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경률기자]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착해요. 거 TV보니까 프랑스 백수 애들은 취직 안 되니까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 부수고 개지랄을 떨던데.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다 지 탓인 줄 알아요. 지가 못나서 그런 줄 알고.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 야, 취직 안 된다고 자책하고 그러지 마. 네 탓이 아니니까. 당당하게 살아.”

백조의 곁을 지킨 깡패의 의리
설 연휴에 방구석을 뒹굴다가 건져 올린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대사다. 이 영화, 한 마디로 얻어걸렸다. 하지만 시선을 뗄 수가 없다. 민간인에게 얻어터지는 깡패와 취업난에 허덕이는 백조 이야기가 왜?
어느 날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 반지하 빌라로 떠밀려온 세진(정유미). 대학시절 4년 연속 장학금을 받고 석사학위까지 딴 재원이지만 취업문은 좀체 열리지 않는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문제다. 설상가상으로 새로 이사한 옆방에는 깡패가 산다. 허겁지겁 스프레이를 구입하지만 밤이 불안하다.
동철(박중훈)은 삼류깡패 주제에 그런 세진이 안쓰럽다. 참한 아가씨가 음식 대신 영양제로 끼니를 때우다 쓰러지질 않나, 자기 때문에 면접 떨어졌다고 바락바락 대들지를 않나, 왜 저러고 사나 싶다. 세상을 좀 아는 인생 선배로서 가만 놔둘 수 없는 노릇. 그래서 위로랍시고 건넨 말이 네 탓 아니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진은 부지런히 입사지원서 넣고 면접 보러 다닌다. 하지만 세진의 이력서를 본 면접관은 그녀를 무시하기 일쑤다. 심지어 심심풀이로 춤과 노래를 시키는 부류도 있다. “널 잃은 아픔에 찢어진 가슴에 텅 빈 내 마음에 난 이제 어떻게 살아. 토요일 밤에~” 약자의 억장이 무너진다.
아직도 세상을 모르냐며 성상납을 요구하는 현실 앞에서 세진은 마침내 울음을 터뜨린다. 이렇게 힘든데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그 망할 놈의 명함을 들고 회사를 찾아가 한바탕 뒤집어엎고 돌아온 깡패 놈밖에.

“지금까지 아무도 이런 걸 묻지 않았거든요”
인생 참 구질구질하다. 그런데 왠지 수긍이 간다. 사람의 가치를 스펙으로 평가하는 세상에서 상처 입는 젊음은 IMF 이후 한국사회의 고질병이다. 그럼에도 80~90년대 경제호황의 혜택을 누린 앞 세대는 혀만 끌끌 찰 뿐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 영화 속 동철의 터프한 참견이 호응을 얻는 것도 그래서다.
동철은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는 캐릭터다. 그의 방 책장에는 고등학교 교과서가 꽂혀 있다. 이따금 교육방송을 시청하기도 한다. 어영부영 쌈질만 하다가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 나날을 후회하는 것. 그런 동철의 ‘나와바리’에 둥지를 튼 위태로운 젊음이 세진이다. 지켜주고 싶다. 면접장을 때려 부수는 한이 있어도.
극중 세진과 같은 취업지망생 중 상당수가 이번 설 연휴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을 것이다. 곧 닥쳐올 졸업시즌이 지나면 이 대열에 또 한 무리가 더해질 터. 특히 지방대 출신이 그렇다. 우수한 학업성적에 외국어 점수와 다양한 자격증을 갖춰도 취업문은 바늘구멍이다. 과연 취업 못 하는 게 이들만의 탓일까?
그게 궁금하다면 세진의 마지막 면접 장면을 살펴보자. 동철의 우격다짐으로 기회를 얻은 그녀는 업무에 대한 고난도 질문에 조리 있게 답변한다. 놀란 면접관이 따지듯이 되묻는다. 이렇게 출중한데 그동안 왜 그렇게 많이 떨어졌냐고. 세진이 토로한다, 학벌에 눈이 팔려 사람을 보지 않는 한국사회를 응시하며.
“지금까지 아무도 이런 걸 묻지 않았거든요.”
세진이 힘겨울 때 곁에 있어준 이는 옆방 세입자일 뿐인 동철이다. 이런 게 바로 의리다. 허나 그 힘겨움이 집단적이고 고질화돼 있다면 깡패의 의리로는 역부족이다. 제도적인 의리가 필요하단 말이다. 국회사무처가 올해부터 지방대 출신을 최대 30%까지 채용하기로 했단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사진=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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