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20년 만의 10%대 '고성장'…부동산 쏠림 막고 과실 나눠야"
  • 김태환 기자
  • 입력: 2026.06.20 13:11 / 수정: 2026.06.20 13:11
명목 GDP 두 자릿수 성장 전망에도 내수·자영업 체감경기 한파
“호황 과실은 위로, 긴축 고통은 아래로 향할 가능성” 경고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올해 1분기 명목 GDP가 10% 이상 성장한 점을 언급하면서, 양극화 해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올해 1분기 명목 GDP가 10% 이상 성장한 점을 언급하면서, 양극화 해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더팩트 | 김태환 기자]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인공지능(AI)·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한국 경제가 20여 년 만에 두 자릿수 명목 성장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커졌지만, 성장의 과실이 일부 기업과 자산 보유층에 집중될 경우 부동산 과열과 양극화가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늘어난 기업 이익과 세수, 경상수지 흑자를 청년과 취약계층, 미래 산업으로 연결하지 못하면 기록적인 호황이 저성장 탈출의 계기가 아니라 자산 격차를 확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김 실장은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명목 10% 후반 경제의 환희, 낯섦,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올해 한국 경제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두 자릿수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단순한 경기 호황을 넘어선 정치경제적 과제로 진단했다.

김 실장은 올해 1분기 명목 GDP가 전년 동기 대비 17.1% 성장한 점을 언급하며 "우리나라 명목 성장률이 마지막으로 10%대를 기록했던 것은 한일월드컵 열기로 온 나라가 들썩였던 2002년"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호황은 물가 상승으로 명목 지표만 부풀려진 '착시'와는 다르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AI 투자 확대가 반도체 수요를 끌어올리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크게 늘었고, 경상수지 흑자와 법인세 수입 증가 등으로 실제 국부와 재정 여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주가, 영업이익, 세수, 경상수지 등 숫자들이 일제히 좋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며 국가채무비율 하락과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 시점 단축 가능성도 거론했다.

다만 경제 전체가 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현재의 고성장은 반도체와 AI 관련 업종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반면, 자영업자와 내수기업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부진하다는 설명이다.

김 실장은 "거시지표는 뜨겁지만 자영업자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차갑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폭증하는데 동네 상가는 공실을 걱정하고,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향하는데 폐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반도체 수출 증가와 증시 상승이 오히려 원화 약세를 자극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국내 증시에서 한국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외국인 투자자의 포트폴리오 조정이 나타날 경우 원화 매도 수요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수입물가 상승과 내수기업의 채산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실장은 기업 성과급과 임금 인상, 수출대금의 국내 유입이 본격화하는 연말과 내년 초를 주요 고비로 꼽았다.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고 원화 가치가 안정을 되찾으면 그동안 관망하던 자금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과거 경기 호황기마다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갔던 점을 언급하면서 "이번에도 예외일 것이라고 쉽게 장담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부동산 보유세와 양도소득세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세제 개편만으로는 자금 쏠림을 막기 어려울 수 있다고도 진단했다. 과거와 달리 대출을 받은 투자자보다 충분한 현금을 보유한 계층이 부동산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세금을 내고도 남는 장사라는 확신이 생기면 어지간한 규제로는 역부족일 수 있다"고 말했다.

높은 명목 성장률이 장기간 이어질 경우 기준금리에도 상승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동 정세 안정과 원화 강세 전환으로 수입물가 압력이 완화되더라도 현재의 금리 수준이 장기간 유지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이다.

문제는 금리가 오를 경우 반도체 호황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은 대기업 근로자나 자산가보다 자영업자와 취약차주, 변동금리 대출자가 먼저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김 실장은 "호황의 과실은 위로 향하고, 긴축의 고통은 아래로 향한다"며 "이것이 가장 불편한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거시경제 지표가 개선되는 상황에서도 개인의 체감경기가 나아지지 않으면 경제적 불만이 정치적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 전체의 평균은 좋아지지만 중산층과 취약계층의 삶이 흔들릴 경우 성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이번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와 기업 이익, 경상수지 흑자를 어떻게 배분하고 재투자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반도체가 벌어온 국부가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흡수되고 성장의 과실이 소수에게만 집중된다면 이번 호황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며 "재정 여력과 기업 이익을 청년과 취약계층, 미래 산업으로 연결할 수 있다면 저성장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숫자는 방향을 보여줄 뿐 선택을 대신해주지 않는다"며 "역대급 호황은 그에 걸맞은 상상력과 이를 현실로 옮길 실행력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kimthi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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