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년 체제' 종언을 위한 시도는 번번이 현실 정치라는 벽에 가로막혔다. 민주주의를 지탱할 안전장치가 헌법에 새겨지지 못한 사이 정치 양극화는 깊어졌고, 권력자의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마저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87년 체제를 넘어 새로운 질서로 나아갈 수 있을까. 국민의 시선이 다시 국회로 향하고 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정채영·이태훈·서다빈 기자] 2000년대 이후 들어선 대부분 정권에서 개헌 필요성은 반복적으로 제기됐지만, 단 한 차례도 결실을 맺지 못했다. 당시 정치 상황에 비출 때 여야가 합의할 수 없는 권력구조 개편 내용이 개헌안에 담기거나, 추진 동력이 약해지는 정권 중·말기에 개헌 논의가 집중된 게 문제였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과 추진 동력이 약화하는 타이밍이 맞물리면서 개헌이 번번이 좌초된 것이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직접 개헌을 제안했다.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원포인트 개헌'이었다. 당시 노 대통령은 반대 여론을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헤쳐나가겠다고 밝히는 등 개헌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대선을 불과 1년도 채 남기지 않은 시기에 촉발된 개헌 논의는 추진 동력을 얻기 어려웠다. 권력구조 개편을 유력 차기 대권주자들이 달가워하지 않은 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일정 부분 있었음에도, 정파 간 정치적 계산이 '당위'를 압도한 사례로 꼽힌다.
노무현 정부에서 '개헌 문제는 18대 국회서 논의한다'는 여야 간 합의를 남겼다. 실제로 18대 국회는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헌법연구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개헌 동력 확보에 나섰으나, 임기 초반 국정 운영에 몰두하던 이명박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집권 3년 차인 2010년에서야 4년 중임제와 분권형 권력구조 개편 등을 골자로 한 개헌 문제를 본격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으나, '여당 내 야당'이었던 친박근혜(친박)계가 반대하면서 논의의 진전은 없었다.

이후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서도 개헌 논의는 있었으나 결과는 좌초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초 개헌에 대해 "블랙홀"이라며 추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개헌 논의는 갈피를 잃었다. 그러다 박 대통령은 2016년 '최순실 사태' 발발 이후 개헌론을 들고나왔지만, 정권에 대한 반발 여론이 극심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개헌 주장은 '국면 전환용 카드'라는 지적을 받으며 동력을 얻지 못했다.
2018년 문재인 정부는 4년 중임제 도입과 기본권 확대, 지방분권 강화 등 내용을 담은 개헌안을 내놨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직접 발의하며 여당 내 여론을 환기했고, 임기 시작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개헌을 추진하면서 '국정 동력 확보를 위한 꼼수'라는 비판도 피했다. 그러나 당시 제1야당이던 자유한국당은 "개헌의 국민적 논의와 사회 공론화가 결여됐다"며 반대했고, 결국 개헌안은 국회 의결 정족수(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를 채우지 못하면서 폐기됐다.
이재명 정부 들어 개헌의 불씨는 되살아나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강한 의지를 바탕으로 촉발된 개헌 논의는 이재명 대통령의 호응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및 국민의힘 제외 모든 야당이 동참하면서 과거 어느 때보다 '결과'를 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개헌을 위한 국회 의결정족수 확보를 위해선 국민의힘에서 10표가량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번 개헌안의 골자는 △비상계엄 국회 사후 승인권 △5·18 민주화운동 및 부마민주항쟁 정신 헌법 수록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 명시 등이다.
과거 개헌 실패 요인은 크게 '현재 권력의 약속 미이행'과 '합의 불가능한 개헌안'에 있었다는 평가다. 정대철 헌정회장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개헌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대통령들이 (대선 후보 시절) 약속을 해 놓고 대통령이 되면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어쩔 수 없는 권력의 속성"이라고 말했다.
박상철 전 국회 입법조사처장은 "과거 개헌 추진이 권력 개편처럼 민감한 사안에 치중됐고, 정부 추진 동력이 약했던 정권 중후반에 이뤄져 실패한 측면이 있다"면서 "우선 정치적으로 예민한 내용을 제외하고 한 차례 개헌에 성공한다면 이후엔 개헌 논의가 보다 활발히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