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막론하고 인지도·계파 경쟁에 몰두
국민 대신 자신을 알리는 정치, 이대로 괜찮나

[더팩트ㅣ국회=서다빈 기자] 국회가 오디션장이 됐다. 누가 더 설득력 있는 말을 하느냐보다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느냐가 주목받는다. 정치인의 존재감은 정책의 깊이나 의정활동의 성과보다 발언의 강도와 화제성으로 증명되는 듯하다.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이 어느새 국민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2017년 방영된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를 떠올려 보자. 101명의 연습생은 국민 프로듀서의 선택을 받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짧은 방송 시간에 자신을 각인시켜야 했던 연습생들에게 카메라에 잡히는 순간은 절실했다. 당시 '윙크남'으로 화제가 된 박지훈은 무대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없이 윙크를 날렸다고 밝혔다. 카메라에 한 번이라도 더 잡히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실력만큼이나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능력이 중요했던 셈이다.
최근 국회를 보면 그때의 오디션 무대가 겹쳐 보인다. 국회의원도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연습생과 국회의원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다르다. 연습생은 자신을 알려야 하지만, 국회의원은 자신을 뽑아준 국민의 목소리를 알려야 한다. 그런데 정작 국회에서는 누구를 대변했느냐보다 얼마나 주목받았느냐가 정치적 존재감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의힘 주진우·이진숙·김태규 의원의 최근 언행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주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을 겨냥한 SNS 발언으로, 이 의원은 대통령 부모 묘소를 찾아 농지법 위반 의혹을 제기한 일로 도마에 올랐다. 김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장소인 '부엉이바위'를 언급해 논란을 일으켰다. 각각의 발언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국정감사가 정책과 국정 운영을 검증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이들의 언행을 둘러싼 공방이 부각되는 현실은 씁쓸하다. 정작 그 발언들이 국민의 삶을 얼마나 나아지게 했는지는 의문이다.
더불어민주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최고위원 5명 가운데 4명은 초선 의원이다. 초선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역량을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문제는 선거 과정에서 무엇이 주목받았느냐다. 민주당을 어떻게 바꾸고 집권여당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보다 친명·친청 계파 갈등과 신천지 개입 의혹을 둘러싼 공방이 부각됐다. 당의 미래를 위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한 후보들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묻혔다.

정작 더 나은 민주당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약속보다 어느 진영에 속해 있는지, 누구와 가까운지가 더 큰 관심을 끈 셈이다. 당의 방향을 제시하는 정책과 공약보다 계파 간 대립이 선거의 중심에 선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대목이다. 후보 개인의 역량을 겨루는 선거가 어느새 진영의 세를 과시하는 무대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실제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러한 선거 풍토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더팩트>에 "인기에 편승해 당선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후보들이 자신이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적인 말만 내뿜다 보니 갈등이 계속 격화되는 것"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전당대회 룰도 바꿔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물론 대중의 관심을 얻는 일도 정치인의 능력이다.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정치는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강한 목소리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거나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때로 누구보다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문제는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그 목소리가 향하는 곳이다.
정치인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알릴 기회조차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말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들의 이야기를 국회로 가져오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이다. 그러나 정치권의 관심이 온통 누가 더 강한 발언을 했는지, 누가 더 많은 지지를 얻었는지에 쏠리면 정작 그들이 대변해야 할 사람들의 목소리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프로듀스 101'의 연습생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그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다르다. 국민이 국회의원에게 마이크를 쥐여준 이유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라는 뜻이 아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대신 전해달라는 의미다.
국회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은 누구인가. 어쩌면 매일같이 쏟아지는 정치인들의 목소리에 가려진 국민일지도 모른다. 국회가 가장 크게 들어야 할 목소리는 카메라 앞에서 외치는 정치인의 말이 아니라, 카메라 밖에서 살아가는 국민의 이야기다.
bongous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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