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여자 프로골퍼들이 최고의 기량을 과시하는 전성기는 언제쯤 일까.
물론 개인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남자들보다는 일찍 꽃을 피운 뒤 그 만큼 일찍 내리막을 타는 것이 일반적이다. 2010년 대 초 KLPGA투어의 경우를 살펴 보면, 빠르면 10대 후반부터 22~23세 정도에 가장 절정의 성적을 내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전세계 현역 선수 중 가장 많은 승수(65승)를 기록하며 ‘노익장(?)’을 과시 중인 신지애는 18세였던 2006년부터 3년간 국내 여자투어에서 무려 19승을 쓸어 담으며 ‘지존’으로 군림했다. 같은 시기 2년간(2008~2009년) 11승을 몰아쳤던 서희경의 나이도 이 때가 22, 23세다.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던 전인지, 박성현, 장하나 등도 예외 없이 20대 중반이 되기 전에 기량이 만개하곤 했다. 물론 20대 후반까지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경쟁력을 과시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대개는 최고점을 지나 하향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원대한 포부를 안고 미LPGA투어로 눈길을 돌리는 선수 역시 자신들이 가장 자신이 있는 절정의 시점, 또는 그 직전에 도전을 결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박세리가 신인으로서 메이저 2승 등 시즌 4승을 올리며 미국 무대를 뒤흔든 때가 고작 21살이었고 뒤 이은 김미현과 박지은도 각각 22, 21세의 나이에 투어에 입성, 걸출한 성적을 남겼다.
시점을 2010년대 후반으로 옮겨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두 차례 LPGA투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세계 랭킹 1위 자리도 상당 기간 유지했던 고진영은 22세 때 국내에서 열렸던 LPGA투어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해 멤버십을 받은 뒤 이듬해 미국에 진출, 이제껏 15승(메이저 2승)을 기록 중이다.
같은 1995년생인 김효주는 더 빠르다. 김효주는 19세 때인 2014년 비 멤버 입장에서 출전한 메이저대회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덜컥 우승한 뒤 20세에 투어에 정식 입성, 통산 6승을 올렸다. 이밖에 투어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양희영(통산 6승), 김세영(12승) 등도 18세, 22세 때 각각 망망대해 같은 투어에 뛰어들어 역경을 헤쳐 나간 선수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인 경향, 또는 상식을 거슬러 서른의 적지 않은 나이에 절정의 불꽃 스윙을 구사하는 선수가 있어 팬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올시즌 들어 미LPGA투어에 김아림(30·메디힐)의 ‘늦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김아림은 지난 2일 싱가포르의 센토사 코스에서 끝난 HSBC위민스 월드챔피언십(총상금 240만달러)에서 합계 6언더파 282타로 공동 7위에 올랐다. 우승은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가 차지했고 한국 선수 중에는 임진희(공동 4위) 다음으로 좋은 성적이다.
올시즌 개막전인 힐튼 그랜드 베이케이션스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당당 챔피언에 올라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던 김아림은 한 주 휴식 뒤 출전한 혼다LPGA와 이번 HSBC위민스챔피언십에서 연속 톱10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김아림은 고진영, 김효주와 같은 1995년 생으로 올해 서른이다. 2020년 LPGA 멤버가 아닌 입장에서 참가했던 US여자오픈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하며 멤버십을 획득한 뒤 이듬해 26살의 나이에 투어에 정식 데뷔했다. 고진영 보다는 4년, 김효주 보다는 무려 6년 늦었다.
그러나 김아림은 지금의 나이가 남들은 내리막을 타는 시기임에도 반대로 해를 거듭할수록 기량이 급속도로 발전, 이제는 투어 최정상의 자리를 넘볼 만큼 괄목상대했다. 비록 올해 아직 4개 대회 밖에 치르지 않은 상태지만, 올해의 선수상 부문과 CME글로브 순위에 각각 1위에 올라 있고, 상금부문에서는 리디아 고에 이어 2위에 랭크됐을 만큼 눈부시다.
김아림은 지난해 11월 하와이에서 열렸던 롯데챔피언십에서도 정상에 오른 바 있어 최근 투어에서 한국선수가 올린 2승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내는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김아림은 투어에 정식 데뷔한 2021년, 23개 대회에 출전해 15차례의 컷 통과에 톱10 4회를 기록하면서 상금 랭킹 52위에 그쳤으나 이듬해 바로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 상금 랭킹을 40위(2022년), 32위(2023년)로 끌어 올린 뒤 급기야 지난해에는 1승을 추가하는 등 처음으로 상금 100만달러를 넘기며 23위(119만여 달러)까지 성장세를 보였다.
이처럼 남들은 힘이 빠지기 시작하는 시기에 역으로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는 김아림의 저력은 어디에서 기인되는 것일까.
우선은 서양 선수들에 전혀 밀리지 않는 당당한 피지컬과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타력이 근간이다. 김아림은 1m75의 큰 키를 이용해 평균 270야드를 넘나드는 드라이버 비거리를 자랑한다. 여기에 지난 4~5년간의 투어 경험이 접목되면서 경기 운영 능력이 눈부시게 성장했다는 평가다.
김아림은 HSBC위민스챔피언십에서 2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다 3라운드에서 예의 드라이버가 흔들리며 페어웨이를 5차례 밖에 지키지 못했고 그린 적중률 역시 60%를 간신히 넘기는 등 샷이 흔들렸으나 노련한 위기 돌파로 상위권을 유지하는 한층 성숙한 플레이로 결국 톱10을 지켜냈을 정도다.
또한 김아림은 늘 생글거리며 대회를 즐기는 긍정적인 성품이면서도 자신의 부족한 점을 정확히 분석한 뒤 집중 훈련을 통해 극복하는 노력파이기도 하다. 김아림은 혼다LPGA가 열렸던 태국에서 국내 언론(국민일보) 인터뷰를 통해 "130야드 이내의 샷과 6야드 안쪽 퍼팅의 성공률을 높이는데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부족한 부분이고 이것이 보완되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하고 "앞으로도 이런 부분을 채워 나가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인 바 있다.
김아림은 올시즌 3개 대회서 78%의 그린 적중률(20위)과 29개의 평균 퍼팅수(15위)를 기록, 지난해 70.91%(44위), 30.12개(68위)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지난 겨울의 집중훈련이 바로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이제 이 같은 경험과 노력에 자신감까지 붙은 김아림이 최근 LPGA투어에서 침체 국면을 보여 온 한국여자골프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을지 팬들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김아림은 6일부터 중국 하이난에서 열리는 블루베이LPGA(총상금 250만달러)에 출전, 시즌 2승 및 4개 대회 연속 톱10을 노린다. 이 대회에는 세계랭킹 1위인 넬리 코다와 지난주 우승자인 리디아 고가 출전하지 않는다. 반면 올시즌 투어에 도전장을 던진 윤이나(22)가 퀄리파잉시리즈 상위 입상자 카테고리로 출전할 예정이다. 윤이나는 자신의 투어 데뷔전이었던 파운더스컵에서는 티샷 난조로 예선탈락을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