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최순호 전 국가대표] 잘했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도 다 아름다운 법이지만 12일 한국의 체코전 만큼은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진 경기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느꼈다. 선수들의 컨디션도 좋아 보였고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법도 좋았다. 여기저기를 살펴봐도 아쉬운 게 별로 없을 정도다. 물론 후반 먼저 실점한 장면을 놓고 아쉽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못 했다기보다 상대가 더 잘한 결과다.
요즘은 유소년 축구에 관심을 갖고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해 말 프로축구 수원FC 단장직을 내려놓은 뒤부터 시간이 생기자 그동안 늘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유소년 축구의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다. 한국 축구의 체계적 발전을 위해선 유소년 축구 활성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을 계속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체코의 A조 1차전은 경기도 동탄에서 유소년 축구 지도자들과 함께 TV로 시청했다. 그냥 이기기도 힘든데, 선제골을 내주고 뒤집은 역전승은 더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선제 실점에서 오는 허탈감과 급해지는 마음, 역전을 해야한다는 압박감을 모두 이겨내지 못한다면 이룩해낼 수 없는 성과다.
전 세계 모든 축구인들이 뛰고 싶은 꿈의 무대에서, 선제골을 내주는 중압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국 축구의 1차전 역전승은 딱 한 번 있었다. 2006 독일 월드컵 토고전에서 전반 선실점하고 후반 이천수 안정환의 연속골로 2-1 역전승을 거둔 게 처음이다. 이번이 두 번째다.
돌이켜보면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을 시작으로 한국은 지난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 11차례 본선 1차전을 치러 모두 3승 3무 5패를 기록했다. 이번 체코전까지 더하면 1차전에서 모두 4승을 기록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선 폴란드를 2-0으로 제압하며 4강까지 오르는 출발을 했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선 토고를 2-1로 잡았지만 1승 1무 1패로 조별리그 탈락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선 그리스를 2-0으로 제압하며 원정 월드컵 첫 16강 진출의 역사를 썼다. 2006 독일 월드컵만 제외한 나머지 두 대회에선 역사적 성적을 남겼다.
개인적으로는 첫 월드컵 본선에 나서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했던 멕시코 땅에서 대역전글을 펼쳐 더 감회가 새롭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월드컵 무대를 밟아 아르헨티나와 A조 1차전에서 첫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디에고 마라도나가 활약한 아르헨티나에 0-3으로 끌려가던 후반 28분 박창선의 만회골을 도왔다. 박창선은 한국의 월드컵 1호골을 기록했고 나는 1호 어시스트를 역사에 새겼다.
이후 이탈리아와 A조 3차전에서는 1-1 동점골을 넣었다. 월드컵 본선에서의 첫 골이었는데 그 감격을 어찌 말로 표현할 것인가. 황인범과 오현규의 골을 보며 그때의 환희와 감격을 다시 한번 느끼며 울컥하는 마음을 추스렸다. 이탈리아전은 1-1, 2-2로 따라붙으며 거의 역전 직전까지 갔으나 결국 2-3으로 패하며 눈물을 삼켰다. 아마도 첫골을 넣고도 패한 당시의 울분을 후배들이 풀어준 것 같아 더 감회가 새로운 것 같다.
그래서 더 이번 체코전 승리는 반갑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월드컵 이후 사임을 공표하는 비상 체제의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첫승을 일궈낸 후배들이 자랑스럽다. 한국축구가 다시 일어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다만 멕시코와 2차전에서 현재의 컨디션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가 2연승의 관건으로 보인다.
선수들의 컨디션은 현실적으로 2주 이상 유지하기가 힘들다. 우리 선수들을 보면 체코와 1차전에 컨디션 사이클을 맞춘 것으로 보이는데 1주 후 열릴 멕시코와 2차전까지 팀 밸런스를 유지하고 선수 개개인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게 승부의 관건으로 보인다. 혹자는 멕시코와 남아공의 개막전을 보고 별 거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팀마다 월드컵 본선을 대비하면서 컨디션 사이클을 다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 우승 후보들이 조별리그에서 고전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역전승이 팀에 미치는 영향은 100%+50% 플러스 상승 효과가 있다. 그만큼 선수들에게 미치는 자신감 상승과 사기 고양 효과가 크다. 한국 축구에 희망을 안긴 체코전처럼 멕시코와 2차전에서도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경기를 해주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