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 기본권 구제를 목표로 도입된 '재판소원제'가 시행 초기부터 거센 후폭풍에 직면했다. 숭고한 취지와 달리 실제로 접수되는 사건들은 범죄자들의 시간 벌기용 '꼼수'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팩트>는 재판소원제의 현실을 짚어보고, 해외 운용 현황을 통해 한국형 재판소원이 나갈 길을 총 3편에 걸쳐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국회=정채영·서다빈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한 '재판소원제'가 도입과 동시에 정쟁과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법원 확정판결을 다시 심판받을 길이 열리자, 유튜버와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헌법재판소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입 취지와 달리 시간 벌기와 정쟁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헌재, 재판소원제 시행 첫날인 12일 0시부터 전날까지 접수된 재판소원은 118건에 달한다. 시행 이틀 만에 30건을 돌파한 데 이어 주말 사이에도 전자접수 등을 통해 신청이 잇따르고 있다. 헌재는 연간 최대 1500건의 재판소원이 들어올 것으로 보고 업무 마비를 업무 마비를 걱정하고 있다.
주요 정치적 사건 관련자들도 재판소원 행렬에 올라탔다. 이른바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된 송철호 전 울산시장 선거캠프 관계자 등은 지난 13일 재판소원을 접수했다. 이들은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며 이유를 짧게 명시한 것이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며 전국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해 정직 처분을 받은 류삼영 전 총경도 재판소원을 예고했다. 앞서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지난 12일 류 전 총경이 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정직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원심을 확정했다.

문제는 강력 범죄나 사회적 공분을 산 사건의 피고인들이 제도의 취지를 악용해 '형 집행을 늦추거나 판결을 지연시키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유튜버 쯔양을 협박해 금품을 갈취한 혐의로 징역 3년이 확정된 유튜버 구제역이 재판소원을 접수하면서 제도 남용 논란에 불을 지폈다. 성착취물 유포로 징역 42년형을 사는 조주빈까지 옥중에서 제도 도입을 반기는 글을 올리며 공분을 샀다.
이에 따른 피해자들의 '2차 가해' 역시 심각하다. 확정판결 이후에도 법적 분쟁이 이어지면서 피해자들의 일상 회복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튜버 쯔양은 구제역의 재판소원 소식에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재판소원제 도입 논의 당시 예견됐던 부작용들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모양새다.

야권에서는 졸속 입법이 낳은 예견된 참사라며 비판하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파렴치한 범죄자들이 살판난 듯 너도나도 재판소원을 제기하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은 힘 있고 돈 있는 자만이 법의 보호를 받는 사법 정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모든 것은 졸속 입법의 결과"라며 "지금이라도 여야 합의로 법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재판소원제 도입을 주도했던 민주당은 이 같은 부작용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의 ‘조폭 연루설’을 주장하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확정받은 장영하 국민의힘 성남시 수정구 당협위원장도 최근 재판소원을 제기하며 대열에 합류했다.
강준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16일 이에 대한 의견을 묻는 취재진에게 "재판소원제가 도입된 이상, 결과와 상관없이 국민 누구나 제기할 수 있는 하나의 권리라고 본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이어 장 위원장의 청구에 대해서도 "실제 인용될 가능성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도입 의도와 달리 재판소원이 범죄자들의 '막판 뒤집기'나 '집행 지연'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피해자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권리마저 침해받을 것으로 보인다. 헌재의 엄격한 판단과 함께 제도 보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중>편에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