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끝난 축구 2024~2025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아흘리가 일본의 가와사키 프론탈레를 2-0으로 완파하고 우승했습니다. 이날 어시스트 2개를 기록한 피르미누는 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혔지요. 예, 맞습니다. EPL 리버풀과 브라질 대표팀에서 뛰었던 그 피르미누입니다.
결과뿐 아니라 내용도 일방적이었습니다. 가와사키는 전반에 단 하나의 유효슈팅을 기록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알 아흘리의 선수단 연봉 총액은 2800억 원으로 250억 원 수준인 가와사키의 10배가 넘습니다. 또 아시아 최고의 클럽을 가리는 이 대회 4강에는 SPL(사우디 프로축구 리그) 팀이 3자리나 차지했습니다.
SPL은 ‘돈’의 측면에서는 이미 EPL과 스페인의 라리가에 이어 세계 3대 리그로 성장했습니다. 실제로 SPL 알 나스르에서 뛰는 호날두는 "SPL이 리그앙(프랑스)보다 더 낫고, 세계 3대 리그에 들 자격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 스포츠계 ‘진격의 사우디’는 축구만이 아닙니다. 포뮬러원(F1), 골프의 리브(LIV), 테니스, 미국프로레슬링(WWE), UFC 및 프로복싱, e스포츠에서 이미 굵직한 이벤트를 현재진행형으로 개최하고 있고, 심지어 야구리그까지 만든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한 '스포츠워싱'이라는 지적도 있죠(원래 '스포츠워싱'이라는 용어는 아제르바이잔이 원조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우디의 스포츠 ‘돈질’은 아주 계획적이고,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16년 사우디의 실질적인 통치자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국가경제 다각화를 위한 ‘사우디 비전 2030' 전략을 발표했는데 그 핵심에 스포츠가 있습니다.
비전 2030 중 ’더 라인‘ 프로젝트 같은 경우 주춤하고 있지만 스포츠는 오히려 투자가 늘고 있습니다. 열사(熱砂)의 땅에서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을 열고, 2030년 엑스포를 거쳐 2034년은 월드컵을 개최합니다. 가장 최근인 지난 4월에도 리야드에서 스포츠투자포럼을 열고 첨단 스포츠산업에 대한 투자의지를 높였습니다.
# 수치로 보면 더 확실합니다. 사우디는 2016년 이후 70개 이상의 스포츠단체를 만들었고, 지난해까지 9년간 무려 100개 이상의 A급 국제스포츠이벤트를 개최했습니다. 당연히 엄청난 돈을 썼는데 이 기간 스포츠에 투자한 금액이 510억 달러(72조 8,000억 원)라고 합니다. 그런데 2023년 기준 사우디 국부펀드는 9,25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 중이고, 이 해 368억 달러의 수익을 냈다고 합니다. 이러니 1년에 스포츠에 50억 달러(7조원) 정도를 쓰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 사우디의 스포츠 투자는 효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우디 경제에서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GDP의 3%였으나 지금은 7%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특히 스포츠는 과거 0.4%에서 현재 1.5%로 4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빈 살만 왕세자는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게 바로 경제 성장이고, 일자리이며, 관광"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사우디를 방문한 관광객은 현재 4,000만 명 정도인데, 2030년에는 1억~1억5,0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참고로 사우디 전체 인구는 약 3,220만 명인데, 이 중 51%가 30세 미만이라고 합니다. 국민들이 젊다 보니 스포츠에 대한 열기가 높기도 한 것입니다.
# 자 이제 우리 얘기입니다. 2025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체육 예산규모는 1조 6,751억 원입니다. 프로스포츠 등 민간영역이 빠진 것이라고 해도 사우디에 비하면 정말 ‘조촐’하죠. 그나마 이 액수도 2024년 대비 3.6%(587억 원)나 크게 증액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체육예산의 80%가 국민체육진흥기금 사업비에서 나옵니다(체육분야 보조금 1조3,215억원).
또 국민체육진흥기금의 재원은 올해 매출 6조7046억 원, 수익 2조1037억 원을 목표로 삼은 스포츠토토가 주로 담당합니다.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대한민국에서 체육에 쓰는 돈의 대부분이 스포츠토토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스포츠토토는 대한민국 체육의 젖줄입니다.
# 여기서 중요한 대목이 나옵니다. 스포츠토토가 마련하는 재원이 커지면 사우디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스포츠에 많이 투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포츠토토를 사행성사업으로 규정하고 사업전반을 철저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물론 도박의 사회적 역기능은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풍선효과처럼 제대로 양성화를 하지 않으면 음지가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지금도 합법적인 스포츠토토보다 불법토토의 시장이 적게는 수 배, 크게는 열 배나 크다고 분석됩니다. 당연히 사우디를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한국 스포츠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스포츠토토에 있습니다.
# 마침 스포츠토토는 오는 7월 1일부터 구조적으로 큰 변화를 맞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이죠. 지금까지 민간위탁으로 운영하던 체육진흥투표권사업을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주)한국스포츠레저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공적으로 책임집니다.
토토사업의 민영 vs 공영 논쟁은 2013년 뜨겁게 달아오른 바 있고, 이미 공영으로 법개정이 이뤄졌으니 일단은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공영이든 민영이든 지극히 관성적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우디는 오일머니를 퍼붓고 있는데, 우리는 스포츠예산의 기반인 토토기금을 늘리는 데 주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연간 상한액을 크게 늘려야 합니다. 또 스포츠토토 대상종목을 지금의 6개(축구 야구 농구 배구 골프 씨름)에서 10개 이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입니다. 스포츠 저널리즘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당신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돈이다(The answer to all your questions is money)." 스포츠토토 사업을 담당할 한국스포츠레저에 기대를 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