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일의 코리언 레전드]<19> '봉달이' 이봉주 "황영조와 라이벌? 내가 밀려" ⓛ편
  • 김용일 기자
  • 입력: 2012.03.17 10:41 / 수정: 2012.03.17 10:41

▲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41)가 코리언 레전드로돌아왔다. 사진은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남자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이봉주.
▲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41)가 코리언 레전드로
돌아왔다. 사진은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남
자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이봉주.

당신은 달리기로 인생의 변화와 도전, 그리고 성취를 느껴본 적 있는가.

우리는 흔히 이 사람을 '국민 마라토너', '지구를 네 바퀴 돈 사내', '봉달이' 등으로 부른다. 세계선수권 우승자의 완주 횟수가 평균 10회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20년 간 마흔 번의 풀코스를 뛴 이봉주(40)는 마라톤 본연의 가치인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다. 매일 다른 날씨와 다른 장소, 다른 몸 상태로 뛰는 것에 '새로움'을 느꼈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200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작성한 2시간7분20초의 한국 신기록이 십여 년 넘게 깨지지 않는 것을 보면 세대교체의 실패를 탄식할 수 있어도 이봉주의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마라톤 인생이 그리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난 2009년 3월 선수 은퇴를 선언한 그는 마라톤 후진 양성 뿐 아니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깜짝 춤 실력을 보여줬고 드라마의 카메오 출연, 타 종목 국가대표 출신들과 예능 출연 등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오직 달리기 위해 삶을 살았고, 달리는 사람에게 존경을 보였던 이봉주는 현재 어떠한 삶을 그리고 있을까.

지난 7일 양재역에 위치한 한 사무실에서 '코리언 레전드' 열아홉 번째 주인공으로 선정된 이봉주를 만났다. 최근 근황은 물론이고 희로애락이 점철된 마라톤 인생의 뒷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 이봉주 손기정기념재단 이사 / 문병희 기자.
▲ 이봉주 손기정기념재단 이사 / 문병희 기자.

- 만나서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죠?

예 반갑습니다.(웃음) 코리언 레전드에 뽑아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아직까지 저를 잊지 않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샌 방송뿐 아니라 아마추어 마라톤 동호인들과 함께 이곳저곳에서 뛰고 있어요.(웃음) 후진 양성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고 있고요.

- <더팩트> 독자들에게 질문을 받아보니 '봉달이 아저씨가 예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고 좋아하시던데요.

하하.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달리는 모습만 보여드리다가 재미있는 모습으로 즐거움을 드렸다면 좋은 거죠. 다른 분야에 대해서 알아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맛도 있고요. '내가 했던 일만 힘든 게 아니 구나'라고 느껴요. 생각의 폭과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 최근에 안산 신한은행 여자 농구 선수들과 맞대결을 벌이는 게 화제가 됐었는데요. 오히려 골을 못 넣는 게 더 재밌더라고요.

열심히 뛰어다니기만 했죠.(웃음) 여자 선수들과 스포츠 종목에서 대결을 벌인 것은 처음이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여자 선수들이 강해서 놀랐어요.

- 괜히 프로 선수들이 아니겠죠. 앞서 아마추어 동호인들과 레이스도 하신다고 했는데 느낌이 어떠세요?

부담 없이 뛸 수 있으니까 좋죠. (오히려 현역 때보다 기록이 더 잘 나올 것 같은 기분은) 마음은 그래요. 몸이 안 따라줘서 그렇지. (배가 안 나올 줄 알았는데) 하하. 그러게요. 그만큼 선수 시절 때 운동량이 참 많았다는 것을 새삼 느끼죠. 살이 찔 틈이 없었거든요. 은퇴 후 먹는 것은 같지만 운동량이 적으니까 배가 나오네요.(웃음)


- 독자 질문 중 황영조 감독과 라이벌에 관한 질문이 많더군요. 코리언 레전드 7편 주인공이었던 황 감독께선 '전성기가 다르다'며 비교할 필요 없다고 하시던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황 감독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가 절정이었고요. 저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부터 본격적인 도전이 시작된 거죠. (대신 황 감독께선 연습 때 한 번도 안 졌다고) 하하. 맞아요. 객관적으로 봐도 제 기량이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황 감독은 타고난 심장과 본인의 노력이 잘 이뤄졌죠.

- 지난해 황 감독이 깜짝 결혼을 발표했었는데 감회가 어땠어요?

아, 이제 가는구나.(웃음) 정말 모르고 있었어요. 잘 됐죠. 나이가 꽤 찼었잖아요. 가까이서 보기에 외롭고 안쓰러울 때가 있었는데, 좋은 분을 만나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룬 것을 보니 흐뭇하더라고요. (현재 아내를 황 감독께서 소개해주셨다고) 예. 둘이 동창이었어요. 모임에서 만나게 돼 부부로 인연이 됐죠. 고마워요.(웃음)

▲ 지난 2002년 김미순(왼쪽)씨와 결혼한 이봉주. 사진은 결혼식이 열린 잠실종합경기장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는 이봉주.
▲ 지난 2002년 김미순(왼쪽)씨와 결혼한 이봉주. 사진은 결혼식
이 열린 잠실종합경기장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는 이봉주.


▲ 인터뷰 내내 가감 없는 답변으로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 이봉주(왼쪽).
▲ 인터뷰 내내 가감 없는 답변으로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 이봉주(왼쪽).

- 제가 학창시절을 충남 보령에서 보냈어요. 1998~1999년쯤으로 기억되는데 보령에서 훈련을 하셨었죠? 대천동 언덕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많이 봤었거든요. 심지어 훈련을 마치고 근처 오락실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모습도요.(웃음)

아 보령에서 사셨어요? 맞아요.(웃음) 아침 일찍 언덕을 뛰어다녔죠. 코오롱하고 결별하고 보령에 있는 여관방에서 힘들게 지냈을 시절이라 더 기억에 남아요. 그런데 오락은 잘 기억이….(웃음) (이후 도쿄 마라톤에서 한국 신기록 세우셨죠) 예, 그래서 더 기억에 남죠. 여관방에서 고생한 오인환 당시 코치님과 엄청 울었었는데.

- 그 시절 이야기는 후반부에 자세히 하고요. 2남 2녀 중 막내셨는데 원래 축구를 하고 싶었다고요?

예, 그런데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단체 종목을 할 만한 여유가 없었어요. 어머니가 시골에서 힘들게 농사를 짓고 계셨는데 옆에서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쉽게 하고 싶다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아들 밥 한 끼 제대로 못해주는 것에 미안해하셨거든요.

- 가난해서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실 건데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기본적으로 운동에 소질이 있었고, 달리기를 좋아했죠. 초등학교 때 우연히 TV에서 손기정 선생님의 다큐멘터리가 방송됐어요. 왠지 마라톤을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웃음) 실제 학교에서 단거리는 잘 못했는데 장거리는 항상 1등을 했죠.

- 형은 레슬링 선수였다고 들었어요. 그 영향으로 다양한 종목에 도전해봤다고요? 중학교 때 태권도, 복싱까지 경험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이것저것 발만 많이 들인 거죠.(웃음) 복싱은 뭐 스텝만 밟다가 그만 뒀고요. 무엇보다 치아가 좀 약했어요. 태권도는 그냥 남들 하는 수준으로 했던 거고요. 아, 그 영향으로 제가 선수 시절에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할 땐 꼭 그 전날 이가 모두 빠지는 꿈을 꿨어요.(웃음) 그럼 꼭 우승을 하더라고요. 신기하죠?

▲ 어린 시절 운동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이봉주는 구기 종목에 관심이 많았지만어려운 가정 형편이 발목을 잡았다. 복싱, 태권도 등 다양한 종목을 경험한 뒤 고등학교때부터 육상과 인연을 맺게 된다.
▲ 어린 시절 운동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이봉주는 구기 종목에 관심이 많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이 발목을 잡았다. 복싱, 태권도 등 다양한 종목을 경험한 뒤 고등학교
때부터 육상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이봉주는 학창시절 미래에 목장을 운영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래서 천안농업고등학교 진학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운동선수를 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친구의 권유로 학교 내 육상부에 가입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독립기념관을 찍고 산 하나를 넘어 다시 학교에 돌아오는 첫 훈련에서도 이봉주는 선배들에 뒤지지 않았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선배들은 대학 진학을 위한 합숙 훈련에 이봉주를 합류시켰고, 삽교 고등학교의 한 선배로부터 "네 실력이면 우리 학교에선 등록금 면제에 장학생으로 다닐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 1학년을 다시 다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삽교고에 재입학하셨어요. 천안시내 학교대항전 1500m에서 생애 첫 1등도 했고요.

예, 1년을 다시 다녀야 했지만 제대로 육상을 해보자고 다짐했죠. 그런데 학교 사정이 어려워져 육상부가 해체 됐어요. 그때 운동을 포기하고 그냥 일반 학생으로 돌아간 친구도 있었고, 전학을 간 친구도 있었어요. 전 계속 기다리면서 운동을 했는데 자연스레 광천 고등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죠.


- 이후 안정을 찾으면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체전 10km에서 3위를 하셨어요?

그때 황 감독이 1위를 했어요.(웃음) 제가 3위를 못했었다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지도 몰라요. 그때가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죠. (졸업할 때 관동대, 코오롱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고요) 예, 그런데 대학보다 실업팀에 가려고 했어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수입도 고려해야했죠. 다행히 돈도 벌고 야간대학(서울시립대)도 다닐 수 있는 서울시청을 택했죠.

- 서울시청에 입단한 1990년 그해 전국체전에서 처음으로 마라톤을 완주하셨는데 2시간19분15초로 2위를 하셨어요.

(첫 마라톤 도전이라) 잊을 수 없죠. 정말 자신감 하나로 도전을 했어요. 연습량이 많았기 때문에 선두권을 따라 뛸 수는 있겠더라고요. 단 앞서 가거나 페이스를 조절하는 능력은 부족했죠. 잘 뛰는 선배만 보고 뛰었어요.(웃음) 본격적인 마라톤 인생의 출발점이었죠. <①편 끝>…다음 주 ②편(3월 23일)에서는 이봉주의 선수 시절 뒷이야기, 미래의 목표 등이 이어집니다.

▲ 학창 시절 뒷 이야기를 하던 중 웃음을 보인 이봉주.
▲ 학창 시절 뒷 이야기를 하던 중 웃음을 보인 이봉주.

<글 = 김용일 기자, 사진 = 문병희 기자>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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