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다 놓친 네 번, 쫓다 놓친 한 번...준우승이 달라졌다
첫 승 향한 긍정 신호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2주 연속 1타 차 준우승. 어쩌면 2주 연속 우승보다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우승의 기쁨은 누리지 못했지만, 2주 연속 정상 문턱까지 다가섰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욱이 첫 번째 준우승이 선두를 달리다 역전을 허용한 결과라면 더욱 그렇다.
우승을 눈앞에서 놓친 충격과 실망감은 자칫 자신감 상실이나 심리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 아쉬움을 안고 불과 일주일 만에 다시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쳤다는 것은 그만큼 기량이 뛰어나고 경기력과 컨디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혜진(27)이 그랬다. 최혜진은 지난 18일 중국 상하이에서 끝난 뷰익LPGA상하이에서 사흘 연속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날 역전을 허용하며 1타 차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25일 전남 해남 파인비치 골프링크스에서 끝난 BMW레이디스챔피언십에서도 또 다시 1타 차 준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두 번의 준우승은 내용이 달랐다. 상하이에서는 지키지 못한 우승이었지만, 해남에서는 4타 차를 추격해 마지막 홀에서 연장전 진출 기회까지 만들어냈다. 같은 준우승이지만 이번에는 아쉬움보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LPGA 125경기 출전, 준우승만 여섯 번
한국에서는 우승이 익숙했던 최혜진이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남다른 기량으로 주목받았고, KLPGA 투어에서는 12승을 거뒀다. 그런데 2022년 LPGA 투어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이후 아직 첫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이번 BMW 대회는 LPGA 투어 데뷔 이후 125번째 출전이었다. 그동안 준우승만 벌써 여섯 차례다. 정식 회원이 되기 전 기록까지 포함하면 아홉 번째다. 물론 여섯 차례 가운데 한 번은 김효주와 함께 출전한 2인 1조 팀 경기인 다우챔피언십이다.
최혜진의 개인전 준우승 기록을 돌아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발견된다. 2022년 CPKC위민스오픈에서는 안나린과 공동 선두로 최종일을 시작해 보기 없이 2타를 줄였지만 폴라 레토가 4타를 줄이는 바람에 역전을 허용했다. 경기를 망친 것은 아니었지만 첫 우승 기회를 놓쳤다. 2025년 마이어LPGA클래식에서는 최종일 후반 12번 홀 버디로 단독 선두에 올랐다. 그러나 17번 홀에서 보기를 범하는 사이 카를로타 시간다가 버디를 잡아 순식간에 승부가 뒤집혔다. 마지막 홀 버디로 추격했지만 1타가 부족했다.
같은 해 메이뱅크챔피언십은 더욱 뼈아팠다. 사흘 연속 선두를 달린 데다 최종일에는 무려 4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했다. 그러나 마지막 날 1오버파 73타에 그치면서 야마시타 미유, 해나 그린과 연장전에 들어갔고, 연장 첫 홀에서 우승컵을 야마시타에게 내줬다. 그리고 이번 상하이에서도 사흘간 선두를 지키다가 마지막 날 인뤄닝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앞선 네번은 지키다 놓쳤고, 해남에선 4타차를 쫒아갔다
이처럼 앞선 네 차례 개인전 준우승은 모두 최종일 선두로 출발했거나 경기 도중 선두에 올랐다가 우승을 놓친 경우였다.
반면 해남은 달랐다. 최혜진은 선두 유해란에게 4타 뒤진 공동 2위로 마지막 날을 맞았다. 일본의 요시다 유리가 초반부터 무서운 기세로 타수를 줄이며 선두를 빼앗는 동안에도 차근차근 추격전을 펼쳤다. 최종일 버디 4개와 보기 1개로 3타를 줄인 최혜진은 마지막 18번 홀에서 연장전 진출을 노릴 수 있는 기회까지 만들어냈다. 약 2m 거리의 버디 퍼트가 홀컵을 외면하면서 우승은 요시다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두를 지키려다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뒤에서 쫓아갔고 우승컵에 손이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섰다.
바로 이 점에서 강한 희망을 본다. 사실 반복되는 준우승은 선수에게 적지 않은 심리적 부담이 될 수 있다. '지난번에도 실패했는데 이번에도 그러면 어떡하지', '나는 왜 결정적인 순간마다 우승을 놓칠까'라는 자기 의심이 쌓일 가능성도 있다. 스포츠심리학에서는 강한 압박 속에서 평소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현상을 '초킹(Choking under pressure)'이라고 부른다.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자연스럽게 수행하던 동작을 의식적으로 통제하려 할 때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최혜진이 그렇다는 것을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의 준우승이 모두 심리적인 문제 때문이었다고 볼 근거도 없다. 상대 선수가 더 뛰어난 경기를 펼쳐 역전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승에 거듭 근접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부담으로 남을 가능성만큼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준우승의 덫…해법은 ‘결과보다 과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설적이지만 우승에 대한 집착을 조금 내려놓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우승을 포기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결과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과정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마지막 홀에서 '이 퍼트만 넣으면 연장전이다'라는 생각보다 '평소처럼 목표를 정하고 스트로크한다'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긴장감이 높은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압박 훈련이나 스포츠심리 전문가의 도움도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최혜진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2주 연속 준우승은 오히려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일 만하다. 상하이에서 사흘 연속 선두를 지키다가 역전패했다면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만에 다시 우승 경쟁을 펼쳤다. 해남에서는 3라운드 전반 9홀에서 28타를 몰아치는 폭발적인 경기력을 보여줬고, 마지막 날에는 4타 차를 추격해 연장전 문턱까지 갔다. 우승을 놓친 아쉬움이 경기력의 급격한 저하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이다.
여기에 선두를 지켜야 하는 상황뿐 아니라 뒤에서 추격하는 상황에서도 우승 경쟁을 펼칠 수 있다는 점까지 확인했다. 우승을 향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여섯 차례 준우승했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 차례 정상에 가까이 다가섰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준우승 횟수가 쌓인다고 우승이 저절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복해서 우승 경쟁을 벌인다는 것은 그만큼 우승할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증거다.
이번 해남의 준우승은 아쉬웠지만 지난 네 차례 개인전 준우승과는 조금 다른 기억으로 남았으면 한다. 선두를 지키지 못해 우승을 놓친 경기가 아니라 뒤에서 끈질기게 추격해 마지막 순간까지 우승 가능성을 살려낸 경기로 말이다.
첫 승이 언제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해남에서 최혜진은 우승을 놓친 선수의 모습만 보여준 것이 아니다. 거듭된 좌절에도 다시 우승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선수임을 보여줬다.
그래서 최혜진의 여섯 번째 준우승에서 오히려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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