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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팩트'가 27일 박태환-장예원 단독 기사 8개를 출고했지만 타 매체 기사들에 밀려 포털에서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네이버 캡처 |
[더팩트 | 심재희 기자] '우라까이에 깔려 버린 단독 기사!'
특종(特種). '특별할 특'에 '뿌리다 종'. 특별히 씨를 뿌려 얻어 낸 기사를 뜻한다. 덧붙여 설명하면, 단독으로 보도한 내용이 매우 중요해 다른 언론에서 앞다퉈 기사로 다룰 때 '특종 기사'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는 '특종 기사'가 없다. 포털 사이트에 종속된 뉴스 소비 시스템 속에 있는 언론사들이 무분별한 트래픽 경쟁으로 특종 기사를 베껴 쓰는 바람에 첫 보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여러 달의 노력 끝에 얻은 '특종 기사'가 단 몇 분 만에 그 기능을 잃고 효과를 전혀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6일 오후 6시 <더팩트>는 '특급 스타와 미녀 방송인의 만남'에 대한 단독 기사를 예고했다. 27일 오전 7시 현장 사진을 담은 단독 기사가 출고된다고 알렸고, 누리꾼들의 '주인공 찾기'가 시작됐다. 포털과 커뮤니티의 게시물 및 댓글 등에 여러 스타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며 '특종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더팩트>는 약속한대로 27일 오전 7시 단독 기사를 '대방출'했다. 모두 8개의 기사를 공개한 가운데, 단독 기사의 주인공이 '마린보이' 박태환과 '예누자이' 장예원 아나운서란 사실을 밝혀 많은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생생한 현장 사진과 취재 뒷이야기 등이 인포그래픽과 함께 서비스되며 더욱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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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팩트'의 박태환-장예원 단독 기사가 27일 오전 7시에 출고된 후 타 매체들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오전 11시 30분전까지 한 포털 사이트에 박태환 관련 기사만 1000개가 넘을 정도였다. /네이버 캡처 |
'박태환-장예원 수차례 만남! '썸 타는 사이?' 기사를 비롯해 8꼭지의 기사가 모두 나간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른 매체들의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오전까지만 1000개 이상의 기사가 생산되며 포털 사이트 검색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더팩트> 취재진이 두 달여 기간을 두고 특별하게 씨를 뿌려 기사를 만들었고, 타 매체들이 앞다퉈 기사로 다뤘으니 '특종'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하지만 특종 생산의 기쁨과 뿌듯한 마음은 곧바로 허무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기형적인 뉴스 소비 시스템과 언론사들의 과열 경쟁으로 제목만 바꾼 어뷰징 기사로 단독 기사는 처참하게 묻히며 씁쓸하게 독자들의 눈에서 사라졌다. 오용 남용 폐해란 뜻을 지닌 어뷰징(abusing)이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언론사가 의도적으로 검색을 통한 클릭수를 늘리기 위해 남의 기사를 베끼거나 동일한 제목의 기사를 반복 전송하는 것을 말한다.
국내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감시하는 '미디어오늘'은 지난 4월 세월호 참사에서 나타난 언론 보도들의 행태를 두고 "이슈가 터지면 기자들은 어뷰징에 동원된다"는 제목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한겨레 신문은 지난 3월 '어뷰징 막장 치닫는 자칭 정론지들'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연예인 성 관련 이슈가 터지면 정론지들조차 트래픽 사냥에 나서 언론의 본분을 잃고 있다고 개탄한 바 있다.
이밖에도 지난 24일 인터넷신문위원회는 인터넷신문윤리강령 개정 등 공청회를 열여 어뷰징의 심각성과 대안 모색에 관심을 기울이는 등 뉴스 어뷰징 문제는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뜻있는 언론 관계자들은 국내의 기형적인 뉴스 소비 시스템을 바라보며 '우라까이 천국'이라는 말을 한다. 우라까이는 기자들이 쓰는 은어(일본어에도 없다)로 이미 나온 기사의 핵심 내용을 살짝 돌려 쓰는 걸 뜻한다. 어뷰징과 같은 언론계의 속어다. 중요한 내용을 받아 '인용 보도'를 하는 게 나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초 보도의 출처도 밝히지 않고 '한 매체'로 얼버무리면서 오로지 트래픽 사냥만을 위해 무분별하게 많은 양의 기사를 쏟아 내는 게 문제다. 최초 보도한 매체를 밝히지도 않고 자기 것인양 쓰는 것은 일종의 범죄 행위다. 남의 지적재산권을 허락 없이 훔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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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환(오른쪽)과 장예원 아나운서가 여러 차례 만나는 장면을 '더팩트'가 단독으로 취재했다. 박태환이 지난 10월 장예원 아나운서를 집 앞까지 바래다 준 뒤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가장 큰 문제는 양심을 버린 언론사에 있지만 포털 사이트의 책임도 피할 수 없다. 대부분의 베끼기 기사는 뉴스 소비가 주로 이뤄지는 대형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를 기초로 만들어지는데, 포털 검색에서는 최초 보도를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구조다. 현장에서 취재하는 노력보다 단 몇 분 만에 남의 기사를 베끼는 것이 더 트래픽에 유용하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어뷰징 기사가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숱한 단독 보도들이 엄청난 베끼기 기사의 무게를 버텨 내지 못하고 있다. 가장 먼저 쓴 좋은 기사가 출처도 밝히지 않고 '반은 훔쳐 쓴' 기사에 눌려 흔적 없이 사라지는 모양새다. '박태환-장예원' 기사 역시 '우라까이의 먹잇감'이 되었기에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그래도 '더팩트'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