임금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베트남계는 네일숍, 캄보디아인은 도넛 가게, 인도인은 호텔이나 모텔,편의점 등에서 일자리를 얻는다.불법체류 중국인 이주민은 직업소개소가 노동허가증 없이 창고, 식당, 마리화나 농장 등의 일자리를 찾아준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규모 추방조치를 단행하면 주민 5명 중 1명꼴로 서류 미비자인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커뮤니티의 구조가 크게 재편될 것이라는 게 이민자 사회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경고다.

아울러 불법체류 이민자들이 주로 일하는 업종에서 적지 않은 혼란이 일어나고 이는 소비자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보다 더 광범위하고 부정적인 경제적 파급 효과는 훨씬 더 클지도 모른다.

운전하다가 단속반에 걸릴까봐 우버 같은 공유택시로 일터에 나가고, 평소 수십명이 줄 서던 코로나백신 무료접종장이 썰렁해진 불법체류 단속의 여파를 체감하다 보면 일상이 파괴된 트럼프 2기 시대의 아메리칸 드림은 진정 '흉몽'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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