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김정수·정소영 기자] 북한이 지난 3월 벨라루스와 정상회담에서 체결한 '교육 협정'과 '보건·체육 양해각서' 전문이 확인됐다.
13일 <더팩트> 취재에 따르면 문서에는 고등교육 협력, 의약품 유통, 친선 경기 개최 등 양국 간 교류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정상회담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적극적 외교를 통한 다극세계 건설'을 예고한 뒤 이뤄진 첫 정상 외교였다. 이같은 성격에서 맺어진 양국 간 합의 사안은 향후 북한의 대외 전략과 외교 방향성을 가늠할 단서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육·보건·체육 '소프트 파워' 전방위 협력…자동 연장 조합 삽입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3월 26일 평양에서 알렉산더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양측은 외교·공보·농업·교육·보건 등 분야에서 '협조에 관한 합의 문건'을 체결했다고 당시 북한은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13일 확인된 양국 교육 협정은 8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기관 및 종사자 간 접촉 장려 △대표단 파견 △학술 교류 △교육 행사 참여 △고등교육 협력 △교육 체계 발전에 관한 정보 교환 △상대국 역사·문화 정보 보급 등이다.
보건·체육 분야는 양해각서로 맺어졌다. 보건은 7개 조항으로 △의학 교육 및 의료 인력 양성 △의약품 유통 △주민 위생·방역 협력 △전문가 및 의료 기술 정보 교류 △심포지엄 및 콘퍼런스 개최 △단행본 및 논문 게재 △양국 보건 기관 간 협력 확대 등이다.
체육 역시 7개 조항으로 △심판·코치 및 스포츠 의학 전문가 교류 △양국에서 개최되는 관련 회의에 전문가 참여 장려 △친선 경기 및 합동 훈련 △양국 스포츠팀 교류 △도핑 방지 분야 협력 △국제 스포츠 기구 관련 경험 교환 등이 기재됐다.
이밖에 체육 분야에서는 친선 경기나 합동 훈련 시 파견 측이 여비를 부담하고, 초청 측이 체재비·식비·국내 교통비를 부담하는 내용이 담겼다. 심판·코치·전문가 및 기술 인력 초청을 위한 비용은 양측이 별도로 합의하기로 했다.
교육 협정과 보건·체육 양해각서에는 자동 연장 조항이 공통으로 삽입됐다. 교육 협정은 서명일(2026년 3월 26일)로부터 5년간 유효하며 만료 6개월 전까지 별다른 통보가 없다면 재연장된다. 보건 양해각서도 이와 동일한 조건이다. 다만 체육은 2년 유효에 통보 기한은 만료 3개월 전이다.

◆北, 정상국가화 및 실용적 대외 전략…체제 존립 강화 내용도
내용을 살펴보면 북한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닌 벨라루스와 즉각적인 교류가 이뤄질 수 있는 장치를 곳곳에 마련해 뒀다. 친선 경기 등에 명시된 비용 문제가 대표적이다. 부담 주체를 명확히 규정해 인적 교류의 부수적인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평가다. 모든 문서에 담긴 자동 연장 조항 역시 정치적 상황 변화와 무관하게 지속성을 담보하려는 조치로 읽힌다.
북한이 도모하고 있는 정상국가 전략도 엿보인다. 교육·보건 합의안에는 "해석상 이견이 발생하면 영어 본문이 우선한다"고 돼 있다. 사회주의에 뿌리를 둔 국가 간 합의에도 국제 표준 절차를 따른 것으로, 향후 발생할 법적 분쟁 역시 그 틀을 준수하겠다는 것이다. 도핑 방지 협력은 북한이 규범을 준수하면서 국제 스포츠 경기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실리를 추구하는 북한의 대외 전략도 관측된다. 교육 분야에서 고등교육 협력 부문은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받지 못할 선진 과학기술을 벨라루스를 통해 우회 습득, 전문가를 양성할 목적으로 분석된다. 벨라루스는 과거 구소련 시절부터 정밀기계, 정보기술(IT), 화학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로 분류된다.
보건 영역에 적시된 의약품 유통, 의료 인력 양성, 주민 위생·방역 협력 등은 북한이 부족한 전문 지식과 인프라를 보완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협력 사항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점을 고려하면, 단순한 기술 교류를 초월한 국가 보건 시스템 전반을 아우르는 범위라는 평가다.
동시에 북한은 체제 존립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도 담아냈다. 역사·문화 정보 보급과 국제 스포츠 기구 관련 협력이 대표적이다. 체제의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공동으로 홍보하고 지지하려는 의도가 내포됐다는 평가다. 특히 반서방 연대를 공유하는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교육 시스템에 반영해 체제 결속을 다지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반서방 다극화 블록 핵심축 염두…북중러 밀착 기반 외교 저변 확대"
전문가들은 이번 양국 간 합의문을 통해 북한의 외교적 고립 탈피 시도와 실용주의적 외교 기조를 확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나아가 북한이 우방국과의 밀착을 통한 반서방 연대 구축을 본격화했다고 평가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밀착된 북러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러시아의 핵심 우방인 벨라루스와의 관계를 조약 수준으로 격상시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며 "반서방 연대의 제도화"라고 해석했다.
이어 "전통적 우방은 물론 이란이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도 유사한 수준의 전방위적 협정 체결을 시도하며 '반서방 다극화 블록'의 핵심 축이 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 교수는 또 "교육·보건·스포츠 등 보편적 분야를 전면에 내세워 서방의 제재를 우회하면서도 국제사회에 '정상적인 국가 간 교류'임을 과시하는 것"이라며 "명분만 앞세운 외교가 아닌 내부 경제 발전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실용주의적 기술 외교'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북한이 최근 북중러 밀착을 기반으로 외교 저변을 넓혀가는 전략의 연장선"이라며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있는 벨라루스와 관계를 확대하는 건 북중러 협력 구조를 넓혀가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김정은 시대 북한 외교의 특징 중 하나는 '1990년대 외교적 고립'을 되돌리려는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북중러 축을 중심으로 진영 외교를 강화하면서 동유럽 및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외연 확대를 시도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부연했다.
황수환 제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은 벨라루스를 징검다리 삼아 유라시아 지역의 네트워크에 적극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적극적 외교를 통한 다극세계 건설의 시작점이자, 국제사회에 정상국가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시작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