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V157’이란 타이틀을 가진 모임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해도 부족하지 않을 내로라하는 여자 프로골퍼들의 모임이다. 구성원 7명이 모두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투어 등에서 최정상급 활약을 펼쳤거나, 또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이 올린 우승의 합이 모임 결성 당시 157승이라 이런 이름을 붙였다. 모두가 초등 시절 "나도 박세리 처럼"을 외치며 골프 채를 잡은 소위 ‘세리 키즈’다.
하지만 어느덧 이들도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고, 그래서 ‘세리 키즈의 키즈’가 프로골퍼가 되는 시점이 됐다. 멤버 중 박인비, 신지애, 최나연, 김하늘, 이보미, 이정은5는 88년생 동갑이고 유소연이 두 살 어리다. 최나연, 김하늘, 이보미는 이미 은퇴해 새로운 길을 가고 있고 막내 유소연도 지난해 은퇴를 선언한 뒤 방송 해설 등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인비는 은퇴를 공식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2022년 하반기 이후 공식 대회에 나서지 않은 채 '반 은퇴' 상태다.
이런 가운데 유독 신지애만이 세월을 거스르는 왕성한 활약을 펼치며 한국여자골프 ‘전인미답’의 새로운 고지 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신지애는 다음 달 6~9일 일본 오카나와의 류큐GC에서 열리는 올시즌 JLPGA투어 개막전 다이킨 오키드 레이디스골프토너먼트(총상금 1억 2000만엔, 한화 약 11억 5,236만원)에 출전한다. 신지애는 이 대회에서 40위권 이내의 성적만 거둔다면 일본 여자투어 개인통산 상금 1위라는 금자탑에 오르게 된다.
현재 통산 1위는 일본의 후도 유리(49)로 총 495개 대회에 출전해 13억 7,262만 382엔(한화 131억 8,501만 2,637.38 원)을 획득했다. 신지애는 이에 단 59만 6,977엔(약 573만 4,382원) 뒤진 13억 7,202만 3,405엔(약 131억 7,924만 5,221원)을 벌어 들여 턱밑에서 추격 중이며 공교롭게도 이번 대회가 신지애의 일본투어 300번째 경기이기도 해 무려 200개 대회 가까이를 덜 뛰고도 최고 상금의 위치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번 개막전에는 후도 유리도 출전한다. 2001, 2003년 이 대회 챔피언이기도 한 후도 유리는 JLPGA;투어에서만 50승을 거둔 레전드다. 2003년 시즌에는 무려 10승을 몰아치기도 했고 7승 한차례(2004년), 6승 두차례(2005, 2009년) 등 한 때 일본여자투어의 지존으로 군림하던 선수다.
이 같은 성적으로 평생시드를 가지고 있어 지금도 정규투어에 간간히 출전한다. 하지만 지난해 전체의 30% 정도인 12개 대회에 출전해 10개 대회에서 예선탈락을 했고 컷오프를 통과한 2개 대회도 30위권에 그쳐 금년 대회서 상금 획득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듯싶다.
이같이 후도 유리가 상금을 추가하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신지애는 중위권에만 들어도 역전이 가능하게 된다. 이번 대회 우승 상금은 전체의 18%인 2,160만엔(한화 2억 748만 960원)이고 컷오프 선인 50위는 48만엔(한화 461만 4,432원)을 받는다. 다만 공동 50위까지 상금을 받을 수 있어 상금왕 역전 마지노 순위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40위권 이내만 들면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지애는 이 대회 2023년도 챔피언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파리 올림픽 출전권 획득 을 위해 미LPGA투어 등 해외 투어에 신경쓰느라 디펜딩 챔피언임에도 출전하지 못했지만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코스다. 또한 올해로 38회째를 맞는 다이킨 오키드 대회에서는 초창기 일본투어 진출 1기라 할 수 있는 고우순 프로와 현 신지애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김애숙 프로가 각각 우승한 바 있고, 이후 안선주가 2차례(2010, 2017년) 정상에 올랐을 뿐 아니라 송보배, 박인비, 이민영 등도 각각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은 대회이기도 하다.
현재 폭스콘 TLPGA 플레이어스챔피언십(총상금 150만달러) 출전차 대만에 머무르고 있는 신지애는 "개막전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기분 좋은 일이다. 그 동안의 성과를 보상받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하고 "다만 과거보다 상금이 많이 높아져서 적은 대회와 승수로도 따라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매니저인 김애숙 프로를 통해 전했다.
신지애는 올해 일본투어에 보다 집중할 계획이다. 현재 일본투어에서 28승을 기록 중인 신지애는 빠른 시일 내 2승을 추가, 평생시드권을 받을 수 있는 30승을 채우겠다는 목표로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신지애는 사실 일본에서 30승을 올리기는 했으나 정식 입회 전에 올린 1승(2008년 요코하마타이어 PRGR레이디스컵)과 미LPGA 멤버로 우승한 2010년 미즈노클래식은 합산이 되지 않아 공식적으론 28승만 인정되고 있다.
신지애는 지난해 12월 호주여자투어 ISPS호주오픈에서 우승함으로써 개인통산 65승째를 기록했다. KLPGA투어 21승, 미LPGA투어 11승(메이저 2승), 일본투어 28승 등 글로벌 투어 65승으로 전세계 현역 여자선수 중 가장 많은 승수를 올리고 있다.
신지애가 과연 일본투어 개막전에서 또 하나의 신기원을 써내려갈 수 있을 지 기대가 모아지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