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0년 당원의 한숨과 20대의 냉소… '보수 텃밭'의 균열 <하>
  • 김수민 기자
  • 입력: 2026.02.17 00:00 / 수정: 2026.02.17 00:00
12일 찾은 '보수 심장' 대구
커지는 반감…"국민의힘·장동혁 다 싫어"
반면 관성적 지지도 여전
청년층 "언제적 윤석열" 토로
설 연휴를 앞둔 12일 동대구역 앞 모습. /김수민 기자
설 연휴를 앞둔 12일 동대구역 앞 모습. /김수민 기자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주와 대구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더 이상 정당의 깃발만 보고 투표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오랜 세월 특정 정당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텃밭'으로 불려온 두 지역이지만,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의 목소리는 과거와 확연히 달랐다. 무조건적인 지지 대신 냉정한 평가와 실리를 요구하는 광주와 대구의 생생한 현장 르포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대구=김수민 기자] 설 대목을 앞둔 12일, 대구 최대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은 명절 장보기에 나선 인파에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방문이 맞물리며 북새통을 이뤘다. 장 대표를 향한 열렬한 환호와 싸늘한 시선이 교차한 이날 현장은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가 직면한 극심한 민심의 혼란을 그대로 보여줬다.

현재 대구 민심은 '윤어게인'으로 상징되는 강성 지지층과 "이대로는 지방선거도 필패"라는 위기감을 느끼는 중도·청년층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다. 당이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과거 프레임에 갇혀 있을수록, 대구 유권자들의 '투표 포기' 혹은 '지지 철회' 현상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장 대표가 시장을 도는 내내 한쪽에서는 "장동혁 화이팅", "인물 좋네"는 환호가 터져 나왔지만, 다른 쪽에서는 '윤어게인' 피켓을 든 지지자들이 "윤어게인을 버리면 지방선거 진다"며 고성을 질렀다. 이를 지켜보던 일부 상인들은 "저래가꼬 일이 되겠느냐"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서문시장의 한 60대 상인은 "요즘 대구 사람들은 국민의힘 영 싫어합니다. 지지율도 전반적으로 마이 떨어졌어요. 잘해보라고 당대표 시켜놨더니마는 저래 단합 하나 못하고 말이야. 머릿수가 밀리다 보니까 저카는 건 알겠는데 맨날 이리 당하고만 있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국민의힘 지지한다'는 소리를 부끄러워 하더라고. 지지는 하는데 이 꼬라지 안 보고 싶다는 소리가 나오는 기라"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 '보수 텃밭' 역할을 해온 대구지만, 현장에서 체감한 밑바닥 민심은 심상치 않았다. 30대 여성 상인은 "장 대표 보러 안 갔다. 온다는 소식도 못 들었다"고 전했다. 장 대표를 보고도 그냥 지나가는 상인들과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시민들이 12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는 모습. /김수민 기자
시민들이 12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는 모습. /김수민 기자

이불 장사를 하고 있는 50대 상인은 대놓고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국민의힘이고, 장동혁 대표고 다 싫습니다. 똑바로 하는 기 있어야 좋아하지.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안 찍을 거야. 주변에도 내 같은 사람 천지라예. 대구 위해서 국민의힘이 해준 기 뭐가 있노. 맨날 잡은 물고기 취급하면서 보여주기 식밖에 안 하지 않나. 서문시장 상인들이 힘들다 캐도 그때만 최선을 다하겠다 카고 고쳐주는 거 하나도 없다"고 꼬집었다.

시내 곳곳을 누비는 택시 기사의 진단은 더욱 날카로웠다. 20년 넘게 택시 운행을 이 기사는 "민주당 보면 지들끼리 단합이 잘 돼가 저래 하는데, 국민의힘은 지들끼리 갈라져가 욕을 많이 얻어먹지. 원래 이 대목에는 서문시장에 사람이 바글바글해야 하는데 지금 봐라"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결국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선택할 것이라는 관성적 지지는 여전했다. 이 기사는 "그래도 지선에서는 국민의힘 찍겠지. 대구 사람들 투표하러 안 간다 케놓고 막상 하면 다 가. 안 간다는 건다 거짓말이라"며 웃었다. 이어 "국민의힘 지금 꼬라지가 너무 안타까울 뿐이지. 힘을 못 쓰니까.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 한데 말이야"라고 덧붙였다.

20년 넘게 당원 생활을 했다는 한 상인은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지금 국민의힘이 네 편 내 편 편 가르는 거 진짜 꼴 보기 싫습니대. 지금은 단합해 가 지선 이길 생각해야 할 땐데, 장 대표도 개인주의가 좀 강한 거 같아. 본인 생각할 때가 아이라 당을 먼저 생각해야지"라면서도 "그래도 국민의힘에 힘 실어줄 거라예. 팔은 안으로 굽지 절대로 밖으로 안 굽거든"이라고 말했다.

12일 오후 대구 중구에 위치한 중앙로역 인근 거리의 모습. /김수민 기자
12일 오후 대구 중구에 위치한 중앙로역 인근 거리의 모습. /김수민 기자

대구 중구 중앙로역 인근에서 만난 청년층의 반응은 '무관심'을 넘어 '냉소'에 가까웠다. 이들에게 윤 전 대통령이나 당내 갈등은 자신의 삶과 무관한 화두였다. 영남대에 재학 중인 20대는 "국민의힘이 정당의 책임을 못 하고 있다. 이미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등 사회적으로 정리된 의제를 계속 끌고 가기보다 청년들에게 도움 되는 정책을 내놔야 투표장에 갈 것 같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아예 투표 안 할 예정"이라고 못 박았다.

대구에 거주하고 있는 20대 남성 역시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그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투표를 포기하는 청년들이 많을 것 같다. 대구 사람들은 이미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판단이 끝났다. 헌법재판소에서 계엄에 대한 판단이 나온 지가 언젠데 아직도 지나가버린 정치적 담론을 잡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창원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근무 중인 30대 여성은 "당보다는 개별 후보의 공약이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를 본다"며 "개인적으로 대구에서의 '공천=당선' 공식은 한물 간 소리처럼 들리지만 최근 몇 년간 당선된 사람들을 보면 나만의 생각 같아 혼란스럽고 답답하다"고 했다. 이어 "이번 지선에서도 내 삶을 바꿀 정책을 꼼꼼하게 챙겨보고 투표하러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sum@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