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정당 넘어 정보 신뢰성까지 충돌…SNS가 키운 인식 차이

밥상에 정치가 오르면 가족도 남이 된다. 지지 정당과 세대 차이로 시작된 갈등은 이제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접한 정보의 진위를 둘러싼 충돌로 번지고 있다. 다툼을 피하려 정치 뉴스를 끄고 대화를 삼가는 사이, 친구와 연인 사이에서도 정치가 금기어가 됐다. <더팩트>는 추석을 앞두고 일상을 파고든 정치 갈등의 현장과 SNS가 바꾼 정치 대화의 풍경을 두 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국회=서다빈 기자] "아버지가 TV에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나오는 걸 보시더니 광어회를 던지셨어요. 던진 회는 제가 주워 먹었죠."
추석 명절을 앞둔 김 모(28·여) 씨는 가족과 식사하던 중 벌어진 일을 떠올리며 웃었다. 정치 뉴스에 대한 아버지의 반응이 그만큼 충격적이었다는 설명이다. 김 씨는 "같은 뉴스를 보더라도 부모님 세대와 제가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걸 강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지만, 정치 이야기는 되레 피해야 할 화제가 됐다.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로 언성을 높이는가 하면, 갈등을 피하려 아예 정치 뉴스를 보지 않는 가족도 있다. 정치적 견해 차이로 명절 밥상이 뒤집힌 사례도 있다. 최 모(30·남) 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된 때를 떠올렸다. 당시 친가 식구들이 박 전 대통령을 '공주님'이라고 부르며 박수를 치자, 가족 중 한 명이 "독재자 딸X"이라고 외치며 밥상을 엎었다는 것이다.
이후 최 씨 가족의 명절 풍경은 달라졌다.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면 정치 뉴스 대신 영화 채널이나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는다. 최 씨는 "주변 친지들은 보수 성향인 경우가 많은데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괜히 갈등이 생길까 봐 입을 다물게 된다"며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정치적인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대학생 황 모(24·여) 씨 역시 명절에 벌어진 가족 간 다툼을 기억한다. 할아버지가 "나는 2찍이다"라고 밝히자 이모가 당시 의정 갈등에 따른 의료 공백을 거론하며 "나 아파서 병원도 못 가고 죽으면 어떡하냐. 나 죽으면 아빠 탓이다"라고 맞받았다는 것이다.
황 씨는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치 문제로 싸우니까 정말 진절머리가 났다"며 "아무리 가족이라도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면 차라리 정치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현재 가족 관계는 회복됐지만, 정치 뉴스는 여전히 피해야 할 대상이다. 황 씨는 "아버지가 정치 관련 뉴스나 방송이 TV에 나오면 아예 채널을 돌려버리신다"며 "서로 정치 이야기를 피하다 보니 예전처럼 갈등이 생기는 일은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과거의 갈등이 주로 지지 정당이나 세대 간 정치적 견해 차이에서 비롯됐다면, 최근에는 SNS를 통해 접하는 정보 자체가 달라지면서 가족 간 대화가 어려워졌다는 경험담도 나온다.
직장인 김 모(33·여) 씨는 인스타그램을 즐겨 보던 남동생이 어느 날부터 부정선거를 주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원래 가족 모두 진보 성향이었지만 동생이 SNS를 통해 정치 콘텐츠를 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김 씨는 "동생이 갑자기 부정선거라고 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중국인이라는 주장까지 하더라"며 "저한테도 맨날 그런 릴스를 보내서 결국 차단했다"고 했다. 이어 "솔직히 낯부끄럽고 주먹이 먼저 나갈까 봐 동생이랑 대화도 잘 안 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정 모(33·여) 씨도 가족들이 유튜브를 시청한 뒤 이전과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가족들이 이른바 '국뽕 영상'을 즐겨 보면서 중국 공안이 부정선거에 개입했다는 주장까지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 씨는 "가족들이 예전 같으면 전혀 하지 않았을 법한 말을 하더라"며 "그 부분을 지적했더니 '이게 사실이지 않느냐'고 했다. 결국 감정이 격해져 가족들과 생전 처음 그런 문제로 싸웠다"고 말했다.

이후 가족에게 사과를 받았지만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들이랑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답답하고 막막했다"며 "사과를 받아도 전혀 기분이 나아지지 않고 찝찝했다. 이런 식으로 편견에 젖어 드는 거구나 싶었다"고 했다.
비슷한 정치 성향을 공유하던 가족도 유튜브에서 접한 정보의 신뢰성을 두고 충돌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같은 진보 진영 안에서도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신뢰하는 매체에 따라 의견이 엇갈린다. 카페를 운영하는 박 모(50대·여) 씨는 자신은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지하지만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김민석 민주당 대표나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김어준 방송에서 들은 내용을 이야기하다 가족들과 말다툼을 벌인 적도 있다. 나는 TV보다 유튜브를 더 믿는 편"이라며 "다른 사람을 지지한다는 유튜버를 본다고 하면 솔직히 이야기도 하기 싫다"고 말했다.
정치 이야기를 피하는 것이 당장의 갈등을 막는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가족들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할 기회까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또 다른 고민거리다. 김 씨는 "SNS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특정 주장이나 의견을 빠르게 확산시키고 비슷한 생각을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며 "극우든 극좌든 그런 영상들을 계속 접하는 것 자체가 너무 피곤하다"고 말했다.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 이메일: jebo@tf.co.kr
-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