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한동훈의 시간'이다. 한때 내홍으로 어려움에 빠진 당을 구하기 위해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정계에 입성했던 한동훈 전 대표가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로부터 '제명' 결정을 받으며 최대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가족이 연루된 이른바 '당원 게시판' 사건으로 당에서 축출될 위기를 극복하고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당 윤리위는 14일 한 전 대표에 대한 제명을 결정했다. 당원게시판 논란은 한 전 대표가 당 대표 재임 당시였던 2024년 9월~11월 사이 본인이나 가족 명의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를 비방하는 글을 1000여건 올렸다는 의혹에서 비롯됐다.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당원 게시판에서의 여론 조작 정황이 확인됐다며 조사 결과를 윤리위에 넘겼다.
이제 한 전 대표에게 공이 넘어왔다. 일단 그는 윤리위의 결정에 불복할 수 있다. 국민의힘 당규에 따르면 징계 의결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10일 이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위원회의 징계 결정이 명백히 당헌·당규에 위반되거나 의결된 사건에 대해 문서 등의 위조 또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을 때 등 사정이 변경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윤리위는 결정문에 한 전 대표가 가족들이 당원게시판에 가족들이 글을 올린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며 중대한 윤리적·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적시했다. 지난 8일 정식 출범한 윤리위가 불과 엿새 만에 속전속결로 한 전 대표에 대해 최고 수위의 제명을 의결한 배경이다. 따라서 한 전 대표가 재심을 청구한다면 윤리위가 기각이나 각하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한 전 대표로서는 부담스러운 지점이다.
한 전 대표가 윤리위에 다시 판단을 요청한다더라도 사정변경이 없는 이상 다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설령 윤리위가 한 전 대표의 재심청구를 받아들인 뒤 재논의한 끝에 판단을 변경한다면 그 자체로도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렇기에 한 전 대표로서는 큰 실익을 거둘 가능성이 작으므로 윤리위에 다시 판단을 요구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법조인 출신인 한 전 대표가 처분 무효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 등 법적 조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친한계(친한동훈계) 우재준 청년최고위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번 징계는 정당성이라 부를 만한 요소를 전혀 갖추지 못했다"라며 "당무감사위원회에서 조작된 부분을 제외하고 보면, 객관적으로 징계할 만한 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당은 가처분 신청을 대비하는 모습이다. 윤리위는 이날 공지에서 "한 전 대표가 직접 게시글을 작성했는지는 확인이 불가하고, 이는 수사기관이 밝혀야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새벽에 낸 결정문에서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한 전 대표가 게시글을 직접 작성했다고 합리적으로 의심된다"는 것에서 미묘하게 달라진 것이다. 향후 한 전 대표 측의 법적 대응을 염두에 두고 문제 될 가능성이 있는 대목을 정정한 것으로 보인다.
판사 출신 장동혁 대표도 대전시청에서 열린 '대전·충남 통합 관련 정책협의'를 마친 뒤 "재심청구 이전이라도 최고위원회에서 의결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 기간 최고위 결정을 보류하는 것이 맞는지 당헌·당규와 이전 사례를 살펴보겠다"라고 했다. 위법성 논란이 없도록 절차적 흠결을 원천 차단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그동안 사법부는 정당 운영의 자율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경향을 보였다.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당의 의사결정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내포됐다. 하지만 정당 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수준의 비판 가능성이 큰 중대한 절차적 하자가 있을 때는 제동을 걸었다. 즉, 법원은 정당의 운영 자체에는 관대하고 유연한 태도를 보였지만 당헌·당규에 반하는 것에는 단호했다.
일례로 국민의힘은 2022년 8월 당이 지도부 기능 상실의 '비상 상황'이라며 주호영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을 시도했지만, 사법부는 일부 최고위원들이 지도 체제 전환을 위해 비상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이준석 당시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지도부 구성에 참여한 당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건 정당민주주의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한 전 대표는 이미 한 차례 법적 대응에 돌입한 상황이다. 지난 9일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이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해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했다. 다른 사람이 쓴 비방 글들을 한 전 대표나 가족이 작성한 것처럼 조작·공개했다는 이유다. 윤리위는 당무감사위의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징계를 결정한 만큼 한 전 대표 측이 무효를 요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제명이 확정되면 당적을 박탈당한다. 국민의힘 당규에 따르면 5년간 재입당할 수 없다. 예외 조항인 '최고위원회의 승인' 없이는 6·3 지방선거와 2028년 총선 때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할 수 없다. 정치적 재기가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물론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 있지만 강성 지지층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한 전 대표가 윤리위의 제명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는 친한계와 함께 분당할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비박계 의원들이 중도보수 성향의 바른정당을 창당했지만 지지율 부침을 겪다 국민의당과 합당했던 전례가 있는 만큼 한 전 대표와 친한계 의원들이 보수 분당 사태를 재연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언근 전 부경대 초빙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제명이 확정되면 운신의 폭은 좁아지겠지만 분당 리스크는 크다. 한 전 대표는 자기를 따르는 세력과 힘을 합해 당내에서 다툼을 이어 나갈 것"이라면서 "지금 당장 분당을 택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고, 이 위원장을 고소한 연장선에서 가처분 등 법적 다툼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