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일 기자] 혹자는 그를 불운한 2인자로 부른다. 스스로 샌드위치 속 '햄'으로 묘사할 정도로 '빵'과 '빵' 사이에서 존재 가치를 보여야 하는 운명을 지녔다고 한다. '후배' 손연재(19)와 '선배' 신수지(23)로 대표되는 한국 리듬체조에서 김윤희(22·세종대)는 현역 선수 중 가장 오랜 기간 태극마크를 단 주인공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낯선 매트 위에 선 그가 어느덧 '리듬체조의 맏언니'라는 수식어를 듣고 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맏언니'라는 표현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그만한 실력과 그릇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고, 리듬체조의 깊이를 더 이해해야 한단다. 언제나 막내 시절의 자세로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김윤희는 손연재, 신수지만큼 주목받진 않았으나 자신만의 색깔로 리듬체조 정상급 실력을 유지해왔다. 16년 선수 생활 동안 특별한 스폰서나 소속사도 없었다. 성장기 때 기량 향상의 디딤돌이 되는 러시아 전지훈련 경험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누구보다 국내에서 구슬땀을 흘린 김윤희다. 가슴을 파고든 2인자라는 시선의 심연을 조용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복했다. 어느덧 한국 여자 리듬체조의 소금 같은 존재로 거듭났다.
리듬체조에 대한 김윤희의 진심이 통했을까. 최근 국가대표 선수 최초로 실업행의 새 길을 열었다. 내년 세종대를 졸업하고 일반부 선수가 되는 그는 지난 9일 인천시청과 1년 계약을 맺었다. 대학 졸업을 기점으로 일찌감치 선수 은퇴를 선언하는 기존 선수와 다른 인생 궤적이다. 인천시청 또한 내년 전국체전과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1991년생 노장' 김윤희의 가능성을 인정했다. 졸업 후에도 선수생활을 계속하고 싶다는 김윤희의 꿈이 실현된 순간이다. <더팩트> 취재진이 김윤희를 만난 건 17일 낮 2시 30분 세종고등학교. 내년 3월 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새 시즌 프로그램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뽀얀 입김이 뿜어져 나올 만큼 쌀쌀한 날씨였는데, 리듬체조 훈련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창밖의 흰 눈이 펼쳐진 가운데 아름다운 선율에 맞춘 우아한 그의 연기를 보고있노라면, 왜 그가 '제2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지 짐작하게 했다.
국내에서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는 2014년. 김윤희는 인생의 골든타임을 꿈꾸고 있다. 마지막이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 이게 곧 '선수' 김윤희가 내년을 맞이하는 궁극적인 목표다.

◆ "후배들 대학 졸업 후 선수 포기하지 않았으면"
- 그토록 꿈꾸던 소속팀을 찾았다. 인천시청에 입단한 소감은.
대학 졸업 후 실업팀을 선택하는 다른 종목 선수와 다르게 리듬체조는 정식 팀이 없다. 마침 인천시청엔 복싱의 신종훈 등 친한 운동선수들이 있다. 그 친구들에게 많은 얘기를 들었는데, 인천시청에서 날 좋게 봐주셨다. 아시아경기대회 유치하는 지역이어서 나 또한 가고 싶은 팀이다. 입단하게 돼 정말 기쁘다.
- 이력서를 들고 가족들도 발품을 팔았다고 들었는데.
아버지가 많이 고생하셨다. 소속사가 없다 보니 가족들이 고생했다. 난 운동에 집중했으니까. 애초 인천시청을 포함해 세 군데 프로필을 넣었는데, 잘 안 됐다. 무엇보다 (손)연재를 제외하면 나를 이어 팀을 이끌 유망주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것 같다. 장래성이 없다고 판단하셨다. 마음이 아팠는데, 인천시청이 큰 빛이다.
- 리듬체조 선수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선수 생명이 짧다. 그래서 실업행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내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모든 걸 걸었다. 안정적으로 운동하게 된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후배들도 대학 졸업한 뒤 운동을 그만둔다는 생각을 버리고 실업 문을 두드렸으면 한다.
- 4년 전 이경화 신수지 손연재와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리듬체조 팀 경기에 출전했다. 0.6점 차로 일본에 동메달을 내준 뒤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는데.
나 또한 그렇다. 그래서 내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더 큰마음을 품고 있다. 사실상 선수 생활을 마지막이다. 남은 1년 동안 운동만 할 생각이다. '올인'이다. 사실 요즘 많이 힘들게 운동하고 있는데, 마지막에 웃고 싶어서 참고 있다.(웃음)
- 김포 사우고등학교 시절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전국체육대회 금, 은, 동을 휩쓸었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대학부와 일반부 우승까지. 국내에서 할 건 다 했는데.
그렇다. 내가 아쉬워서 (선수 생활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 제2 전성기란 말이 있다) 지난해 무릎 수술 이후 재활을 거치면서 사실 그만둘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어려운 시간을 보낸 뒤 '한 번 쉬어가자'는 마음을 가졌다. 오히려 즐기면서 운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담을 덜고 훈련했다. 대회에서 더 좋은 성적이 나오더라.
- 리듬체조 관계자들은 올 시즌 연기를 보고 "키 170cm에서 우러나오는 파워풀한 연기력과 표현력이 더 원숙해졌다", "투혼이 더욱 돋보인다"는 평가를 하던데.
과찬이다.(웃임) 아무래도 몸 관리를 더 철저히 하고 있다. 운동을 16년간 하다 보니 틀에 박힌 게 많다. 스스로 변화를 준다. 어느 때보다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다.
- 대학생 신분으로선 마지막으로 지난 10월 인천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했다. 개인종합 은메달을 딴 뒤 눈물도 보이던데.
솔직히 은퇴하는 느낌이더라.(웃음) 내가 '맏언니' 소리를 듣고, 가장 오랜 기간 선수 생활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뒤처지지 말아야겠다는 고민이 많았다. 2등이었지만, 스스로 잘한 것 같아서 더 뭉클했다. 대학 선수라는 꼬리표가 떼어지는 것도 기분이 이상했다.
- 당시 "손연재를 보러온 팬들 앞에서 '저 선수도 참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연재 덕분에 체조장에 많은 분이 찾아와 행복하다. 과거엔 선수 가족 외엔 아무도 없었다. 선수 입장에선 신이 나더라. 그런데 막상 연기할 때 긴장이 됐다. 많은 관중 뿐 아니라 친구 등 지인들도 찾아왔는데, 떨리더라.(웃음)

◆ "신수지·손연재는 샌드위치 빵, 난 그 속 햄"
- 전국체전은 마무리를 잘했는데, 부상으로 세계선수권에 못 나간 게 아쉽다.
세계 대회 운이 참 없다.(웃음) 올해 정말 나가고 싶었다. 운동 열심히 했다. 직전 대표 선발전도 잘 뛰었는데…. (김윤희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월드컵에서 연습 중 가벼운 뇌진탕 증세로 국내에 들어왔다)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마사지를 받고 어떻게 해서든 경기를 뛰어야겠다는 생각에 매트 위로 올라갔다. 무슨 생각으로 했는지 모르겠다.(웃음) 완주한 것으로 만족했다. 결국, 세계 대회는 못 가고 한국에 와서 엄청나게 울었다.
-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 권유로 리듬체조를 시작했다고.
담임 선생님이 리듬체조 코치를 겸하셨다. 또, 어머니의 어렸을 적 꿈이 리듬체조 선수다. 내가 하기를 원하셨다.(웃음) 피겨스케이팅을 시키려고도 했었단다. 그런데 당시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김포에 살았는데 차도 없어 목동을 오가기가 어려웠다. (차가 있었다면?) 음, 그래도 김연아 선수처럼 잘하진 못했을 것 같다. 스케이트를 잘 못 탄다.(웃음)
- '김포의 자랑, 김포의 얼굴, 김포의 딸' 등 지역 언론에서도 많이 다뤘더라. 부모님 반응은.
사실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내게 관심이 많다. 4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그런데 날 더 좋아하는 것 같다.(웃음) 아버지의 SNS를 보면 거의 다 내 사진이다. (본인 SNS에선 잘 못본 것 같은데?) 음, 그렇다. 하하하. (동생은 누나를 자랑스러워하겠다) 동생 친구들이 더 좋아한다. 어렸을 때 내가 운동 끝나면 어머니가 데리러 오셨는데, 당시 남동생도 왔다. 동갑내기인 연재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웃음)

- 아마 독자들이 가장 궁금한 질문이다. 신수지와 손연재에 가린 2인자 이미지. 본인은 어땠나.
항상 말한다. 난 샌드위치 속 햄 같은 존재라고.(웃음) 수지 언니와 연재는 빵이다. 두 사람이 없었다면, 내가 성장하기 어려웠다. 난 1인자가 되기엔 부족하다. 수지 언니가 은퇴하고 내가 연재 뒤를 받쳐주는 것도 감사한 것 같다. 내가 선수 시절 수지 언니를 이겨본 것처럼, 연재도 날 넘어서고 승승장구한다. 동기부여가 되는 존재다.
- 개인 종목에서 선배와 후배 사이에서 고독한 경쟁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데.
솔직히 속상했던 적이 왜 없었겠는가. 국제 대회를 치르고 난 뒤 귀국장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땐 서운하더라. 나도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개인은 물론 팀 경기도 소화했는데…. 물론 주목받기 위해 선수 생활을 지속하는 건 아니다. 또한, 초등학교 때부터 매번 1등만 한 연재 같은 후배가 관심을 받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국내에 왔을 땐 아무래도 그런 감정이 든다.
- 더구나 2011년 신수지를 누르고 전국체전 우승을 했을 때도 빛이 바랬다. 신수지가 체조협회의 조작 논란을 언급했는데.
무엇보다 속상했던 건 평소 리듬체조에 관해 관심을 덜 가진 분들이 이유 없이 날 비난했을 때다. 전국체전 이전에도 수지 언니를 이긴 경험이 있었는데, 조명을 받은 적이 없었다. '김윤희가 뭔데 우승을 하느냐', "돈으로 심판을 매수했느냐', '든든한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정말 아팠다. 내가 그랬다면 왜 연재를 못 이겼겠나. 2인자로만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 신수지와 관계는 어떠한가.
많은 분이 수지 언니와 그 사건을 겪은 뒤 (관계가) 악화했을 것으로 본다. 물론 얘기를 바로 나누진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후배인 내가 먼저 가서 손을 내밀었는데, 언니가 잘 대해줬다. 현재 잘 지낸다.(웃음) 2주 전에도 만나서 밥을 먹었다. 서로 어려울 때 연락하고 있다.

◆ "인천 AG 리듬체조팀 금메달 충분히 가능하다"
- 후배인 손연재가 관심을 많이 받는 만큼 비난도 많다.
연재가 인터넷 기사를 잘 안 보는 편이다. 사실 난 그 위치에서 악성댓글도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다만 어처구니없는 내용으로 연재를 깎아내릴 필요가 있나 싶다. 연재가 잘하기 때문에 점수도 잘 받고, 메달도 따는 것이다. 기본과 실력이 안되면 아무리 돈을 퍼주어도 입상할 수 없다. 상식을 벗어난 얘기로 비난하지 않았으면 한다. (연재가) 많이 힘들어할 때가 있다.
- 평소 손연재와 어떤 대화를 많이 하나.
같은 팀이니까 거의 매일 연락한다. 물론 연재가 1인자지만, 언니인 내게 의지도 많이 하는 편이다. 아시아경기대회 등 굵직한 대회에서 팀 메달을 노리려면 의기투합해야 한다. 연재 또한 아직 어린 후배들보다 경험이 많은 내게 연락을 많이 하면서 훈련에 대해 의논한다. (네티즌들은 김윤희가 손연재보다 외모가 더 낫다고 말하기도 하더라) (손을 저으며) 아니다.(웃음) 그런 생각 해본 적이 없다. 연재는 내가 봐도 참 예쁘다. 남자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손연재보다 나은 점을 꼽자면) 음, 아무래도 나이가 더 있으니 여성스러움?(웃음)
- 그러고 보니 신수지는 올해 시구로 명성을 떨쳤다. 본인에게 제의가 온다면.
음, 내게 시구 제의 올 일이 없을 것 같다,(웃음) 물론 온다면 하겠지만, (수지) 언니가 너무 했다.(웃음) 리듬체조 선수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서 부담될 것 같다. (리듬체조 외에 좋아하는 종목이 있다면) 축구!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홍명보 감독이 이끈 남자 축구대표팀 선수들과 이주 친해졌다. 홍정호 선수가 티켓을 줘서 대표팀 경기를 보러 간 적도 있다.
- 개인 종합 프로그램에서 김연아 선수의 음악을 사용하는데.
내년에도 후프와 곤봉을 제외하고 올해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간다. 김연아 선수의 팬이어서 리본 음악을 록산느의 탱고로 정했는데, 내년에 완성도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후프 또한 김연아 선수가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당시 사용한 '오마주 투 코리아'의 배경 음악을 삽입했다. 피겨스케이팅의 느낌이 리듬체조로 변형하면 어떠할까 궁금했는데, 많은 분이 김윤희 스타일로 봐주시더라.

- 전국체전이든 아시아경기대회든 팀 말고 기왕이면 개인전 우승 욕심이 나지 않나.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해오면서 상위권 언니들도 많이 이겨봤다. 사실 대학교 3, 4학년이 되면 1, 2학년 후배들이나 고등학생들에게 따라잡힌다. 그러면서 운동을 게을리하는 선수들도 있는데, 난 그런 점에서 채찍질을 많이 하려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과거보다 더 충실히 운동하려고 한다. 쉬면 안 된다. 일단 2위 자리를 잘 지켜야 다음을 바라본다. 내가 아끼는 연재를 한 번 이기고 은퇴하고 싶다.(웃음) 지난 전국체전에서 아쉽게 2위를 했지만, 내년엔 더 잘해보려고 한다.
- 선의의 경쟁으로 팀 전력 또한 강해지고 있다.
그렇다. 우리가 4년 전 팀 경기에선 동메달을 놓쳤는데, 내년엔 충분히 금메달 후보가 되리라고 믿는다. 연재와 나는 물론이고 후배들이 잘 해주고 있다. 일단 3월 대표 선발전에서 잘해야 아시아경기대회에 나갈 수 있다. 어머니는 선수로서 마지막 해이니 적극적으로 투자하시겠다고 하더라.(웃음) 나갈 수 있는 대회에 모두 나서서 내 가치를 알리고 싶다. 지켜봐 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