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in 정치] '써니', 80년대를 추억하는 두 개의 시선
  • 박형남 기자
  • 입력: 2011.06.09 11:40 / 수정: 2011.06.09 11:40


거리에는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고 전경과 데모대가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그 한복판에 여고 7공주 패거리 ‘써니’와 ‘소녀시대’가 등장해 이단옆차기를 날린다. 게다가 배경음악은 무려 조이의 ‘터치 바이 터치’다. 영화 ‘써니’(감독 강형철)는 언젠가부터 스테레오타입으로 굳어진 80년대의 비장한 풍경을 매끄러운 웃음과 감동으로 비튼다.

‘아줌마’, 소녀를 끌어안다

영화 ‘써니’에는 80년대를 추억하는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첫째는 한때 자신만의 꿈을 간직한 소녀였지만 지금은 익명의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이른바 ‘아줌마’의 시선이다. 둘째는 나이로는 40대이고 8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60년대에 출생한 ‘486세대’가 아니라, 30대이고 9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70년대에 출생한 ‘X세대’의 시선이다.

사실 ‘써니’가 개봉 33일 만에 관객 400만 명을 동원하며 롱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데는 ‘아줌마’의 시선이 큰 몫을 했다. 이 영화는 극중 나미를 연기한 유호정과 심은경처럼 엄마와 딸이 함께 관람하기에 딱 좋은 작품이다. 엄마는 5분마다 웃음을 터뜨리며 80년대 꿈 많던 시절의 문화코드를 맘껏 추억하고, 딸은 그런 엄마를 재발견하게 된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보니엠의 ‘써니’는 물론이요, 조이의 ‘터치 바이 터치’, 리처드 샌더슨의 ‘리얼리티’, 신디 로퍼의 ‘걸 저스트 원투 해브 펀’ 등은 80년대 소녀들이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던 추억의 팝송들이 아닌가. 또 꽃미남 오빠가 나미에게 헤드폰을 씌워주는 장면은 소피 마르소가 주연한 영화 ‘라붐’이 오버랩 되며 그 시절의 로망을 되살린다.

‘아줌마’의 시선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대목은 극중 벤치 씬이다. 실연의 상처에 아파하는 소녀 나미를 현재의 나미가 다가가 꼭 안아준다. ‘아줌마’가 소녀시절의 꿈과 아픔을 따뜻하게 끌어안음으로써 익명성의 굴레를 벗고 ‘나 자신’을 회복한다는 메시지다. 과거와 현재가 개인사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는 걸 깨닫는 순간 다시 ‘인생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다.

80년대는 암울하기만 했을까?

‘써니’는 ‘X세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80년대 풍경이라는 점에서도 꽤 흥미롭다. 이 영화를 연출한 강형철 감독은 1974년생으로 2008년 ‘과속스캔들’로 데뷔했다. 1974년생이 대학에 입학한 1993년은 ‘X세대’가 출현한 해이기도 하다. ‘X세대’는 선배들이 보기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앙팡테리블’이었지만 뚜렷한 개성과 자의식으로 새로운 문화를 일궜다.

그들에게 80년대는 486세대처럼 정치적 암울함으로 점철된 시간이 아니다. 선배들처럼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에 갇혀있을 이유도 없다. 시위 한복판에서 7공주들이 패싸움을 벌이고 배경음악으로 ‘터치 바이 터치’가 깔리는 것도 그래서 가능하다. 80년대가 친구들과 하하호호 유쾌한 한 때일 수도 있다는 영화적 사고는 어떤 의미에선 발상의 전환이다.

재미있는 점은 현재 30대이고 9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70년대에 출생한 세대와 선배인 486세대의 관계다. 486세대는 90년대 후반부터 정계, 학계, 기업 등 사회전반에 걸쳐 자리를 잡으며 지금까지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80년대 학생운동의 명분을 쥐고 있는데다 경기활황으로 취직에 있어서도 혜택을 입었다.

반면 그 다음 세대는 대학졸업과 함께 IMF의 한파를 겪었다. 또 사회 각 부문에 조금 일찍 자리 잡은 선배들 덕분에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입장이다. 현재 30대가 정부에 대한 반감이 큰 이유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단지 정부가 싫어서라기보다는 폭발 직전인 이 세대의 불만 에너지가 타깃을 찾는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권경률ㅣ대중문화 칼럼니스트]

[더팩트 정치팀 ptoda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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