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정소영 기자] 한중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남북의 대화 재개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중국의 역할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중국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건설적 역할을 재차 강조했지만 이를 둘러싼 실질적 기대 가능성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는다.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한중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 안정이 양국의 공동이익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며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와 정부로서 북한과의 대화 재개 중요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양측이 한반도 긴장 완화 및 평화 구축을 위한 창의적인 해결 방안을 적극 모색하기로 해 유익하고 건설적인 논의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전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 대통령과 시 주석의 두 번째 정상회담에 대해 "양 정상은 북한과의 대화 재개 중요성을 확인했다"며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건설적 역할을 하겠다는 중국의 의지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시 주석은 우리 측의 당부에 대해 "기본적으로 중국은 지금도 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 나가겠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중국은 그동안 남북 교류 혹은 대화 재개와 관련해 한반도 문제에서 건설적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2011년 1월 후정웨 당시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는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9월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해소하는데 중국 측이 우리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건설적인 역할을 해주신데 대해 감사를 드린다"고 말한 바 있다.
2024년에는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에게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화답했다.
다만 외교가에선 이러한 발언을 외교적 수사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한 외교 소식통은 통화에서 "중국은 그동안 같은 표현을 반복해 왔다"며 "이번 발언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중국의 한반도 정책 기조가 최근 몇 년 사이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2018~2019년 다섯 차례 열린 북중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하는 한편, 쌍중단(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한미연합훈련의 동시 중단)과 쌍궤병진(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병행 추진)을 해법으로 제시해왔다.
하지만 2020년 이후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했다. 2024년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선언에서도 한반도 비핵화 문구는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리창 국무원 총리는 한국과 일본에서 비핵화 필요성을 제기한 것과 달리 한반도의 평화·안정과 정치적 해결을 강조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발표한 군축백서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표현을 삭제됐다.
중국이 지난해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등을 계기로 소원해졌던 북중 관계를 일정 부분 정비한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북한에 압박으로 작용할 만한 행보를 보이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같은 중국의 기조 변화 배경으로는 미중 전략 경쟁 심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강화된 미국의 군사 전략 조정이 지목된다.
특히 인도·태평양 전략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군사적 압박이 중국과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자극하면서 중국이 북한의 안보 불안을 일정 부분 이해하는 방향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다. 이는 북한의 핵·미사일 행보에 대한 중국의 비판 수위가 낮아진 이유로도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남북 대화 재개에 대해 원칙적 지지를 유지하되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는 "중국이 남북 대화를 위해 매개체 역할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한중수교 이후부터 '남북 관계 개선·재개' '남북 관계 개선 지지한다'고 해왔다. 중국은 (직접적) 역할이 아닌 (지지)할 수 있는 정도의 역할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형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이 여전히 중국에 의존하는 것은 있기에 남북 관계 개선에 중국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면서도 "다만 개선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인데, 김 위원장은 중국이 아닌 미국의 동향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서 중국에 의한 남북 관계 개선이 쉽게 이뤄질 것 같진 않다"고 내다봤다.