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김정수·정소영 기자] 북한이 정부의 대북 무인기 침투 사건에 대한 유감 표명과 재발 방지책 발표에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다만 무인기 사건을 주권 침해로 규정하고 남북 관계 특수성을 배제한 데다 9·19 남북 군사합의 복원엔 침묵했다. 다가오는 제9차 노동당 대회에서 '적대적 두 국가'를 명문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19일 대외매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어제 자 담화에서 "나는 정동영 한국 통일부 장관이 18일 우리 국가의 령공(영공)을 침범한 한국 측의 무인기 도발 행위에 대해 공식 인정하고 다시 한번 유감과 함께 재발방지 의지를 표명한 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앞서 정 장관은 전날 이재명 정부에서 발생한 민간인 대북 무인기 침투 사건과 윤석열 정부 당시 대북 무인기 공작에 대해 유감이라며 이는 정부 공식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정 장관은 재발방지 대책으로 9·19 군사합의 중 하나인 비행금지구역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 담화는 이같은 정 장관의 발표 뒤 하루 만에 공개됐다. 담화가 작성된 시점도 정 장관이 입장을 밝힌 직후다. 통일부는 이처럼 북한의 즉각적인 반응에 방점을 뒀다. 통일부는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우리 정부의 무인기 사건 관련 유감 표명과 재발방지 조치 발표에 대해 북한이 신속하게 입장을 밝힌 것에 유의한다"고 밝혔다. 남북 단절 국면에서 입장 교환이 이뤄진 데 대해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북한은 김 부부장 담화를 통해 대북 무인기 사건을 주권 침해 행위로 규정하며 두 국가 기조를 분명히 했다. 김 부부장은 "재삼 강조하지만 그 주체가 누구이든 어떤 수단으로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주권에 대한 침해 행위가 재발할 때에는 끔찍한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과 같은 엄중한 주권침해도발의 재발을 확실히 방지할 수 있는 담보 조치를 강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한국 자체의 보존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부부장은 지난 달 11, 13일과 지난 13일 무인기 관련 담화에서도 '주권 침해 도발'이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했다.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설정하는 '조한 관계'를 포함해 영공, 신성불가침의 주권 등도 언급했다.

김 부부장은 또 "우리 군사지도부는 한국과 잇닿아 있는 공화국 남부 국경 전반에 대한 경계 강화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며 "적국과의 국경선은 마땅히 견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국경을 언급한 점 역시 두 국가 기조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김 부부장 담화에선 우리 정부가 후속 조치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9·19 군사합의 복원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남북 관계 특수성을 철저히 배제해 국가 대 국가 관계를 선명히 한 셈이다. 9·19 군사합의는 지난 2018년 9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자신들은 우리 정부가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복원하더라도 국경 경계를 강화하겠다며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9·19 군사합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명백히 거부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이같은 기조는 조만간 개최될 예정인 9차 당대회에서 '적대적 두 국가' 명문화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특히 이번 김 부부장의 담화가 당대회 직전 대남 메시지로 평가되는 만큼 적대성 해소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화에서 "(김 부부장 담화는) 9차 당대회 대남 기조를 예시하거나 예고하는 내용"이라며 "적대적 두 국가에 대한 적극적 조치가 나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통일부는 이와 관련해 예의주시하겠다는 취지의 원론적 입장을 보였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 부부장의 '적국' 언급에 대해 "처음 나온 표현은 아니다"라며 "어떠한 경우에도 상호 위협과 군사적 긴장 고조는 바람직하지 않고, 정부는 남북 간 신뢰 국면을 만들기 위해서 일관된 신뢰 조치, 선제적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김 부부장 담화에 대해 "정부는 남과 북이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길로 나가길 기대한다"며 "접경지역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삼가고, 평화를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을 남북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