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렬 교수의 제왕학]‘큰일 낼 사람’ 잠룡 김문수, 변절인가 변신인가
  • 정진이 기자
  • 입력: 2010.11.11 13:29 / 수정: 2010.11.11 13:29

“민주주의 한다고 모든 게 정당화 되느냐? 배고픈 사람에게 민주주의가 밥을 주지는 않는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지난 11월 2일 서울대 법대 초청 강연회에서 한 학생의 질문에 내놓은 답이다. 김문수를 알고 나면 이 대답에 고개가 갸우뚱해질지도 모른다. 그는 정치역정상 흔치 않게 좌에서 우로 건너온 사람이다. 그의 방향전환은 ‘변절’이라는 비판론과 ‘정치인의 변신은 무죄’라는 긍정론이 엇갈리고 있다.

지금은 국가보상까지 논의되지만 그는 한때 “불온세력의 조종을 받아 국가를 전복시키고 공산정권 수립을 추진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된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서 제적된 후, 위장취업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좌파 사회주의 노동운동 조직이었던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서노련)의 핵심조직원으로 활동했다. 김 지사의 이 같은 이력(履歷)은 이제 지난 세대가 아니고는 모를 정도로 완전히 탈색(脫色)되어 있다.

그는 1980년대 노동운동의 전설인 전태일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으로 활약했다. 1990년에는 민중 중심의 좌파정당을 지향한 민중당을 현 정권의 실세라는 이재오와 함께 만들어 선거에 출마했으나 패배했다. 그러나 이후 그는 좌파 사회주의 노동운동 입장을 완전히 바꿔 1994년에 창당한 민주자유당(민자당)에 입당했다.

1996년에는 민자당의 후신인 신한국당 공천으로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민자당과 신한국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에서 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여세를 몰아 2006년 경기도 광역단체장 선거에 출마해 민선 4기 도지사에 오르고, 지난 6월 2일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재선됐다.

3선 국회의원에 도지사 연임까지 성공한 그가 뱉어내는 심상치 않은 언행은 정가의 주요 관심사로 기사화되고 있다. 특히 ‘뉴스메이커’로서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하여 비판성 발언을 거침없이 해대는 모습은 대선 마케팅을 위해 고도로 계산된 이미지 메이킹의 수순(手順)으로 회자(膾炙)되고 있다. 본인은 ‘대권설’을 부인하지만 ‘정치의 본질이 투쟁’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고 있는 그의 사자후(獅子吼)는 대권을 정조준하고 있음을 숨길 수 없다.

김문수 지사는 지난 8·8 개각 발표 직후인 9일, “우리나라는 자고 일어나면 총리라고 나타나는데 누군지 모르겠다”며 김태호 총리 내정에 대해 불만의 뉘앙스를 풍기며 포문을 연뒤, 18일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은 그나마 통이 컸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신도시 개발을) 100만 평 이내로 작게 한다”면서 같은 당 소속 대통령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또 20일에는 “국가를 어디로 끌어가고,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합의는 있는가. 완전히 난장판이 돼서 어떻게 될 것인가”,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를 보면 광화문 얘기만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틀 뒤인 22일엔 “이 대통령은 외교안보 정책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통일 분야에서는 아쉬운 대목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급해진 청와대는 24일 “김문수 지사는 자신이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리지 못하고 있다”며 “자신의 낮은 인지도를 돌출발언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치기(稚氣)가 엿보인다”고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청와대는 이어 “김 지사는 자중하면서 경기도부터 잘 챙겼으면 좋겠다”면서 “중앙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만 신경 쓸 게 아니라 경기도 살림살이를 착실히 챙기는 본업에 전념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아랑곳없이 김 지사는 25일 ´한나라포럼´이 주최한 ‘대한민국과 경제, 미래´라는 주제의 특강에서 “지금 국가의 리더십이 혼미하다. 이 나라의 목표가 무엇인지, 우리가 어디로 가고, 누구와 손잡고 맞설지가 혼미하다”면서 “나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라도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잘하는 것은 잘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고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특강과 초청강연을 통해 끊임없이 대통령의 리더십을 공격하고 있는 것. 이것은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두고 ‘대통령의 비판자’ 이미지로 자리매김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좌파’에서 ‘보수’로 전향(轉向)하며 환골탈태(換骨奪胎) 시도

김문수, 유시민, 심상정…. 민선 5기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맞닥뜨린 세 사람은 우리나라 현대정치사를 묘하게 함축(含蓄)하고 있었다. 그들은 박정희 정권 아래서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을 통해 스스로 수배자의 몸이 되거나 그 수배자를 가족끼리 보살펴 준 관계다. 이 ‘흑백필름’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은 세대의 유권자들은 ‘인생유전(人生流轉)’을 실감했을 것이다.

그들은 ‘원래 한 뿌리(本是同根生)’였으나 지금은 완전히 갈라져 있음을 토로하였다. 근본은 같으나 세상을 풀어나가는 방법을 극단적으로 바꾼 이들의 대결은 ‘보수보다 더 보수 같은’ 김문수 현지사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변하지 않으려면 변화해야 한다’는 말을 연상시키는 듯한 이들의 세포분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만큼 김 지사에게 학생운동, 노동운동의 딱지는 이미 탈색을 넘어 윤색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이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메시지를 버리고 ‘배고픈 이에게 민주주의가 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잠재적 대권주자로서의 소신이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그에게 쏠린 관심도 ‘경기도정’이 아닌 ‘대권행보’에 집중돼 있었다. 쇼라고 보기에는 너무 진정성 있는 택시기사이기도 한 그는 깡마른 강골에 한번 마음먹은 것은 그 어떤 반대도 무릅쓰고 해내는 덕목(德目)을 갖추고 있다. 다만 만천하(滿天下)를 다스리기에는 아직 경기도라는 수도권 일부에 머물고 있는 인지도(認知度)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선거의 8할이 인지도요, 지명도(知名度) 싸움이라고 할 때, 그의 튀는 언행과 디스플레이를 인지도 제고를 위한 작전이라고 폄훼(貶毁)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김 지사가 구설수(口舌數)를 일으킨 ‘대한민국 위기론’처럼 언제부턴가 그의 중심 화두(話頭)엔 늘 ‘국가’가 자리 잡고 있다. 그의 관심 영역은 이미 경기도를 벗어났다. 이른바 인터넷 용어로 ‘탈옥(脫獄)의 지경’에 가 있는 것이다.

“저는 우리 대한민국이 위기를 통해서 기적을 이룬 나라라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가 안 되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통일이 되어 있었다면늘의 대한민국이 있었을까?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라가 망하고, 식민지가 되고, 분단이 되고, 그리고 참혹한 전쟁이 있었기에 오늘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나라 없는 서러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북한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다 공산화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지난 10월 11일과 12일에 걸쳐 아래와 같은 요지의 말들은 ‘통일국가’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헌법이 북한 주민을 우리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있는 주민은 우리가 먹여 살려야 한다. 탈북자들도 한국으로 넘어오면 주택 사주고 생계비를 지원해주지 않느냐. 북한에서 미처 탈북하지 못한 북한의 주민들에게도 쌀 정도는 지원해 주는 것이 헌법에 부합되는 일이 아닌가.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쉽게 붕괴되지도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북한 주민을 먹여 살려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쌀을 빼면 아무 것도 할 것이 없기 때문에 군량미로 쓰인다 해도 주어야 한다.”

세종호텔에서 열린 세종포럼 초청 강연(10.11)에서도 본질적으로 국가 미래와 직결돼 있는 문제들과 궤(軌)를 같이하는 발언을 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얘기하면서 북한이 비핵화하기 전에는 무조건 쌀을 줘선 안 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가능하지 않다. 남북관계의 실천적 전략을 고려할 때 대북 쌀 지원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봐야 한다.”

“북한이 쌀을 군량미로 쓸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그렇게 치면 남북관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견해차는 있겠지만 그 정도는 자연스러운 지원으로 본다.”

“북한은 ‘좌’를 빙자한 세습 독재체제일 뿐이다. 남북한처럼 특이한 이념 대립관계에 있는 나라가 또 어디 있겠나. 자유민주주의를 인식은 하되 북한에 대한 실천적 전략을 가져야 한다.”

“6자회담을 통해서도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간은 북한과 중국 편이다. 탈북자들이 매일 넘어오지만 북한 체제는 그리 간단히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나도 좌파운동을 해봤지만 인간의 생각이란 게 무섭다. 북한이 3대 세습을 해도 아무도 들고 일어나질 않는다. 인간이 언제 저항하고 복종하는지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중국은 사회과학연구원에서 당과 국가의 미래전략을 짜는데 우리는 국가 장기전략을 고민하는 연구소가 없다.”

이어 12일, 그는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세에 따라 남북관계가 천안함 사건이나 군사적인 정세, 여러 가지 변화가 있지만 현재는 일부 문제가 있다. 우리 헌법에도 북한이 대한민국의 일부이고 국민들도 탈북자가 우리나라에 오면 국적 취득이 자동으로 된 것으로 본다. 북한 주민은 우리 국민의 일부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욕속부달(欲速不達), 세상에 오지 않은 것처럼 살다가라!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공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칭찬하는 등 좌-우파를 동시에 아우르는 야누스 같은 김지사의 행보는 일부 보수주의자들로부터 위장된 보수라는 혹평(酷評)을 받고 있다. 여권의 친박계는 김 지사가 부동의 대권후보 1위인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對抗馬)로 급부상하는 것을 사시(斜視)로 바라보고 있다.

야당은 6월 지방선거 당시 ‘차기 대선 불출마’를 공언한 오세훈 시장보다 대권행보에 속도를 내는 김 지사를 견제하는 게 급선무였는지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더욱이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김 지사는 운동권 및 경기지사 경력, 서민 이미지에서 많이 겹쳐 있다. 손학규와 전혀 다른 대척점(對蹠點)에 서있는 그가 어떤 이미지로 승부할 것인가?

손학규에게 아직 민주당 옷은 헐겁게 보이나 김문수에게 파란 한나라당 유니폼은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의 지난 성향은 거론조차 되지 않고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손학규는 한나라당이란 꼬리표가 여전히 어깨를 짓누르고 있지만 김문수는 당적 이탈이 없었기에 그 중도의 공동경비구역까지 넘나들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손학규가 아직 탈색(脫色)중이라면 김문수는 이미 새로 옷을 맞춰 입은 한나라당의 유력 대권주자이다. 김문수 대망론은 어느 후보보다 막강한 화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김문수 대권 프로젝트’의 ‘싱크탱크’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200여명의 직원들 중 80여 명 이상이 박사급인 경기개발연구원이 ‘김문수표 정책’의 산실로 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핀닥터(spin doctor)’가 누구인지 드러나진 않았지만 야당의 잠룡인 유시민을 꺾은 여세를 몰아 대권가도에서 광폭(廣幅) 행보를 보이며 ‘스토리텔링’을 완성해 가고 있다.

고기 맛을 본 자가 고기 맛을 안다고 했다. 그 젊은 시절을 깡그리 부천이라는 동네에서 위장취업까지 해가면서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그가 이제는 배고픔을 이야기한다. 그 배고픔은 겪어본 자만이 아는 ‘실용주의자’ MB를 연상시키면서도 때로는 소신 있는 발언으로 대립각까지 세우며 민심을 파고들고 있다.

이제 그는 전임 지사였던 이인제, 손학규가 걸었던 대권의 길을 물어 경기도라는 땅을 등에 업고 청와대 입성을 노리고 있다. 수도권은 다른 곳과는 달리 전국적 지명도를 획득할 수 있는 지역이다. 그러기에 그는 각종 교통 편의시설 확충을 통해 경기도민의 지지부터 쌓아나가고 있다. 주역은 ‘잠룡물용(潛龍勿用)’이라고 했다. ‘잠겨있는 용은 아직 쓰지 말라’는 의미다. 사람들은 가늠할 것이다. 그가 어디에 서있는지…. 지금은 경기도민이 그 시험대에 놓여있다.

그가 아직 충분히 정치적이지 못한 것은 오히려 자신의 원대함을 감추는 좋은 우산이 될 것이다. ‘삼국연의’에서 유비가 조조의 식객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은밀히 힘을 기른 것처럼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벤치마킹할 일이다. ‘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 그대로. 포수는 기어가는 꿩은 놔두지만 하늘로 비상할 때 방아쇠를 당긴다.

김문수 지사는 아직 ‘잠재적 대권후보’다. 이제 잠룡(潛龍)에서 비룡(飛龍)으로 승천(昇天)하려면 여의주(如意珠)가 있어야 하는데, 그의 여의주는 젊은 시절의 경험을 어떻게 한나라당에 다시 한 번 녹여 낼 것이냐에 달려 있다.

‘서양의 지혜’ 혹은 ‘존재의 철학자’로 불리는 하이데거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살고 있지 않은 듯이 살라”고 갈파했다. 이 세상에 오지 않은 것처럼 살다가라는 말이다. 하이데거는 저서에 ‘장자(莊子)’를 인용하고 ‘도덕경(道德經)’의 번역에 참여하기도 했을 만큼 도교(道敎)에 대한 지식이 심오했다. 그의 가르침은 김 지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존재감(存在感)이 드러나고 있는 김문수에게 하이데거의 가르침은 단순한 현실 부정도 안 되고, 그렇다고 현실 밀착도 아니 된다는 가르침이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의 ‘공(空)’ 사상으로 현실에서 자유자재(自由自在)의 경지에서 유영(遊泳)하라는 뜻이 아닐까?

자기를 비우고, 비운 것도 비울 때 김문수에게 천운(天運)이 따를 것이다. 서두르다 보면 ‘욕속부달(欲速不達)’로 게도, 구럭도 놓친다고 했다. 천명(天命)을 받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위장취업까지 했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민초(民草)의 정한을 체득(體得)할 일이다. 더 낮은 데로 임해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하고 겸허할 일이다. 깨달음은 얻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는 얻으려면 주라고 했다. 그가 헤쳐 나가야 할 제왕의 덕목은 새로운 개척지라기보다 그전에 땅을 같이 갈던 그 모든 이들을 어떻게 포용하느냐가 관건(關鍵)이 될 것이다.

박종렬 (가천의과학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사진=이호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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