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우 전 의원 '정치비화'-19] 외로운 무소속과 수많은 동상이몽가들
입력: 2011.12.08 11:57 / 수정: 2011.12.08 11:57


92년 대선이 끝나고 1년 6개월 동안 나는 가장 외롭고 고달픈 의정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민자당내 경선과정에서부터 후보사퇴, 탈당, 창당, 새 후보추대, 다시 사퇴... 의 과정을 겪으며 나는 거의 탈진상태에 접어들었고 게다가 새한국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교섭단체 구성도 안 되다 보니 국회가 개원되어도 본회의에서 발언기회를 전혀 가질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지지 세력도 약해지면서 의정활동에 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종찬의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선이 끝난 직후 이종찬씨는 그 격하고 참담했던 민자당 경선에서부터 경선포기, 탈당, 대선후보 중도포기, 국민당과의 합당선언 그리고 원점으로 되돌아오기까지의 우여곡절 속에서 역시 탈진 상태였다. 몸도 마음도 다 지쳐있던 이종찬씨 부부는 마침내 외유길에 올랐다. 그런데 또 인연이 참 묘한 것이다. 그때 이종찬씨 부부는 큰아들이 유학을 가있던 영국으로 떠났는데 그때는 또 김대중씨가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에 머물고 있었다.

이때부터 두분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시작했으니 그렇다면 요즘의 상황은 그때부터 미리 예견된 것이었을까? 그러나 사실 이종찬씨가 민주당에 입당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았다. 어떻든 당시까지만 해도 나나 이종찬씨는 제1야당인 민주당을 제외한 의원들 그러니까 김동길씨가 이끌고 있던 국민당이나 무소속의원들과 함께 야권통합운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와 이종찬씨는 김동길, 박찬종, 한영수, 양순직, 임춘원, 박규식의원 등을 만나기 시작했다.

길게는 야권통합이 목표요 짧게는 의정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우리끼리 교섭단체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야권통합을 위해 민주당과 합친다 해도 우선은 우리끼리 일정한 힘을 모으고 그다음에 민주당과 야권통합에 들어가자는 것이 우리들의 장기적인 목표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나는 그것 역시 당시에는 몰랐던 일이지만 그런 저런 만남속에서 김동길, 박찬종, 양순직씨 등은 모종의 '합의각서'를 썼다는 것이다. 나중에 당이 결성되면 대선 후보는 누가하고 또 당은 어떻게 만들고 누가 끌고 나갈 것인지를 합의 했다는 것인데 이런 것들이 나중에 언론에 공개되고 난 후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시대 정치를 극복해보자고 가시밭길이 뻔한 탈당을 선택해서 이제 야권통합을 해보자고 그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정작 안에서는 그 몇 안되는 의원들간에 각서가 오고 갔다니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그런 각서를 썼음에도 야권통합 노력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이런 것을 보고 아마 '김칫국' 먼저 운운하는 모양이 되었다.사실 정치인이라면 다 야망이 있다. 없다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정치적 욕망은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머리만 하겠다고 나서니 될 일이 없을 수 밖에...아무튼 이 '동상이몽'은 평소에는 잠잠해 있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 모습을 들어내니 성공할리가 없었다.

이해상관에 따라 이합집산이 쉽게 이루어지고 정치에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말이 실감나고 있었다.그 와중에 자꾸만 민주당측으로부터 입당교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5공조사특별위원회 당시 간사와 위원장으로 만났던 이기택의원이 당시 민주당의 총재였고 또 대학의 동기동창이던 유준상의원이 최고위원 이었는데 두사람으로부터 계속 입당 제의가 들어 온 것이다.

“거 밖에서 야권통합하려고 해도 잘 안됩니다. 그래도 민주당이 제1야당 아닙니까? 장의원 같은 사람이 먼저 들어와야 힘을 받게 마련이고 그러면 딴 분들도 계속 들어오게 될 겁니다. 일단 들어와서 야권통합 해 봅시다.”

이런 제의가 잦아지면서 나 역시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종찬씨와 무엇인가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아무래도 밖에서는 잘 안될 것 같습니다. 우리만이라도 먼저 들어 갑시다.”
내말에 이종찬씨는 수긍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종찬씨 입장에서는 뭔가 미진했다. 그래도 한때는 대선후보까지 오른 사람이 입당을 하려면 무엇인가 명분이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이었다. 나와 단둘이서만 들어갈 경우 모양새도 초라할 뿐 아니라 당내의 지분확보도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결국 그러려면 무소속과 군소정당을 한테 묶어서 당대 당 통합형태로 될 수 밖에 없었다.

“당신 먼저 들어가지! 나는 좀 더 남아서 힘을 모아보고 들어가도록 하는게 나을 것 같군” “그럽시다. 일단 제가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마련해 놓을 테니 나중에 들어오시죠.”
그렇게 약속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때 행복했던' 약속이었다. 그리고 정치에 입문한 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김영삼씨의 말대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되어 버린 이종찬씨와 처음으로 헤어져 마침내 나는 민주당에 입당하게 되었다. <다음호 계속>


<프로필>
·1942년 4월 12일생
·경기중·고/고려대 경영 졸
·대한축구협회부회장
·대한수영연맹 명예회장
·제 11·13·14대 국회의원
·한국캠핑캐라바닝연맹 총재(현)
·세계캠핑캐라바닝연맹 아·태 지역위원회 의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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