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986년 추석 명절은 프로야구 롯데 최동원의 사상 첫 3년 연속 20승 도전과 허무한 역전패로 팬들의 기억 속에 깊게 남아 있다. / 스포츠서울 DB |
스포츠 팬들이 누리는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특정 경기 또는 대회에 대한 추억을 언제든 되새길 수 있다는 것이다. 40대 이상 야구 팬들에게 한국이 사실상 결승전인 일본과 경기에서 한대화의 3점 홈런에 힘입어 5-2로 이기고 우승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서울·인천)는 늘 기분 좋은 기억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축구 팬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가슴 벅찬 감동이고 영원한 추억거리다. 지난해 런던 올림픽은 펜싱의 놀라운 선전과 남자 축구 동메달 등으로 신세대 스포츠 팬들에게 오래도록 되새길 수 있는 장면을 선물했다.
맑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지고 있는 2013년 프로 야구 포스트시즌은 전통의 명가 삼성 라이온즈와 서울 라이벌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 그리고 ‘돌풍의 주인공’ 넥센 히어로즈가 참여해 초반부터 추억거리를 만들고 있다. 곧 펼쳐질 한국시리즈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야구 팬들의 머릿속에 남게 될까.
프로 야구 한국시리즈와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1984년의 일들이다. 그때를 추억하는 이들과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난다. 1984년 9월 30일, 어둠이 깔린 대구 시민구장에 한국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이규석 주심의 '플레이볼'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구단이 어떻게 해서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게 됐는지는 어지간한 야구 팬이라면 알고 있는 내용이기에 생략하고.
롯데 자이언츠 선발투수 최동원(작고)과 삼성 라이온즈 김시진-권영호의 물러설 수 없는 투수전이 이어졌다. 최동원은 이만수와 장효조(작고), 박승호, 정현발, 장태수, 오대석, 배대웅 등 누구 하나 가볍게 볼 수 없는 삼성 타선을 9이닝 7안타 6탈삼진 3사사구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한국시리즈 사상 첫 완봉승을 거뒀다. 유격수 정영기, 교체 2루수 이광길, 교체 좌익수 김재상 등 야수들의 눈부신 수비가 최동원의 역투를 거들었다.
김시진은 2회 초 박용성에게 2점 홈런, 4회 초 김용희에게 좌월 2루타를 맞았지만 3이닝 4안타 2탈삼진 3사사구의 그리 나쁜 투구 내용이 아니었다. 이어 던진 권영호는 6이닝 3안타 2탈삼진 무실점이었다. 롯데가 4점을 뽑았지만 사실상 투수전이었다. 이후 두 구단은 승패를 주고받으며 시리즈를 이어 갔다. 마지막 7차전. 1차전에 이어 3, 5, 6차전에 등판했던 '무쇠 팔' 최동원이 다시 마운드에 올랐고 재일동포로 한때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김일융이 삼성 팬들의 기대 속에 선발로 나섰다.
삼성은 연투에 지친 최동원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2회 말 1사 만루에서 배대웅의 내야 땅볼과 송일수의 적시타 등으로 3득점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3-1로 쫓긴 6회 말에는 오대석의 솔로 홈런으로 승리에 쐐기를 박는 듯했다.
그러나 7회 초 롯데의 대반격이 시작됐다. 유두열의 우전 안타에 이어 한문연의 3루타와 정영기의 우전 적시타가 나오며 3-4로 따라붙었다. 그리고 맞은 8회 초. 1사 후 김용희와 김용철의 연속 안타로 주자 1, 3루의 기회를 잡았다. 타석에는 6차전까지 17타수 1안타에 머문 유두열이 들어섰다. 잠실 구장 전광판에 찍힌 0.059라는 타율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김일융은 더그아웃을 쳐다봤다. 교체를 요청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러나 김영덕 감독은 김일융을 그대로 밀고 갔다.
경기 상황과 유두열의 타율로 볼 때 스퀴즈 번트가 예상됐지만 원 볼, 원 스타이크가 될 돼도 유두열은 번트를 하지 않았다. 김일융의 손에서 떠난 3구가 유두열의 몸쪽으로 파고들었고 이어 잠실 구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역전 3점 홈런. 이 한 방으로 피를 말리는 시리즈가 끝났다.
이때 잠실 구장 기자실이 북적거렸다. 정규 시즌 MVP와 한국시리즈 MVP를 뽑는 투표가 진행됐다. 유두열이 한국시리즈 MVP, 그해 27승을 올린 최동원이 정규 시즌 MVP로 선정됐다. 정규 시즌 타율(0.340), 타점(80), 홈런(23), 장타율(0.633) 1위인 삼성 주력 타자 이만수가 정규 시즌 MVP가 되지 못한 것이다. 투표 시점이 문제였다. 1984년 한국시리즈를 기억할 때마다 떠오르는 두 명의 야구 선수, 최동원과 이만수다.
더팩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