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민주주의의 무기고"…황정근 관장이 그리는 국회도서관의 '내일'
  • 서다빈 기자
  • 입력: 2026.03.22 00:00 / 수정: 2026.03.22 00:00
첫 법조인 출신 국회도서관장
'찾아오는 서비스'에서 '찾아가는 플랫폼'으로
"AI 도서관 구축, ISP 수립·예산 확보 선행돼야"
황정근 국회도서관장은 국회도서관을 찾아오는 서비스에서 찾아가는 플랫폼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전환(AX) 흐름에 맞춰 추진 중인 내일(NAIL: National Assembly AI Library) 프로젝트가 핵심이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관장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는 황 관장. / 국회=남용희 기자
황정근 국회도서관장은 국회도서관을 '찾아오는 서비스'에서 '찾아가는 플랫폼'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전환(AX) 흐름에 맞춰 추진 중인 '내일'(NAIL: National Assembly AI Library) 프로젝트가 핵심이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관장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는 황 관장. / 국회=남용희 기자

[더팩트ㅣ국회=서다빈 기자] "도서관은 민주주의의 무기고다.(THE INFO - ARSENAL OF DEMOCRACY)"

황정근 국회도서관장의 명함 아래 그의 이름을 받치고 있는 문구다. 직접 만든 문장이라는 설명을 듣는 순간, 그가 국회도서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책을 읽을 때가 가장 좋고 행복합니다. 법조인 시절보다 지금이 더 즐겁습니다."

인터뷰에 앞서 먼저 나온 말은 법률가 특유의 단단한 어조가 아닌 한 애독가의 고백이었다. 그러나 그가 국회도서관장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느낀 감정은 '설렘' 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웠다. "도서관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

그러나 현장에서 찾은 답은 명확했다. 모든 제도와 정책은 결국 '법제화'를 통해 완성되고, 법을 만드는 이들에게는 그에 걸맞은 방대한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황 관장 취임 이후 국회도서관은 '찾아오는 서비스'에서 '찾아가는 플랫폼'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전환(AX) 흐름에 맞춰 추진 중인 '내일'(NAIL: National Assembly AI Library) 프로젝트가 핵심이다.

이 밖에도 자체 기술로 'AI 외국법 번역기'를 개발했으며, 국가전략포털에 수록된 주요 싱크탱크 보고서 5건을 매주 선별해 소개하는 '금주의 보고서', 주요국 최신 제·개정 법률정보를 제공하는 '금주의 World Law' 등 현안 중심 콘텐츠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세계 최초의 '세계헌법정보 서비스' 개시 역시 정보 포털을 고도화한 결과물이다.

황 관장은 국회도서관이 '최후의 보루'(Last Resort)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려운 자료를 갖춰, 입법가와 국민이 마지막에 찾는 핵심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더팩트>는 지난 17일 국회도서관 관장실에서 황 관장을 만나, AI 시대 속 국회도서관이 나아갈 방향과 그 구상을 들었다.

황정근 국회도서관장은 독서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황 관장이 도리스 컨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 원서를 직접 번역한 흔적. /국회=서다빈 기자
황정근 국회도서관장은 "독서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황 관장이 도리스 컨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 원서를 직접 번역한 흔적. /국회=서다빈 기자

다음은 황 관장과의 일문일답.

-국회도서관장으로 근무한 지 1년여가 지났다. 지난 시간을 돌아본 소회는.

2024년 마지막 날, 법조인 출신 최초로 국회도서관장에 취임했다. 취임식도 없이 12월 31일 임명장을 받고, 이틀 뒤 곧바로 시무식에 들어갔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셈이다.

지난 1년은 누구에게나 다사다난한 시간이었지만, 국회도서관도 분주한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다. 국회기록보존소가 올해 1월 입법부 영구기록물 관리기관인 국회기록원으로 독립했고, 도서관은 또 그 나름의 변화와 과제를 안고 달려왔다.

400여 명의 직원들이 기존 업무 위에 벽돌 한 장씩 더 얹는 마음으로 보낸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국회도서관은 세계의 지식정보를 수집해 국회와 국민에게 제공하는 기관이다. 그 미션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구성원 모두가 함께 뛰어온 한 해였다.

-국회도서관을 일반 도서관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국회도서관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겉으로 보면 국회도서관은 국회와 국민에게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국회도서관은 단순한 도서관이라기보다는 국회법 제22조에 따라 국회의 입법자료에 관한 업무를 처리하는 정보지원기관이다. 의회도서관으로서 국회의원과 보좌진, 국회 소속기관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 역할이다. 다른 국공립도서관과 달리 의회정보실과 법률정보실이 설치돼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회도서관은 의견을 제시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회입법조사처나 국회예산정책처처럼 정책적 판단을 제시하는 곳이 아니라, 주요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팩트를 최대한 정확하게 모아 제공하는 기관이다. 증거와 데이터에 기반한 입법·정책 결정을 뒷받침하는 '정보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황정근 국회도서관장은 인공지능 전환 시대의 정보서비스는 단순한 키워드 검색을 넘어, AI와 대화하며 원하는 해답을 찾는 지능형 서비스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남용희 기자
황정근 국회도서관장은 "인공지능 전환 시대의 정보서비스는 단순한 키워드 검색을 넘어, AI와 대화하며 원하는 해답을 찾는 지능형 서비스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남용희 기자

-AI와 데이터 기술이 발전하면서 국회도서관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인공지능 전환 시대의 정보서비스는 단순한 키워드 검색을 넘어, AI와 대화하며 원하는 해답을 찾는 지능형 서비스로 나아가야 한다.

이에 국회도서관도 모든 AI 서비스를 하나의 지능형 플랫폼으로 통합하는 '내일'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내일'은 국회도서관의 미래를 뜻하는 동시에, 더 나은 변화가 '내 일'과 내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책임을 의미하는 표현으로서, 영문 약자 NAIL에 이러한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내일' 프로젝트는 국회도서관이 보유한 방대한 입법·정책 데이터를 AI가 학습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보고서, 정책자료, 학술논문, 학위논문 등 디지털화된 자료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구현하고 있으며, 활용 가능한 데이터부터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아직 '내일' 프로젝트는 초기 단계지만, 향후 기술 고도화를 통해 2030년 전후에는 보다 완성된 서비스 구현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은 국회전자도서관의 내일 서치, 챗봇, 국가전략포털 번역·요약 서비스 등 다양한 AI 서비스가 분산돼 있는 상태다. 이를 하나로 통합해 이용자가 여러 포털을 오가지 않아도 되는 '통합 AI 에이전트'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다.

-의원들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능은 무엇인가.

국회는 17개 상임위를 통해 사실상 모든 분야를 다룬다. 국회도서관 역시 전 분야를 아우르는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입법 수준도 이미 세계 상위권에 와 있지만, 더 높은 수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입법 동향을 지속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외국 역시 끊임없이 법과 제도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와 정확성이다. 입법 과정의 초기 단계에서 주요국의 제·개정 법률과 정책 흐름을 신속하고 신뢰성 있게 전달해야 한다. 1년 뒤에 알려주는 정보는 의미가 없다. 이를 위해 22개국 1300여 개 국가기관·싱크탱크 보고서를 실시간 수집하는 국가전략포털을 운영하고 있으며, '금주의 보고서', '금주의 World Law', '금주의 Book Review' 등을 새로이 발간하고 있다.

황정근 국회도서관장은 국회 AI 도서관 구축을 위해서는 정보전략계획(ISP) 수립과 예산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용희 기자
황정근 국회도서관장은 "국회 AI 도서관 구축을 위해서는 정보전략계획(ISP) 수립과 예산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용희 기자

-국회도서관장으로 있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나 고민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국회전자도서관은 1997년부터 원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왔고, 내년이면 그 역사가 30년이 된다. 현재 보유한 원문 PDF만 약 915만 건, 면수로는 약 4억 5000만 페이지에 달한다. 특히 학술논문, 정책자료, 입법자료처럼 검증된 고품질 데이터가 축적돼 있다는 점은 AI 시대에 중요한 자산이다. 말하자면 AI에게 학습시킬 '좋은 식재료'를 갖고 있는 셈이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학습을 고도화해, 국회는 물론 국민도 보다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문제는 저작권이다. 상당수 데이터가 의정 지원 목적 아래 활용되고 있어 대국민 공개에는 한계가 있다. AI 학습을 본격화하려면 법적·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TDM(Text and Data Mining) 면책 규정 도입이 중요하다. AI가 텍스트와 데이터를 분석·학습할 수 있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기술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지금은 저작권 문제로 전체 데이터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또 하나의 과제는 예산이다. 국회AI도서관 구축을 위해서는 정보전략계획(ISP) 수립과 예산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 그 계획이 있어야 본격적인 시스템 구축 예산도 뒤따른다. 결국 AI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산과 제도, 인식 개선이 함께 가야 하는 문제다.

-학위논문 수집 방식도 고민 중이라고 들었다.

현재 학위논문은 실물과 전자파일을 모두 수집하고 있다. 이미 논문만 200만 권에 달하는 등 서고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부산 분관이 사실상 학위논문 보관 공간의 역할을 하게 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시대에 맞게 전자파일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서버 장애나 데이터 유실 위험은 있지만, 복제본을 여러 서버와 지역에 분산 보관하는 방식으로 대비할 수 있다. 실제로 디지털 파일은 이미 여러 곳에 분산 보관되고 있다. 이 역시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어떤 자료를 어떤 방식으로 보존하고 후대에 남길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황정근 국회도서관장은 제22대 국회의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으로 로버트 그린의 권력의 법칙과 도리스 컨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 모식 템킨의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 를 꼽았다. /남용희 기자
황정근 국회도서관장은 제22대 국회의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으로 로버트 그린의 '권력의 법칙'과 도리스 컨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 모식 템킨의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 를 꼽았다. /남용희 기자

-22대 국회의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로버트 그린의 '권력의 법칙'과 도리스 컨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을 추천하고 싶다. 역사 속 통치자들의 리더십을 다룬 책들로 여러 번 읽을 정도로 아끼는 책이다. '권력의 조건'은 원서 번역을 직접 시도해 봤을 정도로 애정이 깊다. 번역 작업을 하며 번역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번역서를 고를 때도 번역가를 먼저 보는 편이다.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이 옮긴 번역과, 단순히 언어만 옮긴 번역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모식 템킨의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도 추천하고 싶다. 책에서는 역사 속 리더를 '투사', '반란자', '성자'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분석하는데, 각기 다른 리더십의 모습과 의미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법조인 황정근과 국회도서관장 황정근, 달라진 점과 변하지 않은 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누군가와 함께 일한다는 점이 다르다. 법조인 시절에는 개인 단위의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많은 직원들과 함께 하나의 시스템을 움직여간다.

변하지 않은 점은 '관점'이다. 변호사는 법으로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팩트로 일한다. 결국 사실관계를 얼마나 정확하게 찾고 정리하느냐가 핵심이다. 판사 역시 법리보다 팩트가 먼저다.

국회도서관도 다르지 않다. 의견을 덧붙이는 기관이 아니라 사실과 자료를 최대한 정확하게 모아 제공하는 기관이다. 그다음 판단과 선택은 의원들과 입법 과정의 몫이다.

황정근 국회도서관장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관장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하며 책을 읽고 있다. / 남용희 기자
황정근 국회도서관장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관장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하며 책을 읽고 있다. / 남용희 기자

☞ 황정근 국회도서관장은 누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뒤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15기를 수료하고 1989년 판사로 임용돼 민·형사 재판을 두루 맡으며 법원에서 근무했다. 2004년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활동하며 법률 실무 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23년 4월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장을 지낸 뒤, 2024년 12월 31일 국회도서관장으로 임명됐다.

bongous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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