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캔들] 설씨女, 기다림의 끝은? ‘재회’ 혹은 ‘귀인’
  • 박바른 기자
  • 입력: 2011.03.24 10:47 / 수정: 2011.03.24 10:47
▲ 중국판 설씨녀 이야기인 애니메이션 뮬란의 한 장면.
▲ 중국판 설씨녀 이야기인 애니메이션 '뮬란'의 한 장면.

설씨성을 가진 신라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는 <<삼국사기>> 열전에, 하나는 <<화랑세기>>에 실려 우리에게 전해졌다. 이야기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삼국사기>> 열전의 이야기다.

신라 어느 왕 시절 어느 해에 서라벌의 율리(栗里)라는 마을에 설씨 성을 가진 늙은이가 변방의 수자리(병졸)로 징집되었다. 나이든 아버지를 변방의 수자리로 보낼 수 없었던 딸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그때 사량부의 청년 가실이 설씨 아가씨를 찾아와서 자신이 대신 수자리를 다녀올 테니 돌아와서 자신과 혼인해 달라고 했다. 당시에는 징집되면 3년 정도 수자리를 살았다. 그러니까 3년 정도 국경에 병졸로 배치되는 것이다. 평화로울 때라면 모를까 전쟁이 빈번하던 그 시절 수자리를 간다는 것은 전쟁터 나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실 청년은 설씨 아가씨에게 자신의 말을 맡기고 반으로 쪼갠 거울을 신표로 남긴 채 변방으로 떠났다. 기약한 3년이 지나고 또 다시 3년이 흘렀지만 청년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죽었을 거라 했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다. 기다리다 지친 그녀의 아버지가 혼기를 놓친 딸을 그냥 둘 수 없어 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른 이와의 혼인을 서둘렀다. 그런데 혼인하는 날 그 가실이 기적같이 돌아온 것이다. 가실과 설씨녀는 혼인해서 해로하였다.

다음은 <<화랑세기>> 속의 이야기다.

구리지(사다함의 아버지)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생김새가 기특한 아이를 보게 되었다. 그 아이에게 집을 물어 보니 소민가(小民家: 신라 시대 평민 백성들이 살던 집)였고, 그 집에서 아이의 어미가 천복(賤服: 평민 백성이 입는 남루한 옷)을 입은 채 보리 방아를 찧고 있었다. 구리지가 다가가서 그녀에게 남편에 대해 묻자,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홀로 살고 있는 사연을 털어놓았다. 사연인 즉, 그녀가 16살 되던 해에 좋은 낭도를 만나 혼인을 하려 했으나, 그 낭도가 출정하였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홀로 남은 그녀는 다른 곳으로 시집보내려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낭도의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14년 동안 믿음을 지켰다. 이야기를 다 듣자 구리지는 그녀의 절개를 칭찬하고, 그녀를 자신의 첩으로 삼았다.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 성을 따라 설성이라 불렸으므로, 구리지는 그가 설씨 성을 가진 고관 설우휘 가문의 일원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설성의 아들이 설원랑이고, 설원랑의 증손자가 원효대사이다.

<<삼국사기>> 속의 설씨녀는 수자리 간 연인을 기다리다가 다시 만났고, <<화랑세기>> 속의 설씨녀는 기다리는 사람 대신 귀인을 만났다. 누구를 만났던 간에 이야기 속의 설씨녀는 잘 살았단다.

두 이야기 속의 설씨녀는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후자의 이야기가 좀 더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어서, 전자의 원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약에 그렇다면 왜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하는 의문이 뒤따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하는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화랑세기>> 속 설씨녀 이야기는 설성과 설화랑 가문을 설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반면 <<삼국사기>> 속에는 절개를 지킨 한 여인의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전자는 가문에 관한 설명이기에 가감할 필요가 없었지만, 후자는 여인의 행실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가감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하여 후자의 결말은 전자처럼 귀인을 만난 것이 아니라 원래 헤어졌던 낭도와 재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럼, 믿음을 지키며 기다린 것의 보상이 왜 귀인과의 새로운 만남이 아니라 낭도와의 재회일까? 요즘 셈법으로 따지나, 당시 신라인들의 셈법으로 따지나 귀인과의 새로운 만남이 훨씬 낫지 않은가? <<화랑세기>> 속의 설씨녀도 구리지가 청하자 14년간의 기다림을 접고 그를 따라 나서지 않았던가?

그런데 여기서 잠깐만이라도 <<삼국사기>>의 설씨녀가 6년의 시간을, <<화랑세기>>의 설씨녀가 14년간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지 생각해 보자. 예나 지금이나 여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홀로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두 사서에서도, 그녀의 어려움에 대해 구구절절 적어 놓았다.

그녀가 그 어려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건 “그가 돌아온다”는 믿음이었고, 그에 대한 기다림이었다. 기다림이 그녀에겐 살아갈 수 있던 희망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도, 이야기 속에서 기다림이 만든 희망을 보았기에, 그리고 그 희망이 자신들의 희망이기도 했기에, 원이야기와 다른 “재회”라는 결말을 이야기했던 것은 아닐까?

지금도 일본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재난과 전란으로 헤어진 이들을 생각하며 기다림을 희망으로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희망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힘을 조금씩이라도 모아 그들에게 “도움”이란 귀인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조경란 ㅣ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한국학연구원]

<사진 출처=애니메니션 '뮬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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