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in 정치] 근초고왕이 불세출의 영웅인 까닭
  • 박형남 기자
  • 입력: 2011.05.26 12:03 / 수정: 2011.05.26 12:03


최근 들어 사극 보는 재미가 다양해졌다. ‘대장금’, ‘추노’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주목을 받으며 궁녀, 왈패, 상인 등이 주인공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의 격변기를 다루는 선 굵은 정통사극이 시들해진 것은 아니다. 역사영웅은 시대를 뛰어넘어 영감을 준다. 종영을 앞둔 KBS 드라마 ‘근초고왕’이 그렇다.

권력자의 비애

근초고왕(감우성)은 요서백제를 이룩하고, 마한을 경략하고, 남평양성에 고구려왕을 묻은 불세출의 영웅군주다. 그동안 사극에서 다루지 않았던 이 백제영웅의 일대기를 드라마는 초고왕통과 고이왕통의 대립을 축으로 특색 있게 재창조했다. 특히 부여화(김지수)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은 근초고왕의 인간적인 고뇌를 부각시켰다.

“허나 아버님의 한평생은 어떻습니까? 할아버님을 잃고, 할머님의 자진을 봐야했고, 위례궁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형제들의 피로 얼룩진 수많은 아픔을 가슴에 묻으셨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여화 너는 내 아내다.’ 아버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그 목소리가 제게는 들리는데 궁주마마껜 들리지 않습니까?”

죽은 줄로만 알았던 구수왕자(건일)가 생모인 여화에게 반란을 멈춰달라고 간청하는 대목은 권력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권력을 인간의 힘으로 통제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권력은 항상 더 큰 권력을 향해 치닫기에 나중에는 권력자의 진심마저 왜곡하고 짓밟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이는 산꼭대기에서 바윗돌을 굴리면 산 아래 닿을 때는 처음 굴린 방향과 전혀 다른 쪽에 가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최고의 권력을 가지면 무소불위일 것 같지만 실상 권력자는 권력의 노예가 되기 십상이다. 자유를 잃게 된다는 말이다. 근초고왕의 비애가 여기 있다. 평생 사랑했던 여인을 보듬기는커녕 칼을 겨눠야 한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더더욱 근초고왕은 통합과 포용의 정치력을 발휘한다. 요서 지역의 옛 부여세력을 끌어안았고, 위례궁의 고이왕통을 인정했으며, 마한 백성들을 백제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바로 이 통합과 포용의 정치가 ‘예맥한 일통’의 비전으로 이어지며 요서, 마한, 가야, 고구려 경략의 밑거름이 됐다.

프로이센의 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속 근초고왕이 치른 정복전쟁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백성으로부터 사랑을 이끌어낼 줄 알고, 적의 마음까지도 움직일 수 있는 지도자는 비록 작은 전투에서는 패할지언정 큰 전쟁은 그르치는 법이 없다.

내부의 적을 다루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드라마에서는 왕권을 확립하려는 근초고왕에 맞서 기득권을 가진 귀족세력이 반란을 일으킨다. 근초고왕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반란군을 궤멸시킬 수 있지만 그리 하지 않는다. 대신 반란의 수괴 부여화를 만나 설득하는 길을 택한다. 전후까지 내다보며 갈등의 악순환을 막은 것.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감춰진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은 없고, 사소한 것보다 더 두드러진 것은 없다”고 했다. 드라마에서 근초고왕이 불세출의 영웅으로 떠오른 까닭은 그가 눈에 보이는 전과나 업적에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춰진 민심, 사소한 열망을 하나로 모아가는 과정에서 백제의 위대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권경률ㅣ대중문화 칼럼니스트]

[더팩트 정치팀 ptoda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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