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과 이창호...영화 ‘승부’로 본 '스포츠 키즈 문화' [유병철의 스포츠 렉시오]
  • 유병철 기자
  • 입력: 2025.04.23 00:01 / 수정: 2025.04.23 00:01
'조훈현 세계제패'와 '이창호 내제자'는 동시 진행
송아지 3총사 이후 골프, 야구, 피겨로 이어져
스포츠의 선도적 역할이 중요

사제지간인 ‘바둑황제’ 조훈현과 ‘신산’ 이창호의 세대교체기를 다룬 영화 ‘승부’의 포스터.
사제지간인 ‘바둑황제’ 조훈현과 ‘신산’ 이창호의 세대교체기를 다룬 영화 ‘승부’의 포스터.

[더팩트 | 유병철 전문기자]

# 바둑이 스포츠인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논쟁이죠. 압축하자면 학계에서는 부정하지만, 현실에서는 수용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전자는 한국체육학회가 대표적인데, 여러 이유 중에서도 결정적으로 ‘큰 근육의 활동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후자는 전통적인 바둑 체스 장기는 물론, 최근 e스포츠의 급부상을 근거로 아예‘두뇌스포츠(혹은 마인드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이미 스포츠화를 정착시키고 있습니다.

바둑은 이미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고, e스포츠는 아시안게임을 넘어 올림픽 진입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특히 비폭력적인, 스포츠 기반 게임(피파 레이싱 등)은 제법 긍정적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한국이 선도하는 ‘스크린 골프’처럼 대근육 운동이 포함된 스크린 종목은 부정할 수 없는 스포츠입니다. 탁월한 경제성과 접근성, 공정성, 친환경성 등으로 전망이 밝습니다. 배구와 비치발리볼, 농구와 3대3농구처럼, 미래에는 모든 스포츠종목이 ‘필드’와 ‘스크린’, 두 가지 방식으로 열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사제지간인 ‘바둑황제’ 조훈현과 ‘신산’ 이창호의 세대교체기를 다룬 영화 ‘승부’가 화제입니다. 대근육 사용이 없을 뿐 제목부터 스포츠영화로 손색이 없습니다. 무명의 세계제패(조훈현 응씨배 우승)로 시작해, 조서시대(조훈현-서봉수 시대, 영화에서는 조남시대)를 마감한 역사적인 3차례 전관왕, 그리고 시골 신동의 내제자 만들기, 제자에게 밀려 무관으로 밀려나는 좌절과 이어진 극복. 모두 현실의 이야기이고, 실존인물들이 생존해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그 감동이 아주 진합니다.

국회의원 시절 조훈현(왼쪽)과 제자 이창호 9단. l 더팩트
국회의원 시절 조훈현(왼쪽)과 제자 이창호 9단. l 더팩트

# 심화학습을 위해 영화에 나오지 않은 두 가지를 톺아봅니다. 먼저 K바둑의 탄생입니다. 조훈현의 이창호 양성은 세계 바둑사에 있어 역사적 사건입니다. 요즘 웬만한 문화콘텐츠에 'K'자를 붙이는데, 영화 ‘승부’는 사실 이후 세계를 호령하는 ‘K바둑’의 탄생을 조명한 겁니다.

조훈현은 아직도 세계기록인 9세에 한국에서 프로가 되죠(1962년). 그리고 이듬해 바둑선진국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세고에 겐사쿠의 내제자로 들어갑니다. 이후 1972년 병역문제로 귀국할 때까지 10대 시절을 일본에서 보냅니다. 이러니 일본이 조훈현의 바둑을 일본바둑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20대 청년 조훈현이 한국에서 서봉수의 저항을 일축하며 3차례나 전관왕(80년, 82년, 86년)을 달성하자 일본기원은 요즘 말로 조훈현이 ‘양민학살’을 하는 것쯤으로 여깁니다. 반면 나중에 중국에서 ‘공이증(이창호를 두려워한다)’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세계 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꾼 이창호는 온전한 국산, 즉 K바둑의 성과물인 것이죠.

10대 시절 조훈현(왼쪽)과 스승 세고에 겐사쿠. l MBC 인간시대 화면캡처
10대 시절 조훈현(왼쪽)과 스승 세고에 겐사쿠. l MBC 인간시대 화면캡처

# 두 번째는 바둑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1회 응씨배의 의미입니다. 바둑 세계 최강의 지위가 오랫동안 이를 누려온 일본을 거쳐 잠시 중국을 찍고 한국으로 건너온 스토리입니다. 조훈현은 일본에서도 엄청난 기대주였습니다. 심지어 스승 세고에는 1972년 조훈현이 한국으로 돌아가자 그해 7월 이를 통탄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방식도 충격적이었는데 스스로 목을 졸랐지요(이게 의학적으로 가능한지 논란이 됐습니다). 유언 중 하나가 ‘조훈현을 꼭 다시 (일본으로)데려와야 한다’였습니다. 이후 일본기원은 1984년 바둑의 세계화를 위해 중국기원과 함께 1984년 중일슈퍼대항전을 창설했습니다. 양국 8명의 기사가 이기면 계속 두고, 지면 탈락하는 연승전 방식이었죠.

당연히 일본의 완승이 예상됐죠. 그런데 중국의 마지막 주자 녜웨이핑(섭위평)이 마지막에 일본기사 3명을 모두 꺾었습니다. 이 3명은 약속대로 삭발을 해야했습니다. 그리고 녜웨이핑은 1985년에도 마지막주자로 나서 5명의 일본기사를 격파했고, 86년에도 1승을 보태 중국의 3연속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철의 수문장이 탄생했죠. 응씨배는 이에 자극받은 대만의 부호 잉창치(응창기) 씨가 1988년에 만든 바둑올림픽입니다. 중국바둑, 특히 녜웨이핑의 세계 바둑황제 대관식을 염두에 두고 창설한 것입니다. 16강 토너먼트인데, 주최측이 한국을 뺄 수 없어 구색맞추기로 넣은 조훈현이 결승에 녜웨이핑을 3-2로 꺾고 우승해버린 겁니다. 영화에서는 순서가 바뀌었는데 영화의 시작인 조훈현의 세계제패(1989년 응씨배)와 이창호 내제자 양성(1984년 시작)은 사실 동시에 이뤄졌습니다.

1989년 조훈현(왼쪽)과 녜웨이핑의 제1회 응씨배 결승전 모습. l 한국기원
1989년 조훈현(왼쪽)과 녜웨이핑의 제1회 응씨배 결승전 모습. l 한국기원

# ‘세리 키즈’라는 말이 있죠. 1998년 박세리의 미LPGA 제패 때 이를 지켜본 1988년생 박인비, 신지애, 이보미, 김하늘 등이 이후 스타플레이어들로 성장한 현상을 말하죠. 김효주, 고진영 등 1995년생 ‘리틀 세리 키즈’까지 있습니다. 같은 시기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활약하면서 ‘박찬호 키즈’가 등장했습니다.

2000년대에는 수영의 ‘박태환 키즈’, 그리고 2010년대에는 피켜스케이팅의 ‘김연아 키즈’가 나왔습니다. ‘키즈 문화’는 엄밀히 따지면 바둑이 먼저입니다. 바둑에서는 1985년생 소띠 ‘송아지 3총사’가 있었습니다. 최철한, 원성진, 박영훈인데요. 각각 12세, 13세, 14세에 입단하고, 박영훈은 2004년 후지쓰배, 최철한은 2009년 응씨배, 원성진은 2011년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하는 등 모두 세계제패를 달성했죠.

영화 ‘승부’가 다루는 조훈현-이창호의 첫 세대교체인 제29기 최고위전은 1990년입니다. 송아지 3총사는 1990년대 사제혈투의 기보를 보며 이후 황소로 성정한 겁니다. ‘조훈현-이창호 키즈’인 셈이죠.

세리 키즈는 스포츠 키즈 문화의 대표적인 말이 됐다. 한 금융회사는 아예 세리키즈 골프장학생을 뽑기도 했다.
'세리 키즈'는 스포츠 키즈 문화의 대표적인 말이 됐다. 한 금융회사는 아예 세리키즈 골프장학생을 뽑기도 했다.

# 따지고 보면 스포츠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미국과 서양은 물론, 일본을 동경하던 대중문화도 이제 K콘텐츠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고, 한국의 아이돌이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등 정말이지 ‘눈떠보니 선진국’이 됐습니다. 페이커 이상혁의 e스포츠도 그렇지요. 심지어 소설도 ‘일류’, ‘중류’라는 말이 지배할 정도로 국산파워가 약했는데, 이제는 노벨문학상이 나올 정도로 쟁쟁한 한국작가들이 많다고 합니다.

순서로 보면 바둑을 포함한 스포츠가 한류의 선두주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을 진단하면 ‘신공지능’ 신진서의 바둑은 아직 세계 최강의 위용을 지키고 있지만, 한국 최대의 수출품으로 불리는 여자골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승 우승의 야구, 그리고 피겨와 수영은 조금 내리막인 듯싶습니다.

원래 사회적으로 스포츠의 기능 중 하나가 선도적 역할입니다. ‘키즈 문화’처럼 미래를 개척하고, 핑퐁외교 남북스포츠 교류처럼 국제질서를 반영합니다. 먹고살기 어려운 시대, 한국 스포츠가 또 한 번 힘을 내 새로운 키즈 문화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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