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호의 월드컵 파일] K-축구, 혁신보다 중요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 최순호 전 국가대표
  • 입력: 2026.07.05 00:00 / 수정: 2026.07.05 00:00
한국축구를 살릴 세 단어 ‘원칙·시스템·사람’
공자의 도덕성과 정약용의 실용정신이 필요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3일 최휘영 문체부 장관과 박지성 국제축구연맹(FIFA) 분과위 위원을 공동위원장으로 내세운 한시적 기구 ‘케이(K)-축구 혁신위원회 출범을 전격 발표했다. 사진은 최휘영 장관(왼쪽)과 박지성 위원장./최휘영 SNS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3일 최휘영 문체부 장관과 박지성 국제축구연맹(FIFA) 분과위 위원을 공동위원장으로 내세운 한시적 기구 ‘케이(K)-축구 혁신위원회 출범을 전격 발표했다. 사진은 최휘영 장관(왼쪽)과 박지성 위원장./최휘영 SNS

[더팩트 | 최순호 전 국가대표] 대한민국 축구계가 또다시 거대한 변곡점 위에 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3일 최휘영 문체부 장관과 박지성 국제축구연맹(FIFA) 분과위 위원을 공동위원장으로 내세운 한시적 기구 ‘케이(K)-축구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 출범을 전격 발표했다. 이영표·박주호 해설위원 등 이름만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신뢰받는 축구인들과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해 K-축구 거버넌스 개편과 유소년 육성, 첨단 기술 도입 등을 논의한다고 한다. 축구계의 대대적인 변화를 모색하겠다는 정부와 후배들의 열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평생을 그라운드에서 보낸 필자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위기 때마다 반복되는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혁신’이라는 구호가 과연 대한민국 축구의 본질적인 병폐를 고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정체불명의 화려한 ‘혁신(Innovation)’은 사실 우리가 마땅히 지켰어야 할 ‘원칙(Principle)’의 붕괴를 자인하는 부끄러운 고백서에 가깝기 때문이다. ‘혁신’이란 단어는 평소에 변화와 개선을 꾸준히 실천하지 못하고, 작은 문제를 제때 바로잡지 못해 조직이 곪아 터졌을 때 비로소 등장하는 고육지책이다. 조직이 건강하다면 매일 조금씩 흐르는 물처럼 시대의 흐름에 맞춰 스스로를 정화하고 발전시켰어야 했다. 진정한 발전은 일상의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원칙의 준수에서 비롯된다. 결국 박지성 위원장이 이끄는 이번 혁신위 역시 목적지가 아니다. 무너진 원칙과 기본을 회복하기 위한 준엄한 과정일 뿐이며, 한국 축구는 거창한 비전 제시보다 기본을 바로 세우는 일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축구는 발로하는 스포츠이지만, 결국 판을 짜고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이번에 출범한 혁신위가 마주한 과제들 역시 제도나 첨단 기술의 도입 이전에 ‘사람’의 문제이며, 그 사람을 세우는 ‘기준’의 실종에 본질이 있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을 뽑는 기준이 흔들리면 어떤 조직도 모래성에 불과하다.

필자는 축구 인생 내내 ‘3무(三無)의 원칙’과 ‘3무의 인재 활용’을 강조해 왔다. 인재를 등용할 때 학연, 지연, 그리고 사적인 이해관계라는 세 가지 고질적인 사슬을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는 신념이다.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군자 주이불비 소인 비이불주(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而不주·군자는 공평무사하여 파당을 짓지 않고, 소인은 파당을 지어 공평무사하지 못하다)’라고 했다.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하려면 지도자와 선수를 선발하고 행정가를 앉힐 때, 사사로운 감정이나 인맥이 아닌 서슬 퍼런 원칙을, 특정 개인의 입김이 아닌 정교한 시스템을 작동시켜야 한다.

이제 새로 출범한 혁신위는 외형적으로는 공자의 가르침처럼 서로를 존중하는 ‘예(禮)’와 ‘신뢰’의 문화를 회복하고, 내적으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조했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박지성 공동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은 성난 여론의 눈치를 보거나 얄팍한 감정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차가운 이성으로 공과(功過)를 냉정하게 구분하고, 과거의 인습 중 버릴 것과 지킬 것을 가려내야 한다. 전통적인 관습의 좋은 유산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로 계승하되, 시대에 뒤처진 구태는 과감히 도려내는 합리적인 개혁이 절실하다.

아무리 훌륭한 미래 전략과 첨단 기술 시스템을 내놓아도,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는 조직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원칙이 기준이 되고, 시스템이 조직을 움직이며, 정직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미래를 만드는 구조를 짜야 한다. 그것만이 상처받은 축구 팬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한국 축구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세우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길이다. 새로 출범한 혁신위가 거창한 구호를 넘어 무너진 기본을 바로 세우는 단단한 주춧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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