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안 = 장 민 박형남기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신안군의 행정 책임을 맡고 있는 박우량 신안군수(55)는 요근래 지방자치단체장 가운데 가장 바쁜 사람중의 하나이다. 김 전 대통령이 태어난 하의도와 목포를 오가며 분주하게 뛰어 다니고 있다. 서울에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고위 정치인과 취재진을 안내하고 행정적 뒷받침을 하느라 쉴틈이 없다.
오는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박 군수를 찾아간 8월 18일, 공교롭게도 김 전 대통령이 오후 1시 40분 서거한 날이었다. 목포시 북교동 허름한 4층 건물의 신안군청은 콩 볶듯이 정신 없었다. 직원들은 이 지역 출신의 전직 대통령을 잃은 슬픔을 삭힐 여유도 없이 불이 난 전화통과 씨름중이었다.
박 군수는 그런 와중에도 1시간이 넘게 <더팩트>에 자신이 살아온 길과 자신의 ‘군정 경험담’을 설명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시장실을 나오니, 대기실은 결제를 기다리는 공무원들로 북적거렸다. 어림잡아 대여섯명이 대기중이었다. 시선이 곱지 않았다. 박 군수가 촌음을 아껴 열정적으로 설파한 한국의 대표적인 변방, ‘신안군 개조 프로젝트’ 속으로 들어가보자.
염전집 아들의 '천일염 브랜드' 프로젝트
“오늘 가평에 있는 기숙학원에 우리 군에서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이 입소했어요. 신안에 9개 고등학교가 있는데 마침 경기 가평 기숙학원 설립자가 목포 분입니다. 그 분께 말씀드려 성사됐습니다. 섬 아이들이 불이익 없이 공부해야하는데, 항상 ‘짠’합니다.”
박 군수가 가장 먼저 꺼낸 소재는 역시 교육문제였다. 1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군 인재들이 육지사람들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평가 받도록 기꺼이 밑자락을 깔겠다는 섬 사람 특유의 ‘투지’가 넘쳤다.
- 소금 전문가시라던데요.
“제가 염전집 아들 출신입니다. 집안이 대대로 염전을 했죠. 어렸을적에 학교 갔다오면 가방을 놓자마자 곧바로 염전으로 달려가 염부들과 물을 앉힌 소금밭에서 일했죠. 아버지가 ‘일 안하면 밥 먹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지론이셨거든요. 옛날에는 쌀 한가마니와 소금 한가마니 값이 똑 같았어요. 덕분에 집안 형편은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덤으로 소금 전문가가 됐죠.”
술 즐겨하셨던 아버지…"밤길 걸으며 인생 얘기 꺼내셨다"
- 아버님이 엄하셨나요.
“아닙니다. 시골 양반치고는 정서적이셨어요. 기타치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셨죠. 당연히 술은 즐기셨고… 어렸을 적에 어머니 ‘지시’(?)로 아버지 모시러 많이 갔죠. 가는 길이 컴컴해서 무서웠는데, 그래도 아버지를 만난다는 생각에 뜀박질로 계신곳으로 달려갔죠. 술에 취한 아버지 손을 잡고 밤길을 걸어오면서 아버지가 인생 얘기를 하셔요. 열심히 살아야된다, 뭐 그런 이야기였는데, 전 술에 취한 아버지가 논길에 넘어질까봐 거기에 신경을 집중하죠.”
박 군수 아버지는 매우 자상했다. 네 아들 모두가 목포에서 유학할 때 밤늦게 목포 중앙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집까지 걸어 와서 영화스토리를 자식들에게 다시 리바이벌했다. 손에는 항상 자식들이 좋아하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었다. 아버지의 영화 얘기를 자장가로, 잠이 들던 소년 박우량은 상상력을 키운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AB형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창의성과 상상력을 키워주기 위해 고심을 많이 하셨지 않나 생각합니다. 시장 군수를 하려면 행정을 잘 하고, 그것도 깨끗하게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에요. 여기에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지방과 지방간의 경쟁이 너무 치열합니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없으면 주민들이나, 나아가 국회의원 등을 설득하기가 어렵습니다.”
광물로 지정된 천일염…"법령 바꿔가며 식품으로 분류시켜"
박 군수의 상상력이 가장 크게 발휘 된 것이 이른바 ‘천일염 프로젝트’다. 연간 25만톤의 천일염을 생산하는 신안군은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으나, 2008년까지 관계 법령에 의거해 식품이 아닌 45년간 광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식품회사, 제약업체, 김치공장 등은 그동안 해수 증발하고 남는 정제염(공장염)이나 해외에서 수입하는 암염 등을 사용했다.
“예전에 염전할 때 보면 염부들이 배가 고프면 소주 반병을 부어서 안주 없이 소금 몇 개 집어먹고 일하러 갑니다. 뙤약볕에서도 끄떡 없죠. 지금 생각하면 모두 고혈압으로 고생해야하는데, 한 사람도 그런 사람이 없어요. 소금 짠맛의 성분이 염화나트륨(NACL)인데, 우리 신안 것은 82~92%에요, 공장에서 만든 것들은 NACL이 98~99%라서 소금이 짜지 않고 쓰지요. 우리 신안 것은 단맛이 납니다”
천일염은 박 군수의 끈질긴 노력으로 지난해 3월 18일 정식으로 식품으로 분류됐다. 그리고 3월 29일 청계천에서 신안 천일염 축제가 열렸다. 시장을 선점한 것이다. TV이나 신문을 통해 '신안 천일염' 뉴스 안 본 사람 없을 정도로 천일염은 이제 신안군의 명물이자, 고유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연간 5~6억원의 홍보 예산을 책정해 '천일염' 브랜드의 유지, 보수에 진력하고 있다. 덕분에 신안군에는 소금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소금은 공기를 먹고 자랍니다. 황사가 오면 노랗게 변할 정도로 공기에 민감하죠. 신안군은 대다수 섬들이 육지로부터 30~ 50km 떨어져 있어 수질이 1급수입니다. 다른 천일염 생산지들이 반경 5~10km이내에 산업시설이 접해 있지만 신안군은 그럴 걱정이 없습니다. 햇볕과 수질, 바람, 그리고 공기, 모두가 신이 우리 신안군에 준 선물이죠.”
자칫 소금 얘기로 인터뷰가 끝날 모양이다. 서둘러 말머리를 돌렸다. 화제를 바꾸는데는 역시 개인사가 그만이다.
밤에 불 켜지 않는 '다크 스카이'…생태주의와 환경의 구체적인 접목
- 학창시절 공부는 잘 하셨나요.
“(흥이 깨진 듯한 표정이다) 공부는 잘하지 못했어요. 중간 정도했던 것 같아요. 시골에서는 잘했지만... 학창시절 군인이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결국 교대를 갔죠. 당시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졌습니다. 갖고 있던 배가 두 번 침몰되면서 그것을 보상해주느라 힘들었어요. 집에서 교대를 가라고 설득해서 교대를 갔더니 선생님 발령이 안나는거에요. 그래서 7급 공무원 시험을 보고 합격했죠”
첫 발령지가 신안군청이었다. 3년간 근무하다 내부 시험을 거쳐 내무부 본부로 전근을 갔다. 박 군수는 그곳에서 쟁쟁한 고시출신들의 틈바구니를 뚫고 주요 부서 과장을 거쳐 하남시 부시장까지 역임했다.
“시골출신이니 빽이 있겠어요, 돈이 있겠어요. 무조건 열심히 하는 수 밖에…. 공무원 오래할려면 유학도 가야할 것 같아서 일본 오사카 대학에 가서 석사도 땄죠. 한번 결심하면 밀어 붙이는 스타일인데, 동기들 대부분이 쉬고 있는데 나는 아직 현역이니, 그런데로 공직 생활은 아쉬움 없이 보낸 것 같습니다.”
2006년 지자제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박 군수는 공직 경험을 살려 숱한 스토리를 양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슬로우 시티’는 생태주의를 행정에 접목한 첫 번째 사례로 손꼽힌다. 슬로우시티는 전국 지자체 중 4군데가 시행중이나 신안군은 양이나 질 적인 측면에서 다른 곳을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슬로우시티'의 진화 위한 자체적으로 행동규범 마련
박 군수가 ‘슬로우시티’의 진화를 위해 내 놓은 행동규범은 다음과 같다. ① 친환경 섬으로 가자. 농사를 비료와 농약 안하고 짓자. ② 자전거 섬으로 가자. 그 섬에 가면 자전거를 누구나 탈 수 있도록 하자. ③ 주민들을 설득해서 내년 1월 1일 담배를 안 피는 섬으로 가자. 신안군은 내년부터 섬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담배예금제를 시행해 담배를 맡겨 두었다가 다시 찾아가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른바 ‘ Dark Sky’ 구상은 박 군수의 환경에 대한 생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자치단체가 불을 휘황찬란하게 켜는 행정에 힘을 쏟고 있는데, 우리는 정반대로 갑니다. 어두운 밤하늘, 별빛 보는 섬을 만들고 싶어요. 시범적으로 실시중인 증도는 가로등 빚이 하늘로 안 나가게 갓을 씌었습니다. 집집마다 커텐을 쳐서 밖으로 나가는 불빛을 잡아주려 합니다. 우리 신안군에는 앞으로 조명이나, 네온사인은 없을 겁니다. 섬에 오면 조용히 밤하늘을 자연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으로 만들 겁니다.”
바다와 갯벌을 살리기 위해 신안군 일부 섬은 인공세제를 군에서 전부 회수했다. 대신 친환경세제로 바꾸어 주었다.
24억원 들여 3년만에 폐비닐, 농약병 완전 추방
폐비닐 추방도 박 군수의 역작이다. 박 군수는 부임 직후 각 동네가 폐비닐 천지로 뒤덮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다 갯벌을 죽이는 주범이었다. 정부에서 폐비닐 보상을 해주는데, 1kg 당 50원에 불과했다. 돈이 안되니, 누구도 폐 비닐을 걷지 않고 방치했다. 박 군수는 이를 6배 올려 kg당 300원으로 인상했다.
5톤트럭 한 차면 150만원이 나온다. 그러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눈에 불을 켜고 폐비닐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3년간 24억원을 투자한 ‘폐비닐 수거운동’ 덕에 신안군은 이제 폐비닐이 거의 사라졌다. 지천에 널린 농약병도 비슷한 방법으로 완전 추방했다. 박 군수가 부임 한후 신안군은 사람을 귀찮게 하는 지역으로 변모했다. 앞으로 신안군을 더욱 '불편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다. 섬안에 차를 갖고 오지 못할 계획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박 군수의 말이다.
“내년에 신안군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찾는 증도에 다리가 생깁니다. 지금도 1년에 한 20만명이 오는데, 다리가 생기면 연간 50~60만명 올 걸로 예상됩니다. 자칫하면 쓰레기 섬, 자동차 섬이 되어버립니다. 요새는 차가 들어오면 수박, 야채, 고기까지 먹을 것을 다 싣고 왔다가 섬에다 쓰레기 버리고, 자기 차만 빠져 나갑니다. 그래서 선착장에 약 2천대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을 만들 생각이에요. 그곳에 차를 놓아두고 걷던지, 아니면 자전거, 우마차, 셔틀버스를 타라는 것이죠. 그것이 불편하면 오지 않아도 됩니다.”
신안군수가 버스회사 사장이 된 사연
생태적 관심은 신안군이 버스회사를 겸하게 된 사연으로 이어진다. 사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군수는 지방선거에서 100년 동안 이어온 '야간(일몰∼일출) 항해 금지규정' 해제를 공약으로 내 세웠다. 당시 섬을 오가던 여객선은 해뜨기 30분전, 해진 후 30분 후까지만 운항이 가능했다. 안전사고를 우려한 탓이다.
이 때문에 신안군민들은 해가지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유랑자 처지로 전락했다. 이것을 뜯어고치겠다고 나섰다. 대개가 냉소적인 반응이었다. “섬사람인 DJ도 못한 일을 하겠냐”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해양수산부 장차관, 국회의원을 찾아 다녀도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아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 서남권 특별법 회의가 열렸다. 다른 지자체장들이 부족한 예산을 거론하며 앞다퉈 민원을 제기할때 마음속으로 돈 안드는 오직 한가지, '여객선 운항' 문제를 꺼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박 군수는 순서가 오자 “육지에서 통금 없어진지가 20년이 넘었다. 그런데 우리 신안군은 오후 4시30분이면 통금이 돼서 못갑니다. 제발 저녁에 배 좀 다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대통령은 즉석에서 “도와주라”고 지시했지만, 진척이 없었다. “섬 사람 마음은 섬 사람 아니면 몰라요. 가슴에 한이 맺혀 그러요. 도와주쇼” 박 군수의 집념은 그리 쉽게 꺽이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랄까. 결국 무안을 방문한 대통령에게 재차 이를 요청해 해양수산부의 협조를 얻어 2007년 3월28일 법을 바꿨다. 모든 여객선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운행하는데 제한없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막상 밤까지 배가 다니자 이번에는 섬의 버스 업자들이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밤에 배가 들어와도 손님이 적어 채산성이 맞지 않아 버스를 운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안군 관내 버스 13대가 똑 같은 반응이었다. 정부를 설득해 간신히 주민들의 '밤이슬 뜨네기' 신세는 면했지만, 버스업자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었다.
“업체를 직접 찾아가 사정하고 협상했어요. 주변에선 버스업자들이 지역유지인데, 표 떨어진다면서 말리더군요. 그래도 굴하지 않고 협상이 안되면 협박하고 압박도 해서 버스를 싹 사들였습니다. 버스공영제를 도입한 것이죠.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보상금 6억5천만원이 들어갔어요. 지금은 보조금, 비용 나가던 것 계산하면 옛날보다 훨씬 이익입니다. 졸지에 13개 버스 회사 사장이 됐습니다.”
들쑥날쑥했던 버스운행 '이제 그만'…버스회사 사장된 이후 '친철' 강조
신안군의 버스공영제로 군민들의 대중 교통 이용이 훨씬 편리해졌다. 예전처럼 비오고 눈온다고, 기계고장을 이유로 들쑥날쑥이던 버스운행시간이 정시정각으로 고정됐고 서비스 질도 높아졌다. 군수가 직접 ‘친절해라’ ‘안전해라’고 기사들에게 귀가 따갑도록 얘기하니 저절로 기강이 섰다.
"육지분들은 모르겠지만 섬사람들에게 항상 나오고 들어갈 배가 있다는 것은 그전과 큰 차이가 있는 문제이죠. 예전에는 마음껏 아플수도 없죠. 이제는 아프면 사람이 들어올 수도 있고 나올수도 있잖아요.아, 나도 밤에 집에 갈수 있구나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기쁨을 이제야 우리는 누려보는 겁니다."
신안군은 서울보다 큰 지역이다. 섬을 모두 합치면 서울시의 1.1배 면적에 달한다. 박 군수에 따르면 “바다까지 합치면 서울보다 22배 넓은 광활한 땅”이다. 전국에 섬이 3250개인데 전라남도에 2천개가 몰려 있고 그 중에 신안군에 1004개가 있다. 해수욕장만 500개. 신안군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신안군에선 본래 바람이 원수에요. 바람이 불면 배가 못다니깐. 바람을 원망하고, 그 죽일놈의 풍랑 때문에 많은 어부들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모진 바람이 불던 곳에 풍력단지가 들어와요. 졸지에 우리에게 연간 300~400억원이 들어오게 생겼습니다. 김선달의 시대가 온거야. 또 신안 지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왔습니다. 신안군도 이제 먹고 살곳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소신껏' 일할 생각에 무소속으로 남아…"머릿속엔 정당도 정치도 없다"
끝으로 언제까지 무소속으로 남아 있을지 궁금했다. 중앙에서 좀 껄끄럽게 생각하는것 같다고 물어보자, 시원스런 답변이 돌아왔다. “30년만에 고향에 돌아와서 군수하는데 정말 소신껏 해볼 생각입니다. 제 머릿속에는 정당도, 정치도 없습니다. 군수한지 4년이 다 되어가는데, 우리 군민들도 정당 같은 것 생각 안합니다. 전 우리 주민들이 ‘박우량을 군수 시켜놓고 보니, 세상이 바뀌는구나’ 그말 한마디만 들으면 족합니다.”
<사진ㅣ신안=김용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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