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주와 대구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더 이상 정당의 깃발만 보고 투표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오랜 세월 특정 정당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텃밭'으로 불려온 두 지역이지만,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의 목소리는 과거와 확연히 달랐다. 무조건적인 지지 대신 냉정한 평가와 실리를 요구하는 광주와 대구의 생생한 현장 르포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광주=김수민 기자] 설 연휴를 앞둔 10일 오전, 광주송정역은 이른 귀성 인파로 북적였다. 한 손에는 선물 세트를,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캐리어를 끈 시민들의 얼굴에는 고향 방문의 설렘이 가득했다. 동시에 역 대합실 대형 TV에서 흘러나오는 정치 뉴스는 명절의 들뜬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TV 화면 속에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리더십 논란이 보도되고 있었다. TV 앞 의자를 차지한 노년층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연신 고개를 끄덕이거나 옆 사람과 의견을 나눴다. 반면, 그 주변의 청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 화면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지만, 호남의 '대의'를 우선시하는 노년층과 자신의 '실리'를 추구하는 청년층 사이의 확연한 온도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치러지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주 민심은 '관성적인 지지'와 '전략적인 경고' 사이에서 깊은 고뇌에 빠진 모습이다. 다만 확실한 건 더 이상 '무조건'이라는 관용구에 안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날 오전 11시 광주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인 양동시장은 설을 앞두고 제수용품을 장만하려는 시민들과 손님 맞이에 분주한 상인들로 활기가 넘쳤다. 왁자지껄한 소음 속 민주당을 향한 날 선 비판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과 미묘한 대립각을 세우는 당 지도부의 행보를 두고 상인들 사이에서는 '당권을 잡더니 변했다'는 식의 실망감이 느껴졌다.
붕어빵을 파는 한 상인은 호남이 밀어 올린 대통령의 국정 동력을 당 지도부가 저해하고 있다는 배신감이 광주 시민들 사이에 서늘하게 응축돼 있다고 전했다. 그는 "광주 시민들 모두 정 대표가 심하다고 느끼고 있고 확 꼬집어서 말하지는 못하는데 다 지켜보고 있어야"라고 말했다.

이러한 기류가 다가올 지방선거의 변수가 될 수 있다고도 전망했다. 정청래 체제에 대한 거부감이 '투표 포기'나 '제3지대로의 분산'이라는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10년째 장사를 이어온 한 상인은 정 대표의 합당 추진 방식을 두고 쓴소리를 뱉었다. 그는 "합당이야 해야제. 근데 절차라는 게 있잖소. 정 대표가 혼자 막 밀어붙인다고 하니까 말이 많은 것이여. 아무리 당 대표라도 합의를 해야제. 당이고 뭐고 일 잘하는 사람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겁나 들어야. 민주당 뽑고도 지지부진했던 거를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 일 잘하는 사람 뽑는 게 맞아"라고 주장했다.
시장 상인회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상인은 "정 대표가 너무 독불장군이어야. 그럼 안 돼. 지 생각이 옳다고 해서 그대로만 하면 안되야. 여론을 좀 들어봐야제. 정청래는 너무 강하니까 안정감이 없어. 지금은 대통령보다 지가 좀 더 나가야. 광주 사람들은 다 느껴"라고 정 대표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저에는 여전히 '미우나 고우나 결국 민주당'이라는 정서가 흐르고 있었다. 시장 안쪽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60대는 "국민의힘은 아예 판단할 가치조차 없서야. 그냥 초등학생 싸움 수준이여. 지들이 만들어놓은 오물을 민주당이 치우고 있는데, 큰소리치는 게 말이여 당나귀여. 그래도 민주당이 좋아서만 찍는 것은 아니여. 국민의힘이 잘하면 우리도 쪼까 고려해보겠지. 근데 전라도를 그렇게 무시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뽑겠냐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40년 넘게 양동시장에서 옷 가게를 하고 있는 상인은 "솔직허니 말해서 민주당이 우리한테 해준 거 단 하나도 없어야. 그래도 이재명 대통령이 지금 잘하고 있으니 이번에도 한번만 더 믿고 민주당을 뽑아보자는 거제"라고 설명했다. 야채 도매상을 운영 중인 한 상인도 "그런 말도 있잖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민주당은 항시 광주 사람들을 살피고 우리를 위해서 항상 애써야"라고 했다.

오후가 되어 찾은 광주 종합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청년들에게 '민주당 텃밭'이라는 수식어는 피로감과 소외감에 가까웠다.
광주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대학생은 "광주에 남고 싶어도 갈 만한 기업이 없어요. 맨날 '텃밭'이라고만 하지 말고, 청년들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민주당에 우리는 이미 '잡은 물고기'인건지 홀대당할 때마다 불쾌해요"라고 말했다.
서울 취업을 준비 중인 20대는 "광주에 살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고, 있어도 급여나 복지가 수도권 수준에 못 미쳐요. 국가 AI 컴퓨팅센터도 광주에 두겠다고 공약했는데 결국 해남으로 갔잖아요. 이렇게 찬밥 신세가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죠"라고 털어놨다.
광주에서 창업을 준비 중인 한 청년은 구체적인 정책을 요구했다. 그는 "정규직이 아닌 육아 대체나 비정규직 일자리만 넘쳐나요. 수도권처럼 연봉이나 워라밸이 보장되는 하이커리어 직장이 필요해요. 코스트코나 5성급 호텔 유치 같은 거, 지역 상인 눈치 보느라 십수 년째 제자리걸음이잖아요. 이제는 강단 있게 추진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한 정당만 밀어주니까 이런 인프라 경쟁에서 뒤처지는 거 아니겠어요"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광주 시내 거리에는 민주당과 진보당의 현수막이 숲을 이루고 있었지만, 국민의힘 현수막은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현수막의 개수가 곧 민심의 밀도는 아니었다. 광주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부모님은 무조건 민주당이라시지만, 제 또래들은 당 이름은 안 봅니다. 내 삶을 누가 바꿔줄 사람인지만 보죠.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공약 보고 결정할 겁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