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靑, 노근리 유족 만났다…정부, 과거사 '통합 배·보상' 입법 검토
  • 김시형 기자
  • 입력: 2026.07.24 00:00 / 수정: 2026.07.24 00:00
개별 특별법·소송 의존해 수십년 걸린 배·보상…정부 첫 '통합 입법' 검토
3기 진화위 근거 '과거사 기본법'…별도 입법 길 열려
청와대가 최근 노근리 유족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정부 차원에서 노근리를 비롯한 과거사 사건에 대한 통합 배·보상 입법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뉴시스
청와대가 최근 노근리 유족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정부 차원에서 노근리를 비롯한 과거사 사건에 대한 '통합 배·보상' 입법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뉴시스

[더팩트ㅣ김시형 기자]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노근리 사건이 오는 25일 76주년을 맞는 가운데, 청와대가 최근 노근리 유족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정부 차원에서 노근리를 비롯한 과거사 사건에 대한 '통합 배·보상' 입법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수십 년간 사건마다 특별법을 제·개정하거나 개별 소송에 의존해 장기간 지연돼 왔던 과거사 배·보상 체계를 포괄 입법 방식으로 전환하려는 첫 정부 차원의 검토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4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청와대 국민통합비서관실은 지난달 11일 노근리 유족회와 간담회를 갖고 유족 지원 방안과 장기간 해결되지 못한 피해 배·보상 문제 등을 논의했다.

정부는 올해 2월 개정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정리 기본법)을 토대로 별도의 과거사 배·보상 입법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출범의 근거가 된 개정안은 국가가 진실규명을 받은 희생자·피해자·유족에 대한 배·보상의 기준을 별도 법률로 정하도록 하는 조항(제50조)을 신설했다. 과거사 사건 피해에 대한 배·보상 기준을 별도 입법으로 마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정부는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을 받아 국가 책임이 확인된 사건 가운데 아직 배·보상이 이뤄지지 않은 과거사 사건 등을 아우르는 배·보상 입법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입법 방식은 정부입법과 의원입법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입법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방침이다.

정부 내부에서는 소관 부처를 둘러싼 조율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사건의 특성상 국방부와 행정안전부 간 역할 분담에 대한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간 과거사 피해 배·보상은 사건별 특별법 제·개정이나 개별 소송 등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면서 장기간이 소요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진은 송상교 3기 진실화해위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3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개시 결정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그간 과거사 피해 배·보상은 사건별 특별법 제·개정이나 개별 소송 등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면서 장기간이 소요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진은 송상교 3기 진실화해위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3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개시 결정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그간 과거사 피해 배·보상은 사건별 특별법 제·개정이나 개별 소송 등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면서 장기간이 소요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제주 4·3 사건의 경우 2000년 특별법 제정 이후 20여 년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절차를 거쳐, 2021년 특별법 개정을 통해 배·보상 근거가 마련됐고 2022년부터 국가 차원의 배·보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반면 노근리를 비롯해 거창·산청 사건 등 다른 과거사 사건은 여전히 특별법 개정이나 추가 입법을 통한 배·보상 근거 마련을 기다리고 있다. 노근리 사건은 2004년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의료지원금과 생활지원금 지급 근거만 담겼을 뿐, 실질적인 배·보상 규정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후 2008년부터 13년간 특별법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다섯 건이 임기 만료로 폐기되며 입법 논의는 장기간 표류했다.

그 사이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했지만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하면서 소송을 통한 배상도 이뤄지지 못했다. 2021년에는 국가의 책무와 피해 치유·공동체 회복 지원 등을 담은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배·보상 규정은 끝내 반영되지 못했다. 이어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4년 8월 실질적인 배·보상 규정을 담은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번 검토는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진 사건들조차 특별법 제·개정이나 개별 소송을 통해 배·보상이 추진되면서 장기간이 소요됐던 현행 과거사 배·보상 체계를 개선하고, 일관된 기준을 마련하려는 첫 정부 차원의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50년 7월 26일부터 나흘 간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쌍굴다리 일대(사진)에서 경부선 철로를 따라 피난 중이던 민간인 수백 명이 이유도 모른 채 미군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는 비극이 벌어졌다. /노근리국제평화재단
1950년 7월 26일부터 나흘 간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쌍굴다리 일대(사진)에서 경부선 철로를 따라 피난 중이던 민간인 수백 명이 이유도 모른 채 미군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는 비극이 벌어졌다. /노근리국제평화재단

노근리는 '아픔의 형평성'을 묻고 있다. 피해 생존자가 20여 명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76년째 미뤄진 정의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노근리 사건 피해자 명예회복 지원을 123개 국정과제에 포함한 만큼, 역대 정부에서 매듭짓지 못한 배·보상 문제가 이번에는 실질적인 진전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은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정부가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며 "희생자 심사도 오래전에 끝났고 국가도 피해 사실을 인정한 지 오래됐는데, 희생자가 적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이어 "개별 사건만으로는 입법이 좀처럼 속도를 내기 어려운 만큼 거창·산청 사건 등과 함께 통합적으로 추진해 4·3 사건처럼 형평성 있는 배·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며 "그것이 국민통합 차원의 과거사 해결 원칙에도 부합하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노근리 사건 당시 10세였던 피해 생존자 양해찬(86) 씨는 "누가 뭐라 해도 노근리 사건은 우리 정부가 궁극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이라며 "이번 정부 임기 안에 76년간 잠들어 있는 배·보상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rocker@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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