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in 정치]드라마 ‘근초고왕’… 민족감정 부추기는 공영방송 KBS
  • 정진이 기자
  • 입력: 2010.11.25 11:16 / 수정: 2010.11.25 11:16

[권경률기자] 대하드라마 ‘근초고왕’(연출 윤창범, 김영조ㅣ극본 정성희, 유숭열)은 KBS가 공들여 기획한 ‘삼국시대 영웅군주’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방송가 소식통에 따르면 KBS는 향후 2년간 백제의 근초고왕, 고구려의 광개토왕, 신라의 태종무열왕을 연이어 조명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겠지만 대체로 삼국시대 각국에서 가장 영토를 많이 넓힌 ‘정복군주’ 되겠다.


백제 전성기 이끈 ‘정복군주’, 근초고왕

자, 그렇다면 KBS가 이 시점에서 ‘정복군주’ 이야기를 편성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드라마 ‘근초고왕’의 홈페이지에는 기획의도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노골적인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민족이 분열되어 북이 막혀 있고, 국제정세 속에서 어쩌면 두 번 다시 요동을 회복할 길 없는 이 시대에 ‘근초고왕’이 이룬 위대한 업적이 하나의 신화가 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웅비(雄飛)의 기상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실제로 역사무대에서 근초고왕(近肖古王, 백제 제13대왕, 재위 346∼375년)은 왕권을 확립하고 사방으로 정복활동을 펼쳤다. 남으로는 영산강 유역의 마한 잔여세력을 복속시킴으로써 오늘날의 전라도 지역 모두를 영토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낙동강 서쪽에 위치한 가야세력에게도 손을 뻗쳐 영향권 내에 두었다.

남방을 평정한 후에는 자연스레 북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연히 남진정책을 추구하던 고구려와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근초고왕은 371년에 벌어진 평양성(平壤城)싸움에서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대방군의 옛 땅까지 손아귀에 넣었다. 이로써 백제는 정복을 통해 건국 이래 최대의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대외활동 역시 눈부셨다. 근초고왕은 북중국이 호족(胡族)의 침입으로 분열된 틈을 타 요서지방(遼西地方)으로 진출,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했다. 백제군은 군사적으로 고구려 세력을 견제하는 동시에 상업적으로는 무역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그는 또 일본의 백제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문물을 전했다.

한나라 이래로 중국의 황해연안, 한반도의 서남해안, 그리고 일본열도로 이어지는 해상교통로는 중요한 상업루트였다. 그런데 북중국은 물길에 서툰 호족에게 떨어지고, 남중국 역시 연이어 약체 정권이 들어서자 백제가 이 ‘해상 상업로’를 차지했다. 근초고왕 대의 백제는 ‘동아시아 상업망’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하나의 신화’로서 ‘웅비의 기상’이 되고도 남는 업적이라 하겠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사극 역시 역사적 사실에 적절한 상상력을 더해 시청자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드라마 장르다. 그런데 ‘근초고왕’은 그 상상력이 좀 지나쳐 보인다. 드라마 홈페이지 전반에 민족주의의 호전적 측면이 다분하다.


섣부른 민족감정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불

“나 근초고는 大백제 건설을 요구받은 정복의 왕이다.” 이것이 홈페이지 상단을 장식하고 있는 드라마 홍보문구다. 본문으로 들어가면 점입가경이다. “근초고왕이 중국의 요서지방을 수중에 넣고, 산둥반도를 중심으로 西백제를 건설했으며, 요서-한반도-일본 열도를 잇는 거대한 고리인 ‘환서대제국(環西大帝國)’을 완성했다”는 것.

그리고 “이는 편협한 애국심이나 민족주의에 편승하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대로 사실인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강조한다. “향토사학자들의 야사나 위서를 대하듯이 뜨악한 표정을 짓지 말라”는 취지의 당부와 함께…. 어찌 보면 드라마의 역사관에 토를 다는 것을 예견하고 있지만 신경 쓰지 않겠다는 뉘앙스다.

유감스럽게도 한국고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이러한 시각에 대해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 일축한다. 한중일의 사료들에서 입맛에 맞는 기록만 끌어다 자신의 주장에 꿰맞췄다는 뜻. 그럼에도 제작진은 “‘근초고왕’이 대한민국의 뿌리를 찾는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자신하는 모습이다. 지난 6일 제작발표회장에서다.

물론 제작진의 말처럼 백제의 정복군주 이야기가 현재의 우리 자신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는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민족의식이 다소 호전적이라는 점이 걸린다. 기획의도에서부터 정복군주의 전통이 고려말기의 ‘요동정벌’, 조선후기의 ‘북벌론’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마치 선동하듯 부각시킨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세우고 있다. “동북공정이 승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왜곡되어 기록된 역사이고, 우리 민족은 이 왜곡의 횡포에 천오백 년 가까이 시달려 왔다”는 점을 들어 공분을 이끌어내는 것. 이것은 동북공정에 대한 문제의식과 별개로 가상의 적을 설정해 적대감을 부추기는 ‘호전적 민족주의’의 특징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며 역사왜곡을 자행해온 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잘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섣부른 민족감정으로 맞불을 놓는다면 오히려 동북공정에 명분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그것이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관과 무엇이 다른가? 상처를 상처로 갚으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성숙한 자세라 할 수 없다.

어쩌면 지금까지 비판한 내용이 실은 드라마 홍보를 위해 과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곳도 아닌 공영방송 KBS다.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 천금 같은 책임감을 요구받는 국민의 방송이란 말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포털사이트의 드라마 게시판만 살펴도 알 수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일이다. ‘근초고왕’에 별점 10점을 매기고 ‘아이들과 역사공부에 몰입케 한 고마운 드라마’라고 쓴 주부에게 정말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지.

<사진제공=KBS '근초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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