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국회=김수민·김시형 기자] 6·3 지방선거 앞두고 국민의힘 공천 판이 쇄신 경쟁이 아닌 계파 논쟁으로 흐르며 점점 혼탁해지고 있다.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내세운 '중진 용퇴론'이 일부 단수공천 결과와 맞물리며 '친박(친박근혜) 공천' 논란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애초 당이 내걸었던 공천 쇄신과 흥행 구상은 힘을 잃고, 낡은 계파 갈등의 그림자가 다시 드리우며 구태 정치를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천 갈등의 뇌관은 '보수 텃밭' 대구에서 터졌다.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6선 주호영 의원은 20일 대구시당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 위원장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주 의원은 "하향식, 낙하산 공천, 이름만 좋은 전략공천을 거부하고 시민의 손으로 직접 처음부터 후보를 선택하는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켜달라. 그것이 보수의 가치를 지키고, 보수를 재건하는 일이며 우리 대구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며 "공정 경선이 무너지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심 이탈을 우려한 장동혁 대표는 즉각 진화에 나섰다. 장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 위원장이 해당 지역(대구·충북)의 정서와 여러 사정을 고려해 공정한 경선을 해주실 것으로 기대한다"며 "저는 당대표로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경선이 이루어지도록 필요한 역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중진들의 집단 반발이 '무소속 연대' 등 더 큰 갈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논란의 핵심은 공천의 '형평성'이다. 애초 이 위원장은 치열한 경선을 통해 컨벤션 효과를 노리는 '한국시리즈식' 구상을 내놓았으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유정복 인천시장, 김진태 강원지사, 김태흠 충남지사, 박완수 경남지사 등 과거 친박계로 분류됐던 인사들이 대거 단수 공천을 확정 지었다.
반면 주 의원을 비롯해 박형준 부산시장 등 과거 친이(친이명박)계나 비주류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컷오프(공천 배제) 대상으로 거론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이번 공천 갈등 상황을 두고 지난 2008년 총선 당시 '친박 학살' 공천이 18년 만에 역방향으로 재현되는 '비박 학살'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온다.

당내 개혁 성향 의원들도 비판에 가세하며 갈등은 당 전체로 번지는 모양새다. 소장파 초·재선 모임 '대안과 미래' 간사인 이성권 의원은 지난 19일 MBC '뉴스외전'에서 "이 위원장과 고 씨는 과거 친박계 핵심으로 활동하며 정치적 궤를 같이해온 인물들"이라며 "이 위원장을 추천한 사람이 고 박사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9명의 후보가 등록했는데도 특정 중진을 지목해 배제하는 방식은 애초 염두에 둔 인물이 있다는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며 "결과적으로 특정 인물을 띄우기 위한 판이 짜인 것 아니냐는 의심을 낳는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정면 돌파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페이스북에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정치도 바뀌어야 한다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경륜을 부정하지 않는다. 존중합니다. 그러나 역할은 바뀌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배제가 아니라 세대교체다. 정치의 문을 넓히는 것"이라며 "지역민은 변화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공천 관리의 리더십 부재와 전력 미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 관계자는 <더팩트>에 "이 위원장이 뚜렷한 논리 없이 도박에 가까운 공천 기조를 고수하고 있어 당혹스럽다"며 "공천 방향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가뜩이나 어려운 선거 판세가 악화될까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계파 갈등보다 신인을 전면에 내세우려던 이정현식 혁신 공천이 경쟁력을 보장할 수 없다는 반발에 부딪혀 표류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 위원장의 ‘사심’ 논란보다 TK마저 민주당에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혁신 공천의 목표를 흐리게 하고 있다는 점이 더 본질적인 문제"라고 짚었다.
반면 당 일각에서는 대구 지역 의원 절반가량이 이미 지난 공천에서 전략·단수공천을 받았던 전례를 고려했을 때, 중진 의원들이 이제 와서 '계파 프레임'을 이용해 경선을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시각도 있다. 인적 쇄신의 칼날이 자신들을 향하자 과거의 수혜는 잊은 채 계파 갈등 논리를 앞세워 반발하고 있다는 비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