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탁구 여자 국가대표 '바꿔치기의 진실' [유병철의 스포츠 렉시오]
  • 유병철 기자
  • 입력: 2025.03.03 00:00 / 수정: 2025.03.03 07:36
스포츠윤리센터도 확인한 올림픽 대표선수 바꿔치기
적반하장 격 엉뚱한 해명에도 비판은 없어
체육의 핵심가치인 공정성 훼손
2020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을 앞두고 대한탁구협회가 경기력향상위원회 선정 여자 올림픽대표 선수 한 명을 회의 후 전화로 바꿔치기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고 있다. 당시 대한탁구협회 회장은 유승민 현 대한체육회장으로 체육회장 선거 당시 이 문제가 이슈로 등장하자 해명을 한 바 있으나 최근 스포츠공정위는 이 사건의 정당성과 회장의 개입여부에 대해 감사원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감사원 이첩을 결정했다./뉴시스
2020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을 앞두고 대한탁구협회가 경기력향상위원회 선정 여자 올림픽대표 선수 한 명을 회의 후 전화로 바꿔치기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고 있다. 당시 대한탁구협회 회장은 유승민 현 대한체육회장으로 체육회장 선거 당시 이 문제가 이슈로 등장하자 해명을 한 바 있으나 최근 스포츠공정위는 이 사건의 정당성과 회장의 개입여부에 대해 감사원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감사원 이첩을 결정했다./뉴시스

스포츠윤리센터 누리집에 나온 소개자료.
스포츠윤리센터 누리집에 나온 소개자료.

# 먼저 다소 생뚱맞지만 이번 칼럼 작성의 배경 및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학 졸업 후 스포츠 분야에서 글쓰기를 30년 가까이 하고 있는데 이번 기사는 쉽게 써지지 않았다는 점을 정중히 말씀드립니다. 이유는 칼럼니스트 본인이 해당 내용을 스포츠윤리센터에 고발한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충분한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고, 보도가치, 팩트 전달, 언론의 역할, 양심과 용기 등을 오래 고심한 끝에 기사화를 결심했습니다. 지난 대한체육회장 선거 때 불거진 유승민 후보(현 회장)의 탁구 국가대표(선수) 바꿔치기의 진실을 ‘제대로’ 보도하려합니다. 진실은 은폐될 수 없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공격한다고 해도 달은 그대로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 핵심은 간단합니다. 해당 선수 본인도 모른 채 올림픽 대표선수가 부당하게 바꿔치기된 것입니다. 2020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을 앞두고 2021년 2월21일 광교씨름체육관에서 대한탁구협회의 경기력향상위원회(이하 경향위, 당시 위원장 김택수)가 열렸습니다. 남녀 올림픽 대표선수를 선발하는데, 문제는 여자선수였습니다. 갑론을박 끝에 경향위는 전지희-신유빈-이시온을 선발했습니다(남자는 장우진-이상수-정영식).

그런데 경향위 종료 후, 김택수 위원장이 당시 광교씨름체육관에 있던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에게 보고하고는 이시온이 최효주로 전격 교체됐습니다. 김택수 위원장이 경향위 위원 전체가 아닌, 일부 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바꿔치기를 단행한 겁니다. 언론보도가 최효주로 나갔고, 그렇게 최효주는 그해 도쿄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그리고 성적도 참담했습니다. 2016 리우 올림픽에 이어 2회 연속 한국 탁구는 올림픽 노메달의 수모를 겪었습니다.

김택수 미래에셋증권 탁구단 총감독. 국가대표선수 바꿔치기 사건 발생 당시 대한탁구협회 전무 겸 경기력향상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 더팩트 DB
김택수 미래에셋증권 탁구단 총감독. 국가대표선수 바꿔치기 사건 발생 당시 대한탁구협회 전무 겸 경기력향상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 더팩트 DB

# 국가대표, 특히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태극마크는 선수에게 인생이 걸린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종목이든, 회장이든 누구든, 개인이나 몇몇이 밀실에서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경기력향상위원회와 같은 특별한 협의체를 구성해 공정하게 선발합니다.

한국 양궁이 올림픽 본선보다 더 까다롭다는, 치열하고 공정한 국가대표선발 시스템을 바탕으로 세계를 호령하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죠.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공정’입니다. 단연코 위 사건은 있어서는 안 될, 스포츠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끔찍한 범죄행위입니다. 그들(누군가 지시하고, 누군가는 이를 실행했기에 복수로 표기)이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는 짐작이 가지만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내가 가르쳤던 선수,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선수 등의 사적 판단이 작용했을 겁니다.

# 혹시나 몰라 언급합니다. 못된 짓을 행한 이들이 자기방어 차원에서 내세울 수 있는 부끄러은 변명 말입니다. 선발전 순위에서 최효주(2위)가 이시온(3위)에 앞선다는 논리는 아주 엉터리입니다. 같은 경향위는 남자 3위인 정영식을, 2위인 안재현 대신 선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향위가 결정한 것을 밀실논의를 거쳐, 개별 전화통화로 뒤집었다는 절차적 공정성의 훼손이죠. 경향위의 결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회장은 경향위를 다시 열어 재논의하라고 지시했어야 합니다. 물론, 이런 재논의 지시도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오류가 있어야 하고, 회장의 혼자 판단으로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체제에 비유하자면 독재나 과두정에 비견되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기 때문입니다.

2021년 2월 열린 도쿄 올림픽 탁구 국가대표선발전 모습. / 대한탁구협회 홈페이지
2021년 2월 열린 도쿄 올림픽 탁구 국가대표선발전 모습. / 대한탁구협회 홈페이지

# 사건 발생 당시 즉시 알려지고 바로 잡아야 할 이 문제는 3년을 훌쩍 넘겨 지난해 10월 대한탁구협회장 선거 때 이슈화됐습니다. 많이 늦었지요. 왜 그랬을까요? 탁구계에는 '외부로 나쁜 뉴스가 나가면 좋을 게 없다'는 시대에 뒤떨어진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반성해야할 일이지만 탁구인들이 권력에 약하다는 비겁함도 작용한 것 같습니다.

건전한 비판을 가로막는 이런 못된 문화는 사실 유승민 회장 시절 대한탁구협회에 만연했다고 생각합니다. 협회에 비판을 가하면 ‘내부총질자’로 왕따를 놓거나, 당근을 제시해 입틀막을 시도한 정황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필자도 2023년 초 프로탁구 사무처장을 맡고 있을 때 대한태권도협회의 부당한 대표선수 선발 기사를 접하고, 위 사건을 언급하며 ‘탁구에서는 더 심한 경우도 있었다’고 SNS에 글을 올렸다가 황당한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협회 부회장으로 더 높이 올라가 있던 김택수 감독이 감독자 회의를 소집해 사무처장 징계를 주장했습니다. 다행히 징계는 없었지만 이게 프로탁구의 감독자회의 안건으로 채택됐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체육계는 표현의 자유도 없는지요? 어쨌든 탁구협회장 선거에서 이 문제를 다시 접한 필자는 ‘나도 비겁했다’는 자괴감이 들어 반성하고, 용기를 내 2024년 11월 스포츠윤리센터에 이 문제를 직접 고발했습니다.

# 2025년 1월 대한체육회장 선거 때는 국가대표선수 바꿔치기 사건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이 사건을 비롯해, 후원금 인센티브 수령 등 유승민 후보의 여러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TV토론 생방송 때 강태선, 강신욱 후보가 직접 발언했습니다. 박창범 전 대한우슈협회장은 체육회장 선거를 앞두고 체육회 민주화를 위해 단식을 하고, 이후 선거에서는 강신욱 후보와 단일화를 해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죠.

박 전 회장은 비슷한 시기 언론에 상세하게 유승민 후보의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얼마 전 만난 박창범 전 회장은 "당시 중앙(서울)언론은 제대로 다루지 않아서 지방에서 기자회견을 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런데 모 인사로부터 기사를 내리면 유승민 후보와 단일화를 성사시켜주겠다는 제안이 와서 어렵게 부탁을 해 기사를 내리거나 축소한 바 있다"고 술회했습니다.

지난 1월 14일 제42대 대한체육회장으로 당선된 유승민. 그는 전날 자신의 비리 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 대한체육회 홈페이지
지난 1월 14일 제42대 대한체육회장으로 당선된 유승민. 그는 전날 자신의 비리 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 대한체육회 홈페이지

# 더 가관인 것은 선거일 전날인 1월 13일에 나왔습니다. 유승민 후보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선수 바꿔치기’라는 용어를 쓴 것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강태선 강신욱 후보에게 사과를 요청했습니다. 유 후보는 "당시 국가대표 감독이 B 선수를 원했는데, 자료를 받아서 확인했을 때 납득하지 못했다. 불공정한 선발이어서 재고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관에 있는 협회장 권한을 사용하지 못하고 다 받아들였다면 오히려 탁구협회가 불공정 논란에 휩싸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지요? 도대체 회장이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이었는지요? 그리고 회장이 개인적으로 납득하지 못하면, 경향위를 다시 열지 않고 그냥 전화로 일부 경향위원에게 얘기하고 올림픽대표선수를 변경하면 되는지요? 그럼 뭐하려고 대표선발전을 하고, 경향위 논의를 하는지요? 이게 선수 바꿔치기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나아가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에게 사과까지 요구하다니, 정말이지 ‘적반하장(賊反荷杖)’ 네 글자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궁지에 몰려 급히 내놓은 유승민 회장의 조잡한 변명을 날카로운 비판 없이 받아쓰기로 보도한 언론들의 태도도 정의롭지 못합니다.

# 지난 2월 24일 스포츠윤리센터로부터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서는 여자 이시온 선수를 추천하기로 결정하고, 경향위는 해산되었음에도, 재논의 과정 없이 최효주 선수로 변경하여 이사회 안건으로 제출하여 대한체육회 승인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었다. 피신고인 김택수의 주장대로 경향위 위원들로부터 전화동의를 받았다 하더라도 이 과정이 정당했는지와 선수가 변경되는 과정에 회장의 개입이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 필요성이 있어 감사원에 이첩하고,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사중지하였다.’

3개월 넘게 윤리센터가 수십 명의 관계자를 조사한 결과는 제보 내용의 신빙성을 확인해주었습니다. 감사원 이첩은 추가로 취재해보니 모 탁구인이 감사원에 유승민 회장 관련 다수의 비리를 제보했고, 이중 하나가 국가대표선수 바꿔치기였기에 감사원이 요청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 잘못을 저지른 자들의 사과나, 징계는 없습니다.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스포츠 비리 사례집. 문화체육관광부는 조직사유화, (성)폭력, 입시비리, 승부조작을 스포츠 4대악으로 규정했다.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스포츠 비리 사례집. 문화체육관광부는 조직사유화, (성)폭력, 입시비리, 승부조작을 스포츠 4대악으로 규정했다.

# 자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유승민 후보는 1월 14일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3연임에 도전한 이기흥 회장을 꺾고 대한체육회장에 당선됐습니다. 우리는 체육인, 그리고 미래세대인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겠습니까? 회장에 당선됐으니 이런 사소한 문제는 덮어두자고 하면 동의하겠습니까? 혹은 이제 유승민이 대한체육회 권력을 잡았고, 국회의원 공천 제의까지 받을 정도로 정치권과도 친분이 두터우니 이 사건은 묻힐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까?

나쁜 짓을 감시하고, 바로잡는 스포츠윤리센터나 감사원도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진실규명과 사과 및 관계자 처벌은요? 만일 이게 정당하다면 대한체육회 산하 모든 종목이 이렇게 대표선발을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게 선거과정의 네거티브 공세인가요? 선거는 원래 네거티브, 포지티브 이런 거 다하라고 있는 겁니다. 여의도 정치도 그렇지만 깜깜이 선거로 유명한 우리네 체육계 선거는 후보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아 문제입니다. 판단은 체육인, 그리고 국민들의 몫이고, 그 결과는 우리네 민주주의 수준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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