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밖 한반도⑩] "김정은 만세" 구호 아래…소 끌고 밭 가는 北 현실 [르포]
  • 정소영 기자
  • 입력: 2026.05.22 00:00 / 수정: 2026.05.22 00:00
北 주민 맨손·소 이용한 파종 작업 포착
수해 뒤 둑 설치…수용소 추정 시설도
지난 17일 <더팩트>가 확인한 곳은 압록강 중류 지역으로 북한 행정구역상 평안북도 삭주군 일대다. /단둥(중국)=정소영 기자
지난 17일 <더팩트>가 확인한 곳은 압록강 중류 지역으로 북한 행정구역상 평안북도 삭주군 일대다. /단둥(중국)=정소영 기자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군사적 긴장, 비핵화 협상이라는 틀 속에서 종종 한반도 내부에만 머물러 있다. <더팩트>는 ‘국경 밖 한반도’ 시리즈를 통해 한반도 바깥의 현장에서 포착한 북한의 모습을 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협력의 실질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단둥(중국)=정소영 기자] "저기 밭 가는 사람들 보이죠? 아직도 소 끌고 밭 갑니다."

지난 17일 <더팩트>가 찾은 곳은 압록강 중류 지역이다. 북한 행정구역상 평안북도 삭주군 일대다. 강폭이 좁아진 일부 구간에선 사람 움직임이 육안으로 식별됐다. 북·중 접경 지역 특유의 긴장감 속에서도 강 건너 북한 주민들은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북한 마을은 초록빛 산세 아래 자리 잡고 있었지만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생활의 흔적은 투박했다. 지붕이 낡은 단층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마을 뒤편 비탈은 대부분 경작지로 쓰이고 있었다. 평지가 부족한 북한 특유의 산간 농촌 구조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은 봄 파종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일부는 소를 이용했고, 대다수 주민들은 허리를 굽힌 채 손으로 흙을 다듬고 있었다. 밭 주변에 농기계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바라봐도 작업량은 상당해 보였다.

단둥에서 만난 한 북한 주민은 <더팩트>에 "지금 이 지역에선 옥수수와 콩 심을 준비로 바쁜 시기"라며 "북한 농촌은 대체로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평양과 전혀 다른 모습이지 않나"라며 "농촌은 발전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밭 사이 좁은 길로는 대형 트럭 한 대가 지나갔다. 짐칸에는 밭갈이를 마친 것으로 보이는 남성 여러 명이 타고 있었다. 접경 지역 특성상 도로 주변에는 별도 안내 시설이나 상업 시설은 없었다.

평안북도 삭주군 일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밭을 갈고 있던 북한 주민들이었다. /단둥(중국)=정소영 기자
평안북도 삭주군 일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밭을 갈고 있던 북한 주민들이었다. /단둥(중국)=정소영 기자

압록강 중류 산지 인근에는 외부 접근이 어려워 보이는 시설도 포착됐다. 일정 구역이 분리돼 있었고 주변에는 철조망 형태로 보이는 구조물도 일부 확인됐다. 정확한 시설 용도까지 식별되진 않았지만, 현지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왔다. 인근 지역 사정에 밝은 한 중국인(40대·남)은 "정치범 수용소"라며 "여자들이 구금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북 소식통은 "북한 정치범수용소 대부분은 산간 지역에 있다"며 "수용소 이동 전 인원을 임시로 가두는 장소일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압록강 중류 방향으로 이동하는 길목에선 새롭게 정비된 것으로 보이는 둑도 눈에 띄었다. 강변을 따라 길게 이어진 둑은 최근에 보강한 흔적이 역력했다.

단둥에 거주하는 한 중국인(50대·남)은 "2024년 북한에서 홍수가 크게 난 뒤 둑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2024년 7월 평안북도 신의주 지역에서 장맛비로 인한 대홍수가 발생했다. 북한 대외매체 조선중앙통신은 당시 "북부 국경지대와 중국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압록강의 수위가 위험계선을 훨씬 넘어섬으로써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의주군의 여러 섬지역들에서 5000여 명의 주민들이 침수위험 구역에 고립되는 엄중한 위기가 조성됐다"고 보도했다.

현지에서는 해당 둑이 치수 시설 이상의 목적을 가진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됐다. 앞서 중국인은 "이 일대가 중국 땅과 가깝지 않나"라며 "탈북 시도 경로로 거론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실제 지난 17일 오후 3시 20분쯤 둑 위에서는 주변을 감시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군 모습이 포착됐다. 둑 아래에서는 주민들이 허리를 굽혀 일을 하고 있었다.

압록강 하류 방향으로 내려오며 압록강철교(중조우의교)가 있는 신의주 일대 분위기는 삭주군과 달랐다. 새로 지어진 주거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건물 외벽은 비교적 깨끗했지만 창문 상당수는 비어 있거나 어두웠다. 일부 건물 1층에는 '약국', '식량공급소' '양복점' 간판도 보였다. 다만 낮 시간인데도 오가는 주민은 많지 않았다.

연변에 거주하는 한 중국 동포(40대·여)는 "이 건물들을 4개월 만에 지었다"며 "단둥은 밝은데 이쪽(북한)만 어두우니 지은 것 같다"고 언급했다.

단둥에서 만난 또 다른 북한 주민은 신의주 주거 단지를 바라보며 "건물은 계속 올라가는데 실제로 입주해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중조우의교 왼편을 가리키며 "저쪽도 마찬가지"라며 "중국 자본이 들어가 호텔·식당·카지노 형태로 운영하려던 시설인데 북한이 국경을 닫은 뒤 사실상 멈춰 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투자했던 중국인들 불만도 상당한 것으로 안다"고 부연했다.

압록강 하류 방향으로 내려오며 압록강철교(중조우의교)가 있는 신의주 일대 분위기는 삭주군과 또 달랐다. 사진은 지난 16일 밤 평안북도 신의주 일대 모습. /단둥(중국)=정소영 기자
압록강 하류 방향으로 내려오며 압록강철교(중조우의교)가 있는 신의주 일대 분위기는 삭주군과 또 달랐다. 사진은 지난 16일 밤 평안북도 신의주 일대 모습. /단둥(중국)=정소영 기자

압록강에는 북한 선박 여러 척이 정박해 있었다. 강변 인근에는 'HYUNDAI'(현대)라고 적힌 컨테이너도 눈에 띄었다. 새로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인근 건물 외벽에는 '주체조선의 태양 김정은 장군 만세!'라는 구호가 걸려 있었다. 경제난과 대외 제재 상황 속에서도 체제 선전 문구는 접경 지역 곳곳에 유지되고 있었다.

국경 지역 특유의 경계 분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초소 주변에서는 망원 장비를 이용해 강 건너 움직임을 살피는 북한군이 눈에 띄었다. 다만 일부 초소에선 북한군이 강 건너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도 포착됐다.

최근 북한은 러시아와의 밀착, 중국 교역 확대 등을 통해 경제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접경 지역에서 확인된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은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의견이 쏟아진다. 농촌 지역은 식량·비료·연료 부족 문제와 낮은 기계화 수준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최근 지방 개발 사업에는 속도를 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24년부터 매년 20개 시·군의 인프라를 개선하는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추진 중이다. 지방 격차 해소를 목표로 현대식 공장과 병원, 편의시설 등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북한은 지난 2월 제9차 당대회에서도 평양 5만 세대 주택 건설과 11만여 세대 농촌주택 건설과 함께 해당 정책을 주요 성과 중 하나로 제시했다. 단둥 현지에서도 북·중 교역 재개와 맞물려 건설 자재 이동이 늘고 있다는 증언이 나온다. 앞서 북한 주민은 "최근 중국에서 북한으로 건설 자재 등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북한은 평양을 혁명 수도이자 체제의 상징 공간으로 인식해 개발 역량을 집중해 왔다"며 "9차 당대회 이후 지방 균형 발전을 중요한 과제로 내세웠기에 수도권과 비수도권 균형 발전도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upjs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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