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스포츠 '오늘'] 14년 그리고 7분, 신금단 부녀 상봉
  • 최정식 기자
  • 입력: 2017.10.09 01:00 / 수정: 2017.10.09 01:00

[더팩트 | 최정식기자] 53년 전 오늘 북한의 육상선수 신금단이 열두 살 때 헤어진 남쪽의 아버지 신문준 씨를 만났다.

신금단은 1963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1회 가네포(GANEFO, 신생국경기대회)에서 육상 여자 200m(23초4)와 400m(51초4), 800m(1분59초1)를 석권하며 3관왕에 올랐다. 400m와 800m 기록은 당시 세계최고기록이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신금단은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육상경기연맹이 가네포에 참가한 선수는 1년간 올림픽과 국제육상대회에 나갈 수 없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1962년 아시아경기대회를 개최하면서 자유중국과 이스라엘의 참가를 거부했는데 이에 대해 국제적 비난 여론이 일자 창설한 대회가 가네포였다.

신금단의 출전이 불가능해지자 북한은 도쿄 올림픽 개막을 이틀 앞둔 10월 8일 대회 불참과 일본에 와 있던 선수단의 철수를 전격 발표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신금단의 아버지 신 씨가 딸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도쿄로 출발했다. 신 씨는 신금단이 가네포에서 우승했을 때 신문에서 기사를 읽고 1950년 12월 함경남도 이원을 떠나 1.4후퇴 때 단신으로 월남하면서 헤어진 자신의 딸임을 확신했던 터였다.

신금단의 올림픽 출전 여부에서 부녀 상봉으로 관심이 옮겨졌고 두 사람이 만나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자 북한당국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0월 9일 오후 4시55분 신금단과 아버지 신 씨는 도쿄 조총련회관에서 해후했다. 신금단은 "아바이(아버지)"라고 외쳤고 신 씨는 "금단아!"만을 되풀이했다.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던 두 사람의 만남은 14년의 이별에 비해 너무나 짧은 7분 만에 끝났다. 신금단은 다시 헤어지면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시 만날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만날 것이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통일될 것이니까"라고 답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신 씨는 1983년 세상을 떠났다. 신금단은 은퇴 후 인민체육인 칭호를 수여받고 압록강체육선수단 등의 육상 지도원을 지냈다. 지난 2008년 70세의 나이에도 선수들을 직접 지도하는 모습이 북한 화보지에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지난 4일 한가위를 맞아 이산가족 등 실향민들이 파주 임진각에서 고향을 바라보며 합동 망향제를 지냈다. 최근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돼 실향민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54년 전 신금단 부녀의 비극적인 상봉은 여전히 분단을 상징하는 아픔으로 남아 있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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