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지난해 국내 남자프로골프투어(이하 KPGA투어)는 장유빈 ‘1인 천하’였다. 22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역대급 활약으로 KPGA투어를 완벽히 지배한 뒤 LIV골프에 진출, 지금은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과 기량을 견주고 있다.
국가대표 신분으로 2023시즌 프로 2부투어인 챌린지투어 2승(1, 10회)을 거쳐 같은 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임성재, 김시우, 조우영과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뒤 프로로 전향해 첫 시즌이었던 지난해를 완전히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모두 21개 대회에 출전해 두차례 우승(군산CC오픈, 백송홀딩스아시아드CC부산오픈) 외에도 준우승 5회 포함 톱5가 8회나 됐고 참가 대회의 절반 이상을 톱10에 드는 꾸준함을 과시한 바 있다. 이러한 압도적 퍼포먼스로 장유빈은 당연 최고의 영예인 제네시스 대상 및 상금왕(11억2,904만원)을 차지했고 최저타수상(덕춘상, 69.41타)은 물론 장타부문에서도 1위(평균 311.35야드)에 올랐다.
상금은 사상 최초로 10억원을 넘겼고 평균타수는 2021년 김주형(69.16타)에 이은 역대 2위 기록이다. 대상, 상금왕 수상자가 장타부문까지 석권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연말 대상 시상식을 완전히 자신의 독무대로 만든 바 있다.

이렇듯 장유빈이 지난해 보여주었던 활약은 워낙 역대급이라 당분간은 이를 능가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시각이 깨지는 데는 불과 반시즌밖에 필요치 않았다. 투어 8년차 중견 옥태훈(27·금강주택)이 올시즌 들어 지난해의 장유빈급, 아니 어떤 면에서는 장유빈을 능가하는 활약을 계속하고 있어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아래 표 참조)
◆옥태훈과 장유빈 비교표
옥태훈(2025) - 장유빈(2024)
출전경기 10 - 21
우승 2승 - 2승
톱5 7회 - 10회
상금 8억2,307만원 - 11억2,904만원
평균타수 69.09타 - 69.41타
2018년 투어에 데뷔한 옥태훈은 2022년 제주서 열린 아시안투어 인터내셔널시리즈 코리아에서 정상에 오른 바 있으나 KPGA투어에서는 단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옥태훈은 올시즌 전반기 10개 대회에 출전해 제68회KPGA선수권대회 with A-ONE CC와 군산CC오픈에서 우승, 벌써 2승을 챙겼으며 70%에 달하는 톱5 진입으로 경쟁자들의 혀를 내두르게 하고 있다.
시즌 개막전인 DB손해보험프로미오픈에서 공동 2위를 차지, 심상치 않은 출발을 예고한 옥태훈은 바로 이어진 우리금융챔피언십에서도 공동 4위에 올랐고 GS칼텍스매경오픈에서는 다소 주춤(공동 30위)했으나 KPGA클래식에서 또 다시 3위를 기록, 4개 대회에서 세차례 톱5에 드는 위세를 과시했다.
옥태훈의 매서운 샷은 ‘불볕 더위’의 6월 들어 더욱 뜨거워졌다. 초 중순의 백송홀딩스아시아드CC부산오픈과 하나은행인비테이셔널에서 4위와 공동 5위로 예열을 마친 옥태훈은 KPGA선수권과 군산CC오픈을 2주에 걸쳐 잇달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 남자프로골프계에 본격적인 투어시대가 열렸던 2005년 이후 KPGA투어에서 2주 연속 우승은 2012년 김비오(매경오픈, SK텔레콤오픈), 2013년 강성훈(CJ인비테이셔널, 한국오픈), 그리고 2022년의 서요섭(군산CC오픈, LX챔피언십)과 더불어 옥태훈이 네번째다.
또한 옥태훈은 KPGA선수권에서 20언더파 264타, 군산CC오픈에서 19언더파 269타의 뛰어난 기록으로 우승했고 이에 앞선 2개 대회서도 7언더파, 15언더파를 기록하는 등 6월의 4개 대회서만 무려 61언더파를 몰아치는 압도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옥태훈의 전반기 평균타수는 69.09타. 이는 위에서 언급한 바, 2021년 김주형이 기록한 역대 시즌 최저타 기록(69.16타)을 넘어서고 있을 정도다.

옥태훈의 연속 우승 중에는 국내 투어 최고액 상금 대회인 16억원의 KPGA선수권이 포함돼 있고 군산CC오픈도 사상 처음 10억원을 넘겨 두 대회서만 5억 2천만원이 넘는 상금을 챙겼다. 전체의 딱 절반이 소화된 전반기에만 상금 총액이 8억2,307만원. 이는 지난해 장유빈을 제외한 그 이전의 시즌 최고액 상금(2022년 김영수, 7억9,132만원)을 이미 넘어섰고, 후반기 10개 대회를 남겨 놓은 현재, 장유빈이 2024년 기록한 역대 최고액 상금의 73%까지 추격한 형세다.
따라서 옥태훈이 현재 보여주고 있는 페이스라면 어렵지 않게 이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 후반기에는 10개 대회 중 10억을 넘는 대회가 7개이고 이 중에는 DP월드투어와 공동 인증대회인 총상금 54억원의 제네시스챔피언십이 포함돼 있어 경우에 따라 상금부문에서 역대급 신기록이 작성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제네시스챔피언십은 획득 상금의 50%만 상금 누계에 반영)
그렇다면 투어생활 7년간 가능성만 보이던 옥태훈이 올들어 갑자기 발군의 기량을 과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골프 시작 초기인 12살부터 지금까지 옥태훈을 가르치고 있는 김종필 프로의 얘기를 들어 보자.
"골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중1 시절 태훈이가 보여준 쇼트게임감각은 정말 대단했다. 타고 난 재질이라 할까. 그러나 형편이 괜찮은 집안의 늦둥이인데다 재주가 많은 친구들 대부분 처럼 열심히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국가상비군까지 했고 그 경력으로 프로자격을 획득한 뒤 2016년 투어프로에 이어 2017년 막바로 코리안투어 시드 획득 등 일사천리로 최고의 무대까지 진출한 걸 보면 분명 능력은 뛰어난 선수다."

또 옥태훈이 최근 들어 기량이 괄목상대한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분석했다.
"우선 기량적으로는 3년 전 쯤부터 스윙코치(염동훈 프로)와 퍼팅코치(김규태 프로), 그리고 쇼트게임과 멘탈코치(김종필 프로)로 세분화 해 체계적인 지도를 한 게 효과를 보는 것 같다. 국내 최고의 스윙코치라 할 수 있는 염동훈 프로가 옥태훈의 신체적 핸디캡(선천적 골반 이상)을 감안한 최적의 샷을 만들어 내고, 최근 국내 정상급 프로들의 퍼팅 코치로 명성을 얻고 있는 김규태 프로가 그린 위에서의 여러가지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옥 프로를 가르쳐 장단점의 대부분을 다 알고 있는 내가 멘탈 등 전체적인 조율을 함으로써 안정을 찾고 있는 것 같다."
여기다 골프를 대하는 자세가 이전과는 판이한 것이 어쩌면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계속되는 김종필 프로의 분석을 들어보자.
"몇 년 전부터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노력형으로 바뀐 데다 지난해 말 어머니가 신장이식수술을 받은 이후 잘 해야겠다는 절실함이 더욱 커졌고, 때문에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욱하는 태도 보다는 스스로 감정을 이겨내려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옥태훈은 ‘게으른 천재’라는 시선을 불식시키려는 듯 KPGA선수권과 군산CC오픈 우승 후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천재가 아니다. 노력파다. 연습장 불이 꺼질 때 까지 연습한다"고 잇달아 강조한 바 있다. (코치의 말처럼)천부적인 재능을 지닌데다 (본인의 말대로)이제는 진정 쉼없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옥태훈이 올시즌을 마치는 시점, 국내 투어에 어떤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낼 것인가. 8월말 재개되는 후반기 매 대회의 관심이 옥태훈에게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