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 LPGA 일본 16승 vs 한국 15승
재팬클래식에서 김효주, 야마시타, 티띠꾼 각축전 벌일 듯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한때 '미국(LPGA)은 명예, 일본(JLPGA)은 돈'이라는 말이 있었다. 2010년을 전후해 대한민국 여자골프가 본격적으로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의 얘기다. 박세리 효과로 수많은 우수 선수들이 '돈과 명예'를 좇아 미국으로 향했지만, 만만찮은 실력을 갖췄음에도 일본 쪽으로 눈을 돌린 '실리파'들도 적지 않았다. 2010년 기준 JLPGA투어는 국내에 비해 대회 숫자는 34개로 13개나 많았고 평균 상금도 11억원을 상회, 5억원이 채 되지 않았던 국내 보다 훨씬 구미가 당기는 투어였다.
#한국이 휩쓸던 JLPGA투어…시즌 절반이 한국 몫
LPGA투어에서의 활약상은 익히 알려진 대로지만, 비슷한 시기 일본 무대에서 보여준 한국 여자골프의 위상도 미국 못지 않았다. 일찌감치 일본에 진출해 터전을 잡은 전미정과 이지희 등에 안선주, 이보미, 신지애, 송보배 등이 가세하면서 일본 열도를 휘어잡을 정도였다.
우승 기록이 이를 말해준다. 2010년에는 전체 34개 대회의 절반에 가까운 15승을 한국 선수들이 차지했다. 2012년에는 16승, 2015년에는 무려 17승을 합작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연속,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올렸다. 일본 선수들에게는 안방을 지키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 무렵 미국 무대에서의 위상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한국 선수들은 2010년대 10년 동안 LPGA투어에서 무려 103승을 거뒀다. 2015년, 2017년, 2019년에는 각각 15승을 수확했다. 일본의 미야자토 아이가 2010년 한때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기세를 떨치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경쟁력은 한국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였다.

#뒤집힌 LPGA 승수…최근 3년 일본 16승, 한국 15승(올시즌은 6승-6승)
그러나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과거의 기록이 무색할 만큼 LPGA투어에서 한국과 일본은 첨예한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다. 어느 한쪽이 우세하다고 단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팽팽하다. 과거 한국 선수들이 일본 투어를 호령했다면, 이제는 일본 선수들이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3년간의 양국 승수를 보면 확연하다. 2024년 한국과 일본은 LPGA투어에서 나란히 3승을 거뒀다. 지난해에는 일본이 7승을 올리며 6승에 그친 한국을 앞질렀다. 올해 역시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이 김효주와 유해란의 2승씩을 포함해 6승을 거둔 가운데 일본도 똑같이 6승을 기록 중이다.
지난달 하순 해남서 열렸던 BMW레이디스챔피언십에서 요시다 유리가 우승한 데 이어 지난 1일 말레이시아에서 끝난 메이뱅크 챔피언십에서는 야마시타 미유가 우승, 일본이 최근 2개 대회를 연속 가져갔다. 야마시타는 최종 합계 22언더파 266타로 중국의 류옌을 2타 차로 따돌리며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이로써 일본은 올해 한국과 승수가 같아졌고, 최근 3년간의 합계에서는 16승 대 15승으로 오히려 한발 앞서게 됐다.
물론 최근 LPGA투어의 우승 경쟁은 한국과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이 2024년 이후 22승으로 가장 많은 우승을 거뒀고, 태국도 13승을 수확하며 강세를 보였다. 호주는 7승, 중국은 5승을 기록했다. 세계 여자골프가 특정 국가의 독주가 아닌 여러 강국의 치열한 경쟁 구도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아시아 국가들의 약진이다. 일본과 한국, 태국이 최근 3년간 거둔 우승은 각각 16승, 15승, 13승으로 큰 차이가 없다. 미국의 강세 속에서도 아시아 선수들이 세계 여자골프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과거 한국이 압도했던 일본이 이제는 한국과 대등하게, 때로는 한발 앞서 경쟁한다는 사실이 더욱 주목된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웠던 변화라 할 수 있다

#LPGA 신인왕도 일본 몫…최근 2년 연속, 올해도 하라 에리카 유력
변화의 배경에는 한국의 상대적인 우승 경쟁력 약화와 일본의 가파른 성장세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한국은 2022년 4승, 2023년 5승에 이어 2024년에는 3승에 그쳤다. 지난해와 올해 6승씩을 거두며 반등하고 있지만 과거 한 해 15승씩을 쓸어 담던 전성기와 비교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반면 일본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잇달아 배출하고 있다. 사소 유카, 후루에 아야카, 사이고 마오, 야마시타 미유, 구와키 시호 등이 연이어 메이저 챔피언에 올랐고, 다케다 리오와 이와이 자매를 비롯한 젊은 선수들이 미국 무대에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한 때 한국 선수들의 전유물 처럼 느껴지던 신인왕은 일본이 2024, 25년 잇달아 차지했고 올해도 시즌이 막판에 다다른 현재 하라 에리카가 황유민 보다 훨씬 유리한 상태다. 일본은 과거 한국이 그랬듯 몇몇 간판선수에게 의존하지 않고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선수층이 한층 두터워진 것이다.
특히 일본의 약진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 바탕에 탄탄한 자국 투어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JLPGA투어는 오랫동안 풍부한 대회 수와 기업 후원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유지해 왔다. 젊은 선수들이 일찍부터 치열한 우승 경쟁을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최근에는 일본 투어에서 정상급 기량을 검증받은 선수들이 미국으로 진출해 곧바로 우승 경쟁을 펼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야마시타는 일본 투어에서 두 차례 연속 상금왕에 오른 뒤 미국 무대로 진출했고, 다케다는 2024년 일본에서 8승을 거둔 데 이어 미국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 KLPGA투어에서 실력을 키운 한국 선수들이 미국에 진출해 세계 정상을 다투던 모습과 닮았다.

#토토재팬클래식, 한국 11년 침묵 깰까
이런 가운데 이번 주 일본에서 열리는 토토 재팬 클래식(총상금 210만달러)에 관심이 쏠린다.
오는 5일부터 나흘간 일본 이바라키현 다이헤이요클럽 미노리 코스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LPGA투어 가을 아시안스윙의 마지막 무대다. 상승세의 야마시타를 비롯, 시즌 4승의 지노 티띠꾼, 그리고 한국의 김효주가 관심의 초점이다. 과거 이 대회서 두차례 정상에 올랐고, 올시즌 일본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신지애도 출사표를 던졌다.
최근 대회 성적만 놓고 보면 일본 선수들의 강세가 예상된다. 2023년 이나미 모네, 2024년 다케다 리오, 지난해 하타오카 나사가 정상에 올라 최근 3년간 일본 선수들이 우승을 독식했다. 지난해에는 상위 5명을 모두 일본 선수들이 차지했을 정도다.
반면 한국 선수의 마지막 우승은 2015년 안선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벌써 11년 전이다.
한때는 한국 선수들이 강세를 보인 대회였다. 2008년 신지애를 시작으로 2009년 송보배, 2010년 신지애가 3년 연속 우승했고, 2014년 이미향과 2015년 안선주도 잇달아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 한국 선수의 LPGA투어 공식 우승은 끊겼다.
올해는 과연 그 오랜 침묵을 깨뜨릴 수 있을까.
2010년대 한국의 독주가 2020년대 들어 치열한 한일 양강 구도로 바뀌었다. 서로를 자극하며 경쟁하는 두 나라의 존재는 세계 여자골프에도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토토 재팬 클래식은 단순한 시즌 막바지 대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일본의 상승세가 계속될 것인지, 한국이 안방에서 내준 우승을 일본에서 되갚으며 반격에 나설 것인지 주목된다.
일본이 해남에서 웃었으니, 이번에는 한국이 일본에서 웃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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