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신지애(37)는 지난 5월 11일 일본여자프로골프투어(JLPGA)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월드레이디스챔피언십 살롱파스컵에서 연장 접전 끝에 일본의 노장 후지타 사이키(40)를 꺾고 정상에 오른 바 있다. 신지애는 이날 우승으로 개인 통산 66승이자 JLPGA투어에서만 31승째를 올리는 놀라운 행보를 계속했다.
그런데 이날 대회 종료 후 신지애와 후지타가 보여준 ‘베테랑의 품격’이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일본 팬들의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고 있어 화제다.
신지애와 우승을 다퉜던 후지타는 지금까지 총 596개 대회나 출전한 투어 21년차 노장으로 정규 투어에서만 6승을 올린 정상급 선수. 2022년 다이오페이퍼 레이디스오픈 우승 이후 승수를 추가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지난해에도 상금 랭킹 10위에 올랐을 만큼 여전히 상위권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내내 고열에 시달리는 컨디션 난조에도 불구하고 첫날 부터 3라운드까지 단독 선두를 달렸으나 결국 최종 라운드에서 신지애에게 덜미를 잡혀 연장 끝에 우승을 내준 바 있다.

후지타는 특히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경기 중 기침을 하기도 하고 16번홀에서는 구토 증세를 보이기도 했으며 연장전 패배가 확정된 직후에는 의식이 희미해 져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었다.
이런 힘겨운 비상 상황에서도 후지타는 2시간쯤 지나 골프장으로 다시 돌아와 시상식과 기자회견을 마친 신지애를 만나 진정한 축하와 함께 미안함을 표시하며 정중한 예를 갖췄다. 30여 초간 포옹하며 후지타는 "미안해. (경기 중 기침을 많이 해)내가 너의 플레이를 방해한 것 같아.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음성이래. 정말 미안해. 우승 축하해. 다음엔 나도 잘 해 볼게"라고 말했고 이에 신지애는 "괜찮아. 몸이 다 나으면 다시 한번 좋은 경기를 해보자. 다음엔 건강한 몸으로 잘 해보자"라고 화답했다.
이렇듯 포옹한 채 나눈 두 선수의 대화 장면이 유튜브를 통해 세상에 전달되자 일본 팬들은 많은 감동을 받은 듯 일주일도 안돼 조회수가 20만을 넘겼으며 지난 25일 현재 25만 8000 여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독자들은 많은 댓글도 달아 두 베테랑 골퍼들로부터 받은 감동을 표현하기도 했다.
댓글의 일부를 소개하면
"두 선수 모두 상대를 존중하는 휼륭한 선수다. 젊은 선수도 좋지만 베테랑들의 열전도 보기 좋다."
"안 좋은 컨디션에도 최선을 다해 플레이한 후지타 프로도,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전력을 다해 싸운 신 프로도 정말 훌륭했습니다. 젊은이들에게만 눈이 가는 요즘이지만 베테랑들의 힘을 마음껏 발휘한 나흘간이 아니었을까요. "이것이 메이저야"라는 승부를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청 눈물이 나왔어요. 스포츠맨십이 이것이군요. 승패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플레이를 리스펙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세계 제일이 된 만큼, 신지애 프로는 인간으로서도 초일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온에어 보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 사이키 상도 정말로 노력했다."
"후지타 프로 힘들었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후지타 프로의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하고 용기를 얻고 있어요. 그리고 신 프로의 굉장함은 결과에 관계없이 미소를 계속 보여주는 정신의 힘입니다. 이것이 프로이고 사람으로서도 최고입니다."
"신지애 프로의 마음 깊이를 알았습니다. 두 사람의 포옹 매우 멋지네요."
"이것은 정말 역사에 남는 경기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훌륭했습니다."
신지애뿐 아니라 이효송 등 일본에서 활동하는 많은 한국 선수들의 후견인이자 매니저 일을 맡고 있는 KPS 김애숙 대표는 "신지애 프로는 일본에서 영웅이다. 골프 팬 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매우 좋아한다"고 말하고 "후지타 역시 성실하고 꾸준한 활약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선수인데, 이들 둘이 이런 모습까지 보여주니 많은 후배 선수들과 팬들이 감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신지애는 한국 선수로는 첫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바 있다. 그리고 국내투어와 LPGA투어에서 상금왕을 차지한 바 있고 전 세계투어에서 모두 66승을 기록, 현역 최다승 선수이기도 하다. 일본투어에서는 31승을 올리며 생애 통산 상금 1위다. 기량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얘기이고 37세의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그것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여기다 후배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 많은 후배들이 롤 모델로 신지애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상호존중과 스포츠맨십이 몸에 배어 있고 항시 웃는 모습으로 주위를 편하게 한다. 김애숙 대표는 "물론 선수로서 적지 않은 나이지만, 어떻게 생활 자체가 저렇게 완벽할 수 있는지 존경스럽기 까지 하다"고 말한다. 골프 외 사생활까지 철두철미하다는 평가다.
잔잔한 감동이 계속되고 있는 신지애-후지타 사이키의 유튜브 동영상은 독자들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듯 진정한 ‘스포츠 외교관’으로서 신지애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신지애는 29일 미국 위스콘신주 에린에서 시작되는 제80회 US여자오픈(총상금 1천200만달러)에 출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