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당원 권한, 방치된 이중당적…양향자, 당원주권보호법 제안

정당 가입 문턱이 낮아진 지 10여 년. 스마트폰으로 본인 인증 몇 번만 하면 수 분 만에 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 시대다. 여야 모두 '당원 직선제'와 '1인 1표제' 확산으로 당원의 한 표가 당 대표 선출과 공천 등 당내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가입 단계에서 신청자가 다른 정당의 당원인지 확인하는 절차는 사실상 없다. 당원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이중당적'이 경선에 개입할 수 있는 사각지대도 커지고 있는 셈이다.<편집자주>
[더팩트ㅣ김시형 기자] "여야 모두 당원의 힘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정작 그 당원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
정당법 제42조는 '누구든지 2개 이상의 정당의 당원이 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해 2개 이상의 정당에 가입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가입 단계에서 이를 걸러낼 장치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개혁신당·조국혁신당·자유와혁신 등 5개 정당의 온라인 입당 절차를 확인한 결과, 모두 정당법상 '2개 이상의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없다'는 취지의 안내를 가입 초기 단계에서 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가입 과정에서 신청자의 타 정당 당적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는 찾아볼 수 없었다. 본인 인증 이후 이름·주민등록번호·주소·연락처·당비 납부 여부 등을 입력하면 가입 신청을 마칠 수 있었다.

민주당에 가입해 권리당원으로 활동하면서 국민의힘에도 가입해 두 당적을 유지하고 있는 30대 이모 씨는 "가입할 때 이중당적과 관련한 질문을 받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이 씨는 "정치에 관심이 많아 주변의 민주당 당원들을 보며 온라인으로 민주당에 가입했다"며 "원래는 돈을 내지 않는 당원이었는데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매달 당비를 내기 시작했고, 최근 당 대표 선거에도 참여했다"고 했다.
이어 "국민의힘에는 한동훈 전 대표와 관련한 당원 게시판 문제가 이슈가 됐을 때 호기심에 당원 게시판 등을 둘러보려고 가입했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의힘의 경우 탈퇴하기가 귀찮아서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며 "가입 절차가 온라인으로 간단하지 않았다면 애초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 씨의 사례처럼 이중당적은 개인의 호기심이나 정치적 관심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복수 당적을 가진 사람이 당 대표 선출이나 공천 등 당원 투표에 참여할 경우다. 당원 수가 늘고 당원 투표의 비중이 커질수록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조직이 다른 정당의 당원 자격까지 확보해 경선에 참여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당내 경선에서 당원명부는 단순한 명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어느 지역에 어떤 당원들이 있는지 파악하고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등 조직의 기반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타 정당 당적을 가진 사람이 경선에 참여한다면, 이중당적은 개인의 가입 문제를 넘어 당내 의사결정의 대표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거대 양당은 물론, 개혁신당 등 제3정당과 한국의희망 창당까지 경험한 양향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팩트>와 만나 과거 광주시장 선거 과정에서 당원명부를 둘러싼 제안을 받은 경험을 공개했다.

양 최고위원은 "광주시장 선거에 나왔을 때 한 브로커가 당원명부 몇천 명을 갖고 있다며 1억 원에 사라고 제안이 들어왔었다"고 말했다.
당원명부를 단순한 연락처 목록이 아닌 경선 조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양 최고위원은 "한 열 명만 관리하면 나머지는 다 그 밑에 피라미드로 관리되고 있다고 했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선출직 출마자들을 대상으로 이런 일이 얼마나 버젓이 성행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양 최고위원은 특정 정당이나 정당 규모를 가리지 않고 모든 선출직 출마자가 당원명부를 둘러싼 문제에 노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3중, 4중 당적은 기본이고 8중 당적이 있다는 사람까지 들어본 적이 있다"며 "그 지역구에 출마했던 경험이 있거나 명부를 계속 사왔던 사람들이 되파는 구조"라고 했다.

이어 "여야를 막론하고 당원의 힘이 더욱 커지는 흐름 속에서 그 당원이 '오염된' 당원이라면, '좀비정당'이라면 어떻겠나"라며 "논란이 된 용혜인 기본소득당부터 '올공'에서 국민의힘 당적을 유지하면서 자유와혁신에도 가입했다는 제보까지 모두 다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최고위원은 이중당적 문제를 걸러내기 위한 방법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블록체인 등 암호화 기술을 활용해 이중당적 여부를 검증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주요 선거와 경선에 앞서 선거인단의 이중당적 여부를 통합 검증하는 내용을 포함한 '당원주권보호 3법'을 제안했다. 당원명부 전체를 공개하지 않고도 중복 당적 여부만 확인해 개인정보 침해 우려를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그는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이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사람이 이중당적인지는 확인할 수 있다"며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없고 아주 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양 최고위원은 "이중 당적을 막는 것은 정당 오염을 막는 것"이라며 "당원주권이 강조되는 시대에 여야 양쪽 모두 다 털어내지 못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rocker@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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