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균형 외교 점수는…'민감 의제' 피한 한일정상회담
  • 정소영 기자
  • 입력: 2026.01.14 00:00 / 수정: 2026.01.14 00:00
조세이 탄광 유해 발굴 실무 협력 합의
다카이치 "공급망 협력 관련 깊은 논의"
지난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이후 다시 마주 앉은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과거사와 경제 현안을 동시에 테이블에 올렸다. /뉴시스
지난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이후 다시 마주 앉은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과거사와 경제 현안을 동시에 테이블에 올렸다. /뉴시스

[더팩트ㅣ정소영 기자] 지난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이후 다시 마주 앉은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과거사와 경제 현안을 동시에 테이블에 올렸다. 양 정상은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 유해 수습을 위한 인도적 협력에 합의했고, 공급망과 경제안보 등의 현안도 폭넓게 논의했다. 중일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면서 한중일 소통 필요성을 강조해 한국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외교 기조를 분명히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는 13일 일본 나라현에서 88분 정도 한일정상회담을 진행했다. 회담은 20분간의 소인수 회담과 68분간의 확대 회담 순서로 이어졌고, 이후 공동언론발표가 이뤄졌다.

회담에서 가장 눈에 띈 대목은 한일 과거사가 공식 의제로 다뤄졌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공동언론발표문에서 "1942년 일본 우베시 조세이 탄광에서 183명의 한국인과 일본인이 수몰된 사고가 있었고 80여 년이 지난 지난해 8월에서야 유해가 발견된 바 있다"면서 "양국은 동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을 추진하기로 하고 구체적 사항에 대해서는 당국 간 실무적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는 1942년 2월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해안 인근 해저 지하갱도에서 발생했다. 갱도 누수로 바닷물이 유입되며 강제동원된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 등 183명이 숨졌지만, 희생자 수습과 진상 규명은 80여 년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다카이치 총리는 "DNA 감정 협력을 위해 양국 간 협력이 진전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조선인 강제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전반에 대한 원칙적 입장 표명이 공동언론발표에서 빠진 점을 아쉽게 보는 시각도 있다. 다만 셔틀외교(분쟁·갈등 당사자 간을 제3자가 중재하는 중재 외교) 차원에서 진행된 회담에서 강경 보수 성향으로 평가받는 다카이치 총리가 과거사 의제에 일정 부분 호응했다는 점에서 현실적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도 나온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다카이치 총리가 보수 성향이고 일본에서 선거를 앞두고 있어 과거사 문제에서 당장 양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역사 인식의 폭을 좁힌 것은 아니지만 과거사를 공식 의제로 올렸다는 점에서 어젠다 세팅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13일 일본 나라현에서 88분 정도 한일정상회담을 진행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13일 일본 나라현에서 88분 정도 한일정상회담을 진행했다. /뉴시스

이번 회담에서 양측은 경제안보 협력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다카이치 총리는 대만 문제와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부는 민감한 중일 갈등 사안에 대한 직접적인 논의는 자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카이치 총리는 "전략적이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협력을 추진할 수 있도록 관계 부처 간 논의를 심화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그 중 공급망 협력에 대해 깊은 논의를 했다"고 언급했다.

이는 최근 중국의 대일 수출 통제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일본의 대중국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 규제에 맞서 희토류 등 핵심 광물에 대한 수출 허가·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중일 갈등이 직접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일본은 우회적으로 한국의 외교적 공조를 요청하는 메시지를 내놨다. 다카이치 총리는 "양국이 지역 안정을 위해 공조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가졌다"며 "일한미 연대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양국은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한일·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에 뜻을 같이했다"며 "한중일 3국 역시 공통 분모를 최대한 찾아 소통과 협력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한미일 공조와 한중일 협력을 병행하겠다는 외교 노선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번 회담의 핵심은 외교적 포지션을 정립하는 데 있었다"며 "중일 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한국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중립적 태도를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외교적 의전에서도 이번 회담은 이례적이라는 견해가 많다. 다카이치 총리는 전날(12일) 나라현에 먼저 도착해 이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를 했고, 일본 언론은 이를 '오모테나시'(환대 외교)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총리가 정상회담을 앞두고 개최지로 미리 이동하는 사례는 드물며,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 이후 고향인 나라현을 찾은 것도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다카이치는 나가서 영접했다. 중일 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일본이 한국을 끌어들이려는 외교적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라며 "한국은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균형 외교를 분명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upjs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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