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시설요건 완화…일부 무병상 의원 사용 허용
남인순 "원내투약 일률적 의무화해선 안돼"

[더팩트ㅣ국회=서다빈 기자] 전국 산부인과 의원 네 곳 중 세 곳에는 입원병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임신중지 의약품 '미프진' 도입 초기 약물을 의료기관 안에서 복용하고 일정 시간 관찰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가운데, 일선 의료기관의 실제 진료 여건을 고려해 원내투약 여부를 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전국 산부인과 병상 보유 현황'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기준 전국 산부인과 의원 1329곳 가운데 입원병상이 한 개도 없는 의원은 990곳으로 집계됐다. 전체의 74.5%에 해당한다.
입원병상을 갖춘 산부인과 의원은 339곳에 그쳤다. 구체적으로 △1~4병상 130곳 △5~9병상 80곳 △10~14병상 29곳 △15~19병상 20곳 △20~25병상 35곳 △26~29병상 45곳이었다.
입원병상이 없다고 해서 처치실이나 외래 환자를 관찰할 공간까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산부인과 의원 상당수가 입원 기능 없이 외래 진료 중심으로 운영되는 현실을 보여주는 만큼, 향후 약물 복용 후 일정 시간 의료기관 내 관찰이나 별도의 시설 요건을 요구할 경우 실제 진료 여건과 환자의 접근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 초기 안전관리와 사용 실태 점검 등을 위해 의료기관 내 처방·조제를 원칙으로 하고, 약물 복용 이후 일정 시간 의료진의 관찰 아래 두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구체적인 투약·관찰 방식과 의료기관 시설 기준 등은 향후 진료지침 등을 통해 정해질 예정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임신 12주 미만 약물적 임신중지의 경우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 등을 이용한 임신중지 과정을 전부 또는 일부 스스로 관리하는 '자기관리'를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권고하고 있다. 여기에는 의료기관 밖에서 약물을 직접 복용하고 과정을 관리하는 방식도 포함된다.

다만 WHO는 자기관리를 위해 정확한 정보와 품질이 보장된 의약품이 제공돼야 하고, 필요할 경우 의료진의 지원이나 의료기관에 접근할 수 있는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안전을 위한 의료 지원 체계는 갖추되 모든 임신중지 과정이 반드시 의료기관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WHO는 이와 함께 의무적인 대기기간이나 특정 의료기관·의료인에게만 임신중지 서비스를 제한하는 등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접근 장벽을 줄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 초기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의료기관의 시설 여건과 환자의 접근성을 함께 고려한 투약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임신중지 의약품을 도입한 일본에서도 의료기관 시설 요건이 의약품 접근성을 제한하는 문제가 불거졌다. 일본 후생노동성 지원으로 실시된 전국 조사에 따르면 2023년 5월부터 10월까지 이뤄진 인공임신중지 3만6007건 가운데 1만3320건, 약 37%가 병상이 없는 의원에서 시행됐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경구용 임신중지약 '메피고팩'을 입원이 가능한 병원이나 병상이 있는 진료소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병상이 없는 의원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이 같은 시설 요건 아래 실제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도 제한적이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8월 23일 기준 메피고팩 사용이 가능한 의료기관은 전국 190곳에 그쳤고, 8개 현에는 사용 가능한 의료기관이 한 곳도 없었다. 후생노동성 약사심의회에서도 사용 가능 의료기관의 지역별 편차가 문제로 다뤄졌고, 이후 일본은 일부 병상이 없는 의원에서도 해당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했다.
남인순 의원은 "산부인과 의원 네 곳 중 세 곳에는 입원병상이 없는 만큼 실제 의료현장을 충분히 고려한 투약 기준이 필요하다"며 "WHO도 안전을 위한 의료 지원 체계는 갖추되, 의무 대기시간 등 불필요한 접근 장벽은 줄이고 의료기관 밖에서 약물을 복용하는 자기관리 방식도 하나의 선택지로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의료 현실과 국제적 권고를 고려하면 임신중지 의약품의 원내투약을 일률적으로 의무화하기보다 안전성과 접근성을 함께 고려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ongous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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