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북한이 헌법을 개정해 조국통일 3대 원칙을 폐기하고 영토 조항을 신설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한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한 내용은 파악되지 않아 '두 국가' 자체에 무게를 뒀다.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된 통일부 기자단 대상 간담회에서 공개된 북한의 개정 헌법에 따르면 기존 헌법 9조에 명시됐던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는 내용은 삭제됐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은 지난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전 주석이 7·4 남북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3대 통일 원칙이다. 분단 이후 남북 당국이 최초로 뜻을 모은 통일 관련 합의문이다.
개정 헌법 서문에는 김일성·김정일 업적도 모조리 삭제됐다. 이에 따라 선대의 통일 위업 활동도 함께 지워졌다. 이와 함께 북반부, 사회주의 완전 승리 등 통일과 관련된 규정들도 사라졌다.
대신 북한은 영토 조항을 신설했다. 제1장 정치 부문 제2조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역은 북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 연방,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와 그에 기초하여 설정된 영해와 영공을 포함한다"고 돼 있다.
이로써 김 위원장이 거듭 강조한 두 국가론이 헌법에 온전히 반영됐다는 평가다. 다만 한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 앞서 김 위원장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라고 밝힌 바 있다.
간담회에 참석한 이정철 서울대 교수는 이에 대해 "적대적 관계, 교전국 관계는 등장하지 않는다"며 "남북 평화공존으로 가는 하나의 인프라가 마련될 수 있겠다는 희망적 판단을 해볼 수 있는 헌법안"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북한이 북방한계선(NLL) 등 구체적인 경계선을 언급하지 않는 데 대해선 "해상경계선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우리가 타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북한도 그런 분쟁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의사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이번 개정 헌법에서는 국무위원장의 권한이 크게 강화됐다. 먼저 헌법상 국가기관 배열에서 국무위원장이 가장 앞에 배치됐다. 북한 헌법에서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보다 앞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동시에 최고인민회의의 국무위원장에 대한 책임과 소환 규정이 삭제됐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외국 대사 신임장 접수권도 이관됐으며, 최고인민회의 결정에 대한 거부권도 국무위원장에게 주어졌다.
이처럼 국무위원장에 대한 견제가 사실상 사라진 가운데 국무위원장의 핵무력 지휘권이 처음으로 적시됐다. 동시에 핵무력 위임 근거도 마련됐다. 김 위원장의 전방위적 통치 권한이 헌법으로 규정되면서 '새로운 김정은 시대'를 예고했다는 평가다. 헌법 서문에도 선대 업적 대신 김 위원장의 통치 이데올로기인 인민대중제일주의가 자리 잡았다.
이밖에 북한의 오랜 대외 정책 원칙이었던 '자주·평화·친선'에 더해 '국익수호'가 추가됐다. 무상 치료, 세금없는 나라, 실업을 모르는 등의 조항은 삭제됐다. 특별보호 대상에는 해외군사작전 참전열사가 추가됐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 군인들을 예우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