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in 정치] 10·28 재보선, 심슨가족이 떴다!
  • 장현철 기자
  • 입력: 2009.10.22 12:56 / 수정: 2009.10.22 12:56

노란 피부와 튀어나온 눈, 그리고 4개의 손가락. 이렇게 괴상한 가족이 20년 넘게 미국 안방극장을 누비고 있다. “심슨가족”은 폭스TV에서 1989년부터 방영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타임지는 1999년 12월 20세기 최고의 텔레비전 시리즈로 “심슨가족”을 선정했다. 그 “심슨가족”이 2009년 가을 시즌 21로 돌아왔다. 귀환 이벤트도 뻐근했다. 심슨가족의 엄마인 마지 심슨이 섹시한 포즈로 플레이보이지 표지모델을 장식했으니 말이다.

“심슨가족”은 무심한 듯 직설적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가족관과 도덕률을 신랄하게 비꼬고 유쾌하게 허문다. “심슨가족”은 위선을 가차 없이 파고든다. 근엄한 체 하면서도 뒤로는 호박씨 다 까는 정치인과 유명스타를 조롱하기 일쑤다. 그래선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아버지 부시)은 1992년 재선 캠페인을 다니며 “미국인은 심슨가족처럼 돼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어쩌면 이 때문에 무명의 클린턴에게 패한 것일지도.

그럼 이방인인 심슨가족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나라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 한창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재보선 현장으로 달려가 보자.

악수가 불편한 호머, 전화에 몸살 난 마지

정치인의 입 바른 소리가 맥주 한 잔 값어치도 없다고 믿는 호머 심슨. (극중이긴 하지만) 부시 전 대통령과 주먹다짐까지 벌인 후로는 정치 불신이 더 심해졌다. 그런 호머이기에 어깨띠를 두른 낯선 사람들이 자꾸만 악수를 청하는 선거철이 불편하다. 이른 아침 약수터에서 손을 꽉 잡던 그 후보가,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다시 내 손을 덥석 잡는다. 아마도 저이 역시 매부리코 번즈 사장처럼 매일매일 마주치는 나란 사람을 기억 못할 테지.

호머의 참새방앗간은 모의 선술집이다. 문자메시지를 받고 들른 선술집엔 초등학교 동기들끼리 모여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서기 좋아하는 네드가 이번 선거에 출마한 학교선배 이야기를 꺼내자 사이좋은 칼과 레니가 어깨동무를 하고 경청한다. 쳇, 그러고 보니 네드는 그 선배와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다. 네드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아니꼬운 호머는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하늘이 두 쪽 나도 그 후보를 찍는 일 따윈 없을 거야.

전업주부인 마지 심슨은 요즘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후보홍보 전화에 몸살이 날 지경이다. 홍보멘트도 천편일률적이다. “아무래도 경제가 어려울 때는 유능한 000후보가 적임자입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깨끗한 000후보를 꼭 지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다가 투표일이 다가오면 한 쪽 전화만 줄기차게 걸려온다. 투표독려 전화…. 내가 그 쪽 지지자로 분류됐나 보다. 하기야 선거란 자기편을 더 많이 투표장에 보내는 쪽이 이기는 법이니까.

설거지를 마치고 집으로 날아온 선거홍보물을 가지런히 펼쳐놓은 마지. 후보들의 고난극복 스토리와 지역의 찬란한 비전이 감성적인 카피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복제한 듯 어색한 웃음들 틈바구니로 지역구의 오랜 숙원사업인 ‘순환도로 착공’과 ‘지하철역 개설’이 고개를 들이민다. 4대강 사업 때문에 지역마다 예산이 줄어든다는데 10년 째 제자리걸음인 사업을 무슨 수로 실현하겠다는 건지…. 음, 늘 그랬듯 누구를 뽑든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애꿎은 종이 낭비군.

바트 심슨은 보드를 타고 유세차량을 쫓아다니는 데 재미를 붙였다. 형, 누나들이 현란한 율동을 선보이는 뒤로 가수 박현빈의 ‘샤방샤방’을 개사한 로고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능력도 샤방샤방~ 정책도 샤방샤방~ 아주 그냥 죽여줘요~” 때마침 차량 뒤쪽에 있던 음향기사가 자리를 비우자 장난꾸러기 바트의 눈이 반짝 빛난다. 잠시 후 스피커에서 70년대 가수 김추자의 히트곡이 울려 퍼진다. “거짓말이야~ 저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삼삼오오 거리로 나선 부정선거 감시단의 행보엔 웬 꼬마 아가씨가 따라붙었다. 평화를 사랑하고 불의를 용서치 않는 심슨가족의 별종, 리사 심슨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야무진 리사, 소형녹음기로 연설을 녹취하는가 하면 연신 휴대폰카메라 버튼을 눌러댄다. 며칠 후 지역 선관위 홈페이지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온다. 당선유력 후보의 사무국장이 골목길에서 누군가에게 봉투를 전달하는 장면. 이렇게 되면 재선거의 재선거를 치러야 하나?

세종시 축소, 개 호루라기 소리를 들어라?

1996년 할로윈 특집에서 호머 심슨은 낚시를 하다가 외계인들에게 납치당한 적이 있다. 지구정복을 위해 미국대통령이 되기로 결정한 외계인 캉과 코도스는 호머의 자백(?)을 받아 당시 미국대선 후보였던 클린턴과 밥 돌로 변신하는데…. 외계인이라도 낙태 찬성이냐 반대냐에 따라 만사형통인 전당대회장, 외계인임이 드러났는데도 둘 중 누군가에게 투표할 수밖에 없는 유권자들이 현대 선거제도의 빈틈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의 낙태처럼 선거에서 이슈는 꼭 논리적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대중의 관심사이며, 유권자들의 기준점이 되고, 찬반이 명확하게 나뉘면 그걸로 족하다. 이번 재보선의 거의 유일한 이슈라 할 ‘세종시 축소’ 문제가 그렇다. 세종시는 지난 정권 때 엄청난 산고 끝에 결정된 정책이다. 지금에 와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무력화시킨다면 정책의 연속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진다. 그럼에도 무리수를 두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현 정권이 이번 재보선의 승패를 가를 수도권 유권자를 겨냥해 이슈선점 효과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종시는 충청권의 문제인 동시에 수도권의 은근한 관심사이기도 하다. 세종시가 용도변경 되면 수도권의 정부부처 이전도 물 건너간다. 혹시나 하고 마음 졸이던 땅값폭락 염려가 사라지는 셈이다.

‘개 호루라기’라는 게 있다. 사람에겐 잘 들리지 않고 개에게만 잘 들리는 주파수를 낸다고 한다. ‘세종시 축소’는 수도권 유권자 일부를 향한 집권여당의 개 호루라기 소리다.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암호를 해독하는 사람들은 악착같이 투표장으로 향할 것이다. 대한민국 선거는 언젠가부터 땅값과 직결된 개 호루라기 이슈에만 귀를 쫑긋 세운다. (끝)

-권경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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