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국회=정채영 기자] "정치라는 게 쉽지 않아요. 정치란 남의 표를 얻고 남의 돈을 받아서 하는 겁니다."
그의 지갑에는 이렇게 적힌 쪽지 하나가 있다. 참여정부 시절 국정 상황실장이었던 박남춘 전 인천광역시장에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써서 건넨 메모다. 지난달 30일 <더팩트>와 만난 박 전 시장은 "정치를 잘할 것 같다"며 건넨 이 쪽지 한 장이 평생 공무원일 줄만 알았던 자신을 정계로 이끈 결정적 계기였다고 밝혔다. 그에게는 부적같은 물건이다.
노 전 대통령의 쪽지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해양수산부에서 잔뼈 굵은 공무원이었던 그의 인생 궤도를 바꿨다. 참여정부 인사수석을 거쳐 19·20대 국회의원과 15대 인천시장을 역임한 그가 인천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시장이 아닌 다시 시작하는 지역구 의원으로서다.
복귀지로 연수갑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박 전 시장은 "연수갑은 인천시장에 출마한 박찬대 의원이 험지였던 곳을 맡아 잘 일궈온 곳"이라며 "노무현이라는 정치적 스승을 공유하는 파트너로서, 박 의원이 고민하던 '청학역 신설' 등 지역 현안을 가장 잘 알고 이어갈 수 있는 적임자가 저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박 전 시장은 그동안의 인천시정에 차마 점수를 매길 수 없다고 했다. 그가 떠난 동안 인천시정은 본인이 공들여 쌓아놓은 핵심 정책들이 동력을 잃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가입자 230만 명, 발행액 10조를 돌파했던 '인천이음 카드'가 약화됐다"며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2025 매립지 종료' 정책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발생지 처리 원칙에 따라 인천에서 나오는 쓰레기만 인천에서 처리하고 매립지를 닫는 정책이 시급한데, 현 시정은 실체 없는 '뉴홍콩시티'나 '제물포 르네상스' 같은 구호만 외치며 기존의 잘 되던 정책들을 다 지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수도권의 쓰레기가 인천으로 모이는 현실에 속상한 마음을 토로한 그는 '자원순환 특별법'을 강화해 정부가 인천의 환경 주권을 외면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을 향후 의정 활동의 큰 목표로 삼았다.
그가 인천시장에 재임하던 시절부터 청학동과 연수동 등 원도심은 인천 균형 발전의 숙원이 담긴 지역이었다. 그는 "청학동 등 노후 주거단지의 재건축·재개발이 시급하다"며 '노후 계획도시 정비 특별법'을 연수에 유리하게 적용해 주거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꼽은 연수구의 당면 과제는 교통과 원도심의 질적 혁신이다. 그는 "연수의 숙원인 제2경인선 완성, GTX-B와 수인선 '청학역 신설' 등 교통망 확충이 연수의 지도를 바꿀 핵심"이라며 "단순히 선로를 놓는 것을 넘어 연수를 수도권의 핵심 거점으로 도약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교통 경제학을 전공한 전문가답게 단호하게 현장의 맥을 짚어냈다. 그는 "이번 인천발 KTX 개통 지연 등 복복선화 문제도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며 "정직하지 못한 행정이 시민들에게 희망고문을 줘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복복선화(선로 확충)라는 필수적인 공정 기간을 무시한 채, 정치적 구호로만 개통 시기를 공약한 것은 시민을 속이는 '정직하지 못한 행정'이라는 의미다.

그는 소위 말해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다. 인천시장 재도전이라는 선택지를 내려놓고 시대의 리더십이 흘러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연수구 출사표를 던졌다. 박 전 시장은 특히 박 의원과의 호흡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박 의원은 이재명 대표와 중앙 정치 호흡을 맞췄고, 저는 인천시장으로서 지역 행정력을 갖고 있다"며 "전임 시장으로서 제가 먼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하기보다, 그가 도움을 청할 때 제 경험과 인적 자산을 기꺼이 내어주는 든든한 조력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름으로 정계에 입문했다는 공통점은 두 사람을 잇는 강력한 정치적 유대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시장은 연수갑이 박 의원이 10여 년간 헌신하며 일궈온 민주당의 소중한 터전인 만큼, 그 토대 위에 인천을 가장 잘 아는 본인이 '더 큰 연수'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그는 이번 도전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복기했다. "그분을 안 만났다면 승진 잘한 공무원으로 해수부에서 끝냈겠지만, 대통령을 만나 정치를 하게 됐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그는 "시장 시절 재난 재해로 괴로운 순간도 많았지만, 내가 좀 덜 자고 고민하면 내 고향 시민들을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정치의 보람이었다"고 털어놨다. 인천으로 돌아온 그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