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최순호 전 국가대표] 생애 처음으로 후보 선수가 되어 90분간 벤치를 지켜야 했던 그날의 경기(불가리아전)는 끝났지만, 가슴속을 휘감은 소용돌이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늘 그라운드의 중심에서 승리를 지휘하던 내게 경기장의 가장자리는 가혹할 정도로 차갑고 낯설었다.
이튿날 주전 선수들이 가벼운 회복훈련으로 땀을 식힐 때, 나는 출전하지 못한 동료들과 함께 따로 훈련장에 서야 했다. 그 순간의 어색함과 소외감은 발목을 잡는 부상보다 더 깊숙이 뼈를 파고들었다. 오랫동안 품어온 월드컵이라는 무대의 무게, 그리고 대표팀에서 도맡아왔던 내 역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서운함과 아쉬움, 그리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속상함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마음보다 몸이 더 아프게 느껴졌던 쓰라린 시간이었다.
강호 이탈리아전을 앞두고 마음의 상처는 곪아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한때는 서운한 감정에 치우쳐 ‘출전 거부’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품을 만큼 정신적인 고통이 컸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과 집착이 시야를 가렸던 탓이다. 하지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대표팀 내부의 갈등이 한국 축구의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선배들의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특히 대표팀 생활 동안 오랜 시간 한 방을 쓰며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조영증 형님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는 흔들리던 나를 붙잡아준 이정표였다. "순호야, 네가 어떤 마음인지 안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이 아닌 팀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다"라던 형님의 나지막한 목한 목소리는 내 오만을 깨우는 죽비와 같았다.
옛 성현들은 이를 일컬어 공선사후(公先私後)라 했다.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익보다 공적인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그 평범한 진리를, 나는 벤치라는 낯선 공간에 격리되고서야 비로소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결국 나는 팀의 승리와 화합을 위해 내 안의 가시 돋친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신독(愼獨)의 자세로 마음을 비우고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자, 기적처럼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고 무겁던 몸도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듯했다. 주전 경쟁과 경기 결과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을 던져버리니, 매일 반복되던 생활과 고단한 훈련은 다시금 순수한 즐거움으로 돌아왔다. 팀의 일원으로서 내게 주어진 작은 역할이라도 충실히 수행하려 노력했고, 승패의 중압감에 가려 보이지 않던 동료들의 땀방울과 대표팀 유니폼의 소중함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나간 출전 시간에 대한 아쉬움에 연연하기보다, 앞으로 다가올 단 1분의 기회를 완벽하게 준비하며 하루하루를 채워나갔다. 그러자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부담감은 눈 녹듯 사라졌고, 어린 시절 축구공을 처음 발에 얹었을 때 느꼈던 그 순수한 희열이 다시금 나를 웃게 만들었다.
네덜란드의 거장 요한 크루이프는 생전에 사후(死後)를 도모하며 "축구는 단순하다. 그러나 단순하게 축구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플레이의 단순함만을 말한 것이 아닐 게다. 마음속의 과도한 욕심과 집착을 걷어내고 축구 그 자체를 마주하는 정신적 단순함이야말로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라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벤치에서의 시간은 나를 무너뜨린 시련이 아니라, 축구를 향한 내 시야를 넓혀준 축복의 시간이었다. 주전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편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동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팀을 위해 나를 지우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야 한다. 마음을 비워내고 서야 비로소 다시 찾아온 축구의 즐거움, 그것이 내가 월드컵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배운 가장 값진 인생의 전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