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알파인' 존폐 논란...혈세 3000억, 해법은 어디 있나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 이영규 기자
  • 입력: 2026.04.18 00:00 / 수정: 2026.04.18 00:00
4년마다 반복되는 올림픽 열기, 그 뒤에 가려진 설상 종목의 고단한 현실
영웅들의 눈물호소, 정부 체육계 '상생비전'이 절실
스노보드 은메달리스트 김상겸이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뉴시스
스노보드 은메달리스트 김상겸이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뉴시스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얼마 전 막을 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우리는 또 한 번 열광했다. 한국 설상의 자존심 김상겸이 스노보드에서 첫 메달을 안기고, 여고생 유승은이 부상 투혼 끝에 고난도 4회전 기술을 성공하며 사상 첫 프리스타일 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온 국민은 ‘설상의 기적’에 전율했다.

하지만 그 환호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영웅들은 시상대의 감동을 뒤로 하고 간담회 마이크 앞에 섰다. 지난달 26일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 주관으로 열린 ‘정선 알파인 경기장 활용방안’ 간담회 현장이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영광’이 아닌 ‘읍소’였다.

"1년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내며 매달 1,000만 원 이상의 자비를 들여야 합니다. 제발 국내에서 마음 편히 훈련하게 해주세요."

메달리스트들의 이 간절한 외침은 2018 평창의 유산인 정선 알파인 경기장이 8년째 ‘개점휴업’에 처해 있는 모순을 고발한다. 정선 슬로프를 활용할 수 없는 유소년 및 대표 선수들은 자비를 들여 해외를 전전하며 고단하게 훈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동계올림픽 불모지로 여겨졌던 설상 종목에서 깜짝 메달을 선사한 김상겸, 유승은, 최가온 같은 불세출의 스타들이 나타난 것은 이들의 재능과 눈물겨운 자구책 덕분이지, 국가 시스템의 결실은 아니었다.

정선군 가리왕산 일대에 2,000억 원을 들여 만든 국내 유일의 국제 규격 슬로프는 현재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올림픽 유산(Legacy) 보존 측면에서 보면 슬로프를 존치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가리왕산은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서 그 지위가 엄격해 '올림픽의 기억'과 '생태적 가치의 회복'이라는 두 가치가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13일 정선군은 2018 동계올림픽 유산인 해발 1,381m 가리왕산 케이블카의 브랜드 개발을 추진한다고 밝혔다./정선군
13일 정선군은 2018 동계올림픽 유산인 해발 1,381m 가리왕산 케이블카의 브랜드 개발을 추진한다고 밝혔다./정선군

‘매몰 비용의 비극’에 갇힌 가리왕산

현재 가리왕산을 둘러싼 논쟁은 전형적인 ‘매몰 비용의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이미 투입된 2,000억 원은 회수 불가능한 비용이 되었고, 이를 원상태로 돌리는 데 다시 1,000억 원의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3,000억 원에 가까운 천문학적 자원을 쏟아붓고도 우리 손에는 제대로 된 경기장도, 500년 전의 원시림도 남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인 셈이다.

정부와 환경단체는 ‘사회적 약속’인 생태 복원을 주장한다. 실상 틀린 말이 아니다. 가리왕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수백 년 된 주목과 구상나무가 군락을 이루던 곳이다. 슬로프 보존은 곧 생태계 단절의 영구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체육계가 시설 존치를 요구하는 건 현실적으로 완벽한 복원이 어렵고, 시설이 사라질 경우의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한 가리왕산 자락 주변 곳곳에는 대규모 리조트와 골프장이 성업 중이다. 자본의 논리로 세워진 상업 시설은 용인하면서, 국가적 위상을 높인 올림픽 유산만은 반드시 철거해야 한다는 논리는 형평성 차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정선 가리왕산 스키장건설 벌목 현장 /강재훈
정선 가리왕산 스키장건설 벌목 현장 /강재훈

4년 주기의 이중성을 넘어서는 '해법'을 찾아라

우리는 평소 비인기 종목에 무관심하다가도 올림픽만 되면 메달을 요구하는 ‘사회적 이중성’을 보여왔다. 하지만 단순히 4년마다 환호하는 "소수 대표 선수들을 위해 시설을 남겨달라"는 호소만으로는 환경 보호라는 시대적 명분을 넘기 힘들다. 설사 메달을 딴다 해도 그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면 국민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

따라서 이제 체육계는 주장에 앞서 먼저 답해야 한다. 환경 복원은 둘째 치더라도 매년 수십억 원의 운영 적자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 체육계가 가리왕산을 '세금 먹는 하마'라는 오명에서 건져내려면, 단순히 '선수 전용 시설'이라는 폐쇄적 인식에서 벗어나 '수익형 공공 스포츠 인프라'로 체질을 개선할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알프스나 로키 산맥 등에 집중된 국제 규격의 활강(Downhill) 코스는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소한 자산이다. FIS(국제스키연맹)와 협력해 가리왕산을 아시아 동계 스포츠의 허브로 확장하고, 공인 대회를 지속적으로 유치하며 아시아권의 거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동시에 '올림픽 익스트림 관광’ 패키지나 활강 체험 프로그램처럼 일반인들이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오고 싶은 장소로 만들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강원도 평창 용평 알파인 경기장에서 2018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남자 대회전 경기가 열린 가운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에미르 록믹이 기문을 통과하고 있다./더팩트 DB
강원도 평창 용평 알파인 경기장에서 2018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남자 대회전 경기가 열린 가운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에미르 록믹이 기문을 통과하고 있다./더팩트 DB

비극을 자산으로 바꾸는 마지막 기회

애초에 지어서는 안 될 곳에 지은 것은 맞다. 하지만 뒤늦은 자책이 선수들의 훈련권이나 환경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파괴나 보존이 아니라, 이미 발생한 매몰 비용을 어떻게 ‘미래 자산’으로 승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지혜다.

가리왕산의 비극은 숲이 사라진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 숲을 되찾겠다는 명분 아래 다시 한번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허공에 뿌려야 하는 '비효율의 반복'에 있다. 완벽한 복원은 애초에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을지 모른다. 무리한 복원으로 2차 환경 피해를 일으키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나무만 심는다고 복원이 아니다. 그곳에서 흘린 선수들의 땀방울과 올림픽의 기억, 그리고 지역 경제의 숨통을 함께 틔여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유산 관리’라 할 수 있다. 체육계가 국민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타당성 있는 활용안을 제시하고,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로 이를 수용할 때 비로소 가리왕산은 비극의 현장이 아닌 ‘대한민국 스포츠와 환경이 공존하는 성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영웅들의 ‘읍소’가 4년 뒤 또 다른 메달리스트의 눈물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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